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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1903~1963)는 시간이 흐를수록 유명해진 특이한 영화 감독이다. 살아있을 때는 일본 밖에서는 많이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후 점점 명성이 커졌고, 지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리스트에 항상 오르는 감독이 됐다.  

오즈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문법, 즉 기존 할리우드 영화문법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외견 평범하고 단순해보이지만, 오즈는 그 단순함 뒤에 많은 걸 감춰놓았다. 


1. 생략 (Ellipsis)

[동경 이야기 스틸컷. 어머니가 아파서 들렀다는 얘길 하는 둘째 아들 장면. 중요한 스토리지만 생략되고 이렇게 대사로 처리됐다]
 

오즈는 중요한 스토리를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했다. 작가 헤밍웨이도 '일립시스'를 잘 사용했고, 최근 영화 중에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이 '일립시스' 기법이 사용됐다. (주인공이 풀장 여인과 이야기한 후, 바로 그 다음 살해당하는데 살해당하는 장면이 없다) 

'동경이야기'(1953)에서 부부가 도쿄를 거쳐 둘째아들이 있는 오사카에 들렀는데, 이 오사카 시퀀스가 없다. 이때 뭐가 일어났는지는 둘째 아들의 대사로만 처리된다. 

'만춘'(1949)에서도 실제 결혼식 준비 장면은 있어도, 결혼식 장면이나 신랑이 되는 남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오즈는 어떤 스토리 부분을 생략해버리곤 짐작하게 만든다. 
 

2. 한쪽 방향으로 나란히 앉는다. 

[동경 이야기]
 

오즈 영화에선 마주 앉는 것보단, 이렇게 한쪽을 같이 바라보며 앉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한 사람 자리를 약간 뒤로 빼거나 앞당겨서 나란히 보이게 만든다. 

여러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경우에도 여러 각도에서 찍거나 혹은 하이 앵글로 찍는 게 아니라, 한 샷 안에 다 보이도록 인물 동선을 조정한다. 


3. 인물 간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는다. 

180도 법칙이라는 게 있다. 가장 기본적인 편집 원칙으로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대화할 때 한 사람이 오른쪽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은 왼쪽을 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즈는 분명 투샷에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었는데, 원샷으로 들어가면 둘다 같은 쪽을 보게 한다. 오즈가 몰라서 그렇게 했던 게 아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봤는데, 오즈는 "어차피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만의 철저한 미학을 관철하기 위해서였던듯. 

[영화 '맥추' 중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세 컷. 남자와 여자가 둘다 오른쪽을 보며 얘기한다. '180도 법칙' 위반은 오즈 영화에선 흔하다]
 

4. 베개 샷 (pillow shot)

'베개 샷'이란 신과 신 사이에 정적인 자연이나 풍경을 삽입하는 걸 말한다. 오즈 영화는 대개 풍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신과 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에 풍경들이 나오고, 풍경들로 끝을 맺는다. 

흥미로운 건, 이 풍경이 반드시 '설정 샷'(해당 인물이 등장하거나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를 보여주는 샷. 예를 들어 커피숍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면, 먼저 커피숍 전체를 보여주는 샷) 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즈 영화에선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와는 전혀 상관없는 풍경이나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베개 샷'이란 단어는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1949)' 중 아래 이 장면에서 비롯됐다. 영화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장면인데, 느닷없이 꽃병을 비춰주는 '베개 샷'이 나온다. 그러나 왜 꽃병인지, 왜 주인공 노리코를 계속 보여주지 않고 꽃병을 보여줬는지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도 저서에서 이 장면을 논의했었다.  

 

5. 다다미 샷

 

오즈하면 '다다미 샷(tatami shot)'이다. 카메라 위치가 바닥에서 30cm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극단적으로 낮다. 때문에 카메라맨은 거의 바닥에 엎드려서 찍어야 했다. 

원래는 바닥에 앉아 있는 인물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됐지만, 나중에는 오즈의 스타일로 굳어졌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나 야외 촬영에서도 낮은 카메라 위치를 사용했다. 

하지만 카메라를 위로 들어올리는 '로우 앵글'은 자제했다. 이런 경우엔, 카메라를 뒤로 이동시켜 카메라가 위로 들리지 않게 했다. 오즈의 롱샷은 사실 로우 앵글을 피하려는 의도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 50mm 렌즈 

오즈는 50mm 렌즈가 사람 눈과 가장 가깝다고 봤다. 광각렌즈나 망원렌즈를 쓰지 않았다. 


7. 가족 이야기 

오즈 영화가 지금 봐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인간 정서의 출발점인 '가족'을 다뤘다는 점이다. 

가족 영화는 당시 일본 영화의 한 장르였고, 오즈는 그 장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원 영화감독' (당시엔 영화사가 감독을 고용해 월급을 줬다) 이었다. 당시 일본 젊은이들은 오즈를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는 구닥다리 감독으로 취급했다.   

특이한 부분은  가족 간에도 온갖 막장 드라마가 나오기 마련인데 (임성한 작가가 잘 그리는), 오즈는 그런 막장 가족 이야기를 피했다는 점이다. 노부모를 홀대하는 '동경 이야기'의 자녀들조차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줘서 단순히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즈는 극단적인 일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걸 다루려 했다. 


8. 절제 

한국 영화였다면 아마 감정적으로 북받히는 장면에선 슬픈 음악을 장중하게 넣어 최대한 눈물을 쥐어짜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즈 영화는 그렇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눈물을 흘릴 때도 음악은 나오지 않고 카메라가 조용히 우는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대사도 감정과 반대되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하는 대사를 즐겨 사용했다. 오즈의 인물들은 슬픔을 말로 잘 표현하지 않거나 혹은 기쁜 척한다.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클라이막스 장면도 종종 생략한다. 그래서 더 강렬하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카메라도 인물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걸 즐겨 썼다. 어떤 식으로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 감상적으로 변하는 걸 경계했던 감독이었다. 


9. 감정을 고조하기 위해 음악을 쓰지 않는다 

오즈가 음악을, 신과 신이 이어지는 베게샷이 나올 때만 사용했다. 인물 간 대화나 사건이 일어날 때는 음악을 사용하지 않았다.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선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래는 '만춘' 중 한 장면이다. 아버지와 딸이 짐을 싸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를 할 때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러다가 딸이 갑자기 속 얘기를 꺼내면서 감정이 고조되자, 음악이 뚝 끊긴다. 





10. 롱테이크를 쓰지 않는다  

오즈는 촬영 때 테이크 길이를 시계를 이용해 항상 정확히 쟀다고 한다. 오즈 영화에선 롱 테이크가 별로 없다. 한 장면을 어느 정도 보여줬다 싶으면, 바로 컷해서 시선을 바꿔준다. 당시 영화 풍습이 롱테이크를 안 썼던 건 아니다. 오즈와 동시대 활약했던 또 한명의 거장 미조구치 겐지는 롱테이크를 즐겨 사용했다. 

후기로 갈수록, 테이크 길이는 점점 더 짧아졌다. 


11.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초기엔 카메라를 꽤 움직였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카메라를 움직이는 게 적어지더니, 컬러 영화에선 트래킹(tracking)이든 패닝(panning)이든, 카메라를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12. 객관적 

오즈 영화의 주인공은 보통 여러 명이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중심인물이 있다. 하지만 그 중심인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관객이 등장인물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을 옆에서 관찰하게 한다. 그래서 시점샷(POV)이 잘 쓰이지 않는다. 


13. 말하는 사람을 단독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A와 B 두 사람이 대화하는 신이 있다면, 오즈는 카메라 셋업이 3개다. A와 B를 모두 보여주는 마스터샷, 그리고 A를 찍는 미디엄클로즈업, B를 찍는 미디어클로즈업. 

그리고나서 A가 말하면 A를 보여주고, B가 말하면 B를 보여준다. 중간중간 A와 B를 모두 보여주는 마스터샷이 나온다. A가 말할 때, B를 보여주는 법이 없다. 

또 상대방 어깨를 걸고 찍는 '오버 더 숄더 (Over-the-shoulder)' 촬영은 후기로 갈수록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 미디엄 클로즈업에선 인물이 거의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종종 3번에서 설명했듯이 시선이 일치하지 않는다. 때문에 오즈 인물들 대화장면에서 공간감각이 헷갈릴 때가 있다. 

[동경이야기 중.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인데 거의 카메라를 바라다보시피 한다]
 


14. 장면 전환은 오로지 커팅이다. 

오즈는 장면이 바뀔 때 당시 흔한 기법이었던 (지금도 자주 사용되는) '디졸브(dissolve)'를 사용하지 않았다. 디졸브란 두 화면이 서서히 겹치면서 전환되는 기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