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충격적 연쇄살인마 10인

2014-10-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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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이즈 가라비토(Luis Alfredo Garavito Cubillos)[사진=it

1. 루이즈 가라비토(Luis Alfredo Garavito Cubillos)

[사진=it.wikipedia.org]

루이즈 가라비토, 또다른 이름 'La Bestia(짐승)'로 불린다. 1957년 1월 25일 콜롬비아에서 출생했다. 7명의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받으면서 자랐다. 법정에서 성적 학대도 받았다고 증언했다.

1999년, 어린 소년 147명을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가라비토가 그린 지도를 토대로 '시체 매립지'를 찾은 결과 적어도 300명은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너무 많은 희생자 수 때문에 지역 언론은 그를 "세계 최악의 연쇄 살인마"라고 불렀다.

2. 페드로 로페즈(Pedro Alonso López)

[사진=mirror.enha.kr]

1948년 10월 8일 콜롬비아에서 매춘부의 열세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8세때 여동생을 성추행하다 집에서 쫓겨났다.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에서 소녀 300명 이상을 강간하고 죽인 혐의로 기소됐다. 1980년 프리랜서 기자 론 레이트너(Ron Laytner)가 로페즈와 인터뷰를 공개해 유명해졌다.

희생자 중 53명을 묻은 에콰도르 무덤으로 경찰을 데려갔을 때부터 "안데스의 괴물"이라고 불렸다. 53명의 희생자는 모두 9~12세의 어린 소녀였다. 1983년 에콰도르에서만 110명의 여자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페루와 콜롬비아에서 행방불명된 240명의 소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1998년 정신이상자로 분류되면서 감옥에서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3. 헨리 리 루카스(Henry Lee Lucas)

[사진=www.murderpedia.org]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살인자. 17개 주에 걸쳐 360명 이상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1936년 8월 23일 미국에서 태어났다. 텍사스에서 체포됐으며 그의 자백으로 미결사건 수백건이 '해결' 상태로 정리됐다. 11명을 죽이고 신원미상의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한 언론매체를 통해 위조자백을 한 사실이 발견됐고, 1998년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10살때 형제가 휘두른 나이프에 한쪽 눈을 잃었다. 매춘부 어머니는 그에게 '헨리에타'라는 이름을 붙이고 여자옷을 강요했다. 이로 인해 주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으며 이후 사회에 대한 증오심이 이에 기인한 것이라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극심한 허언증을 앓고 있었으며 자백을 여러 번 번복했다. 실제로 살해한 것은 자기 어머니뿐이라 증언하기도 했다.

4. 테드 번디(Theodore Robert "Ted" Bundy)

[사진=mirror.enha.kr]

1970년대 악명높은 연쇄 살인범이다. 호감형 얼굴로 연쇄 살인, 납치, 강간, 시간 등 잔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마로 유명하다.

수십년간 범행을 부인하다 사형 직전 7개주에 걸친 30개 살인을 자신이 저질렀노라고 자백했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 수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외모를 피해자들의 신임을 얻는데 이용했다. 주로 공개된 장소에서 부상 당하거나 장애가 있는 척 하여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이후 외딴 곳으로 피해자를 유인해 살해했다. 종종 범죄현장에 다시 방문해 썩어가는 시체와 성행위를 맺기도 했다. 12명의 피해자를 참수해 그 머리를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워싱턴 대학에 다니는 동안 '스테파니 브룩스'라는 여자와 사귀다가 차였다. 이후 범행 대상이 된 여성의 상당수가 스테파니와 막연하게 닮아 실연의 상처가 그에게 범행 동기로 작용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1989년 1월 플로리다 레이포드 감옥 전기의자 위에서 죽었다.

5. 우범곤

[사진=en.wikipedia.com]

우범곤은 엄밀히 말해 연쇄 살인마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역대 최다 살인을 갱신한 대량살인범이다. 대한민국 경찰 신분으로 56명을 죽이고 3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2011년 노르웨이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단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살인마로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1955년 2월 24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나 경찰관 아버지를 뒀다. 해병대 제대 후 경찰관이 되었으며 부산직할시 남부경찰서, 서울특별시 101경비단을 거쳐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 지서로 좌천되었다. 이 당시 술만 마시면 성격이 난폭해지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 했으며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한다.

1982년 4월 26일, '파리를 잡으려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쳤다'는 이유로 동거녀와 말다툼을 했다. 화를 식히지 못한 채 지서로 갔다가 술에 취한 채 돌아왔다. 만취 상태에서 동거녀를 폭행했고, 말리러 온 동네 사람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다시 집을 나갔다.

저녁 8시경 지서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M1 카빈 소총 2자루, 실탄 180발, 수류탄 7개 등을 탈취했다.

이후 26일 밤 9시 40분부터 27일 새벽 3시 35분까지 총 62명을 살해하고 3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지서를 나와 마침 앞을 지나던 26세 남성에게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토곡리 시장으로 달려가 총을 난사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했다. 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우체국 교환원 2명과 집배원 1명을 살해 했으며, 상갓집에 난입하여 12명을 살해했다. 27일 새벽 5시 35분, 평촌리 민가에 침입해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렸고, 그 자리에서 우범곤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62명이 주민들이 사망했고, 33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6명의 희생자는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죽었다.

범행당시 우범곤의 신분이 경찰이었다는 점과, 초기 경찰 대응이 미온했다는 점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여론이 폭발, 전두환 정부가 내각 사퇴 압력에 직면했다. 이 사건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부 장관에 오르게 된다.

5. 유영철

[사진=orchestrak.tistory.com]

1970년 4월 18일에 태어났다. 주로 출장 마사지사 혹은 부유층 노인을 범행대상으로 삼았으며, 2003년 9월과 2004년 7월 사이 20여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3명의 피해자를 태웠으며 최소 11명의 피해자 시신을 훼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된 이래, 총 14차례의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의 혐의로 11년을 교도소에서 생활했다. 1991년 안마사와 결혼하였으나, 2002년 5월 무렵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한 뒤부터 여성 혐오증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11월에는 전과자 이혼남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교제 중이던 여성으로부터 절교를 당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여성과 부자에 대한 막연한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연쇄살인의 계기가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첫 살인은 2003년 9월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단독주택에서 행해진 대학교 명예교수 부부 살인사건이다. 이후 2004년 7월까지 총 21명을 잇달아 살해하였는데,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만 21명이다.

도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하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기도 하였다. 또 피해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도록 살해한 여성의 지문을 흉기로 도려 내기도 하는 등 갖가지 잔혹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2005년 6월 9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6. 백백교

[사진=wikitree.co.kr]

1930년대 한국의 사이비 종교단체다. 80여차례에 걸쳐 남녀신도 350명을 살육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백백교 교주의 머리는 일제 경찰이 사후 '범죄형 두뇌표본'으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백도교라고 불렸지만 창시자가 죽고 아들이 교주가 되면서 백백교로 불리게 됐다. 종말의 날에 서양은 불, 동양은 물의 심판을 받아 인류가 멸망한다는 종말론을 내세웠다.

신도들을 세뇌시켜 전재산을 바치게 만들고, 여신도들과 그 딸을 교주의 시녀로 바치게 해 성폭행했다. 여신도를 성폭행한 후 죽이기도 하고, 시녀가 되길 거부한 자들을 죽이기도 했다. 여신도가 자기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돼도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냥 다 죽였다.

조부와 부친이 백백교에 빠져 여동생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고 전재산을 빼앗긴 유곤룡이란 청년이 교주 면담을 요구하고 이를 폭로하면서 백백교의 악행은 끝이 났다.

국립과학수사 연구소 지하실에 백백교 교주의 머리가 포르말린에 담겨서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머리는 2011년 10월 25일 경기 고양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됐다.

7. 김대두

[사진=ctoday.tistory.com]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마다. 살인 동기가 본래 살인이 아니라 강도였다는 점에서 대량살인범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2004년 유영철 사건 발생 전까지 3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뺏은 살인범으로 기록됐다.

1975년 8월 13일부터 10월 7일까지 55일 동안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마을 주민 안종현(63)을 살해한 것을 비롯하여, 무안군, 경기도 평택시, 서울 등지로 9차례를 걸쳐 모두 17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1975년은 우범곤 사건보다 7년전이고 10.26사태로부터도 4년전이다.

1975년 10월 7일 서울에서 피해자의 피가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세탁소 주인 신고로 검거되었다. 김대두는 살인 후 피해자가 소지한 물건을 기념품처럼 취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 습관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다. 살해 후 여느 때처럼 피해자의 물건을 가지러 가려고 했는데, 마땅히 가져갈만한 것이 없자 청바지를 벗겨 가져갔다. 어리석게도 피해자의 청바지가 피범벅이었음에도 세탁소에 맡겼다. 청바지에 묻은 피를 보고 의구심이 든 세탁소 직원 하근배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공범도 체포되었다.

모든 죄를 순순히 인정했으며, 검거 이틀 후 현장검증을 실시했는데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히죽 웃어대는 모습에 전국민이 경악했다.

법원은 이후 김대두에게 사형, 공범 김해운은 한 건만 가담한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이듬해인 1976년 12월 28일에 김대두의 사형이 집행됐다.

8. 정남규

[사진=enester.tistory.com]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자이다.

정신이상이 의심되는 우범곤을 제외하고, 유영철, 김대두에 이어 한국에서 3번째로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다. 유영철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며 유영철의 소행으로 알려졌던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2004년 1월, 경기도 부천시에서 초등학생 2명을 납치, 성폭행 한 뒤 살해한 것을 비롯하여,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일대를 돌아다니며 심야에 귀가하는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거나 거주지에 침입하여 살인과 방화를 함께 저지르는 등 연쇄살인 행각을 벌였다.

2006년 4월 22일 새벽, 신길동의 어느 다세대 주택에 침입하여 자고있던 20대 청년을 둔기로 살해하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극렬히 저항하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청년의 아버지까지 합세하여 격투 끝에 붙잡혀 경찰에 인계됐다.

전형적인 쾌락살인범이다. 정남규는 날카로운 흉기를 사용하여 범행을 저질렀으며 성폭행과 방화를 함께 저질렀는데 이러한 '찌르는' 행위, 성폭행, 방화 등의 행동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성적인 동기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사람을 더 죽이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다. 빨리 사형을 집행해 달라" 는 발언을 하는 등 전형적인 쾌락살인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7년 4월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담배를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 라는 말을 남겼으며 2009년 11월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9. 메리 플로라 벨(Mary Flora Bell)

[사진=enha.mirror.co.kr]

1957년 5월 26일생, 영국 출신의 최연소 연쇄살인다. 만 10살에 2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당시 3~4살 유아였던 브라이언 하우와 마틴 브라운을 죽였다.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면도칼로 피해자의 배 위에 'M'이라는 글자를 새기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하우의 성기를 훼손하기도 했다.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다. 법정에서도 죄의식 없이 교활하고 태연한 모습을 보여 청중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성매매 여성이었던 생모 베티 벨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심하게 학대했다. 어머니의 손님에게 소아성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돈을 준다는 이유로 손님이 딸을 원할 때 돕기까지 했다.

1998년 자신의 살인 기록을 담은 책인 '들리지 않는 외침' 을 출간해서 많은 비난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0. 내니 도스(Nannie Doss)

[사진=listverse.com]

미국의 연쇄살인마로, 5번의 결혼생활 동안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총 11명의 남편과 친지들을 죽였다.

16세에 첫 남편과 결혼한 뒤 4명의 아이를 낳았다. 첫 남편은 도스가 2명의 딸을 죽였다고 의심이 되자 그녀를 떠났다. 1929년, 로버트 해럴슨이라는 남자와 두번째 결혼을 했다. 16년 결혼 생활 동안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2명의 손자를 죽였다. 1945년 남편이 그녀를 강간하자, 독을 먹여 남편도 죽였다. 3번째 결혼 후 집에 화재를 일으켜 보험금을 타냈다. 1950년대 4번째 남편 리차드 모튼과 결혼했다. 그후 몇달 지나지 않아 새로운 남편과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 5번째이자 마지막 남편을 죽인 후에야 보험금을 타려던 동기가 발각돼 기소됐다. 1955년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오클라호마 주 형무소에서 1965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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