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시인' 이상, 25살 때 최정희에게 보낸 러브레터

2014-07-2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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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자필 편지 / 사진=연합뉴스]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이 작가 최정희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자필 편지 / 사진=연합뉴스]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이 작가 최정희에게 보낸 '러브레터'가 23일 첫 공개됐다.

이상을 연구해 온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단국대 석좌교수)는 이 편지는 이상이 25살이던 1935년 12월에 쓴 것이라고 동아일보에 밝혔다.

이상이 연모한 최정희는 당시 23세로 이혼한 뒤, 시인 김동환과 교제 중이었다.

최정희는 일본에서 잠시 연극활동을 하다 귀국해 조선일보와 잡지사 삼천리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뛰어난 미모로 시인 백석에게도 러브레터를 받은 그녀다.

이상은 편지에서 최정희에게 "이런말 하면 우스울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이라며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한다"고 전했다.

이어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다"며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다구니도 좋다"고 썼다.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러브레터' 전문이다.

지금 편지를 받엇스나 엇전지(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안는 것이 슬품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하기 발서(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번이 내 시골 잇든 때입니다.

이른 말 허면 우슬지 모루나 그간 당신은 내게 크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닷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구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엿는지는 모루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머러지고 잇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이 알엇섯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거름이 말할 수 없이 헛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노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거러면서 나는 별 리유도 까닭도 없이 작구 눈물이 쏘다지려구 해서 죽을번 햇습니다..

집에 오는 길노(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우슬(웃을) 편지입니다.

"정히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됫섯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섯다. 내 이제 너와 더불러 즐거웠던 순간을 무듬 속에 가도 니즐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 처름 어리석진 않엇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안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갓기를 빌지도 모룬다.

정히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품을, 너를 니즐(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 하지만 정히야, 이건 언제라도 조타.(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조코 래일이래도 조타.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찻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듸 내게로 와다고-. 나는 진정 네가 조타. 웬일인지 모루겟다. 네 적은 입이 조코 목들미(목덜미)가 조코 볼다구니도 조타.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히야 너를 위해 네가 닷시 오기 위해 저 夜空(야공: 저녁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이 사러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엿스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엇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잇슬 줄을 알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름 약어보려구 햇슬(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엇든지 내가 글을 쓰겟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름 속삭이든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두록 언잖게 하는 것을 엇지 할 수가 없엇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스면 좋겟다구 해서 쓰기로 헌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맛나고 싶다고 햇스니 맛나드리겟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 허트저 당신 잇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사토[故鄕]라는 집에서 맛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