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고래들, 물고기가 아니라 그림"

2013-06-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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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진=연합뉴스 / 3차원 입체 스캔 이미지로 재구성한 반구대 암각화]

[이하 사진=연합뉴스 / 3차원 입체 스캔 이미지로 재구성한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중앙아시아 암각화를 연구하는 나로서는 경이로움 자체였다"

<러시아 고고민족학연구소 블라지미르 쿠바레프 교수>

"고래를 주 소재로, 여러 계절과 활동, 신화들을 한 수직 암벽에 표현한 매우 독특한 유적"

<영국 암각화 연구자인 폴 밴 박사>

"반구대 그림에는 놀랍게도 생물분류학 창시자 린네의 고래분류 단서가 모두 들어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김장근 소장>

[지난 달 28일 많은 비가 내리면서 아랫 단이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찬 모습]

반구대의 생명선, '댐 수위 52m'

지금 반구대 아래 흐르는 대곡천 물을 가둔 사연댐의 수위는 약 52m. 이 수위를 넘어서면 암각화를 병풍처럼 껴안은 반구대 일대엔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침수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은 바위그림만이 아니다. 그림들을 둘러싼 반구대 일대는 우리 한민족의 시원문화(始原文化)가 살아숨쉬는 원형의 공간이다.

다음 주엔 장마 예보가 있다. 간만에 햇빛을 본 바위그림들은 곧 다시 어두운 사연댐 수중에 잠길 것이다. 겨우 안전수위 52m를 유지한 가운데, 갈수기인 요즘도 울산지역의 식수부족난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울산시와 일부 단체들은 이 수위를 유지하면 식수가 고갈될 것처럼 목청을 높인다.

신임 변영섭<우측사진> 문화재청장은 지난 달 한 매체 인터뷰에서 "반구대는 그림으로 쓴 역사책입니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책이 물에 젖게 해선 안 되죠"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남겼다.

과연 식수와 암각화 둘 중 하나는 제로섬 게임의 제물이 될 것인가?

'한반도 최초의 회화'라 불리는 이 귀한 바위그림들은 국보 285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암각화, 정치권 '뜨거운 감자' 부상

울산 시민의 식수원을 사연댐에서 해결하려는 울산시, 암각화를 지키려는 문화재청과 단체, 그리고 시민들. 10년 간 극한대립을 보여 온 갈등속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반구대 암각화는 연간 7개월 이상 침수를 겪으며 시름하고 있다.

최근 반구대 보존은 문화계의 핫이슈를 넘어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달 2일 울산 반구대 암각화박물관을 찾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가 더이상 논쟁에 그쳐선 안 된다"면서 "시급한 시간 내에 임시 보존 방법을 선택한 후 영구적인 보존책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임시제방' 설치를 강구하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임시제방 안은 곧바로 '오히려 하천 유속을 가속화해 암각화 훼손을 부추길 것'이란 주장과 함께 '원천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반대여론에 직면했다.

이어 지난 10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암각화 보존 논쟁과 관련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새누리당 이채익 의원의 질의에 "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빠르면 오는 7월 중에 이를 보존하기 위한 식수 해법이 나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반구대를 찾아 암각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행보에 나선 정홍원 총리]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한 자맥질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반구대 암각화는 침수를 거듭하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 3월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수리모형실험 연구 최종 연구보고회를 열었다. 사진은 연구보고서 속 조감도]

반구대 암각화의 운명이 갈라지는 수위 52m. 이 수위를 넘나들면서 암각화는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물에 잠겼다가 다시 드러나는 반구대 암각화는 허연 물이끼를 뒤집어 쓴 채 대한민국 국보의 추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울주군 문화재 명예관리인이기도 한 반구대 암각화 전문 촬영가 김태관(65)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 관광객을 모시고 반구대에 찾아갈 때가 가장 부끄럽다. '오늘은 물에 잠겨 볼 수 없다'고 말할 때 수치감을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인류 시원의 창' 반구대 암각화

'한민족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그리고 이 땅에 정착한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이 의문에 가장 선명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유력한 키워드가 바로 이 바위그림들이다. 그 중에서도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아 온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기원전 5000년 무렵 한반도인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인류 문명이 싹튼 신석기 시대로부터 청동기 초기 무렵. 그 시기에 걸쳐 태어난 반구대 암각화는 인간이 초창기 문명의 개화기에 펼쳐온 상상력과 생활상을 담은 그림, 그리고 그림 이상의 심볼리즘 기록물이기도 하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는 한민족이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역과 몽골, 그리고 중국 만주지역으로 이어지는 초원을 무대로 활동해 온 유목민들의 문화전통을 한반도까지 이어왔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세계가 반구대를 주목하는 이유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반구대라는 암반이 있다. 절벽이 있는 산등성의 암반모습이 마치 앉아있는 거북 같다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이 반구대에는 과연 어떤 그림들이 얼마나 새겨졌는가?

지금까지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 그림 수는 지난 1981년 동국대 '대곡리 암벽조각 분포도'의 경우 191점, 지난 2000년 울산대 박물관에서 발표한 그림분류표상의 296점, 지난 2004년 한국선사미술연구소의 암각화 표현물 분석 때의 237점, 올해 울산암각화박물관의 도록에 표시된 307점 등으로 제각각이다.

거대한 암벽 위에는 고래사냥, 야생동물과 같은 일상생활의 모습과 함께 신화적인 주제인 태양의 배, 가면,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신화적인 육식동물, 수렵도구 등이 묘사돼 있다. 묘사기법도 면쪼기(面刻), 선쪼기(線刻) 등 다양하다.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난 그림들로 추정해 본 선사시대 조상들의 고래사냥 상상도]

반구대는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우리 조상들이 신성한 제의(祭儀) 공간으로 사용했던 바위절벽이란 게 가장 유력한 설이다. 이 곳은 수렵과 채집을 하던 그들에게 주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우리만의 유산이 아니다. 세계 학계와 문화계가 부러워하고, 보존정책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 문화계와 지자체, 그리고 정치권의 갈등속에서 인류 시원의 소중한 유산은 위험수위의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로선 소중한 암각화와 식수원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52m 수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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