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남자가..."

2014-10-3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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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남자가... 송현주(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만일 남자가...

송현주(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2가지만 상상해보자. 만일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그리고 만일 남자가 출산을 한다면...

우선, 남자가 월경을 하고 여자는 하지 않게 된다면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그렇게 되면 분명 월경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량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초경을 한 소년들은 이제야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 좋아할 것이다...... 지체 높은 정치가들의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의회는 국립월경불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는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한다. 연방정부는 생리대를 무료로 배포한다..... 통계자료들이 동원되어 월경 중인 남자들이 스포츠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올림픽에서도 더 많은 메달을 획득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피를 얻기 위해 피를 바쳐야 한다”며 장군과 우익정치인들 그리고 종교 광신자들은 월경은 남자들만이 전투에 참가해 나라에 봉사하고 신을 섬길 수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또한 남자들만이 높은 정치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남자만이 신부나 목사가 될 수 있고 신 자체도 남자이며, “신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려고 피를 주셨다” “매월 한 번식 행해지는 정화의식이 없는 여성들은 깨끗할 수 없다”며 남자만이 랍비가 될 수 있다는 증거가 바로 월경이라고 주장한다...... 뒷골목 건달들은 “어이, 오늘 좋아 보이는데?” “응, 오늘이 그날이거든.” 이런 식의 인사를 나누면서 손바닥을 맞부딪치기도 한다...... 폐경은 긍정적인 사건으로 찬양된다. 남자가 이제 더 이상 지혜를 축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월경을 했다는 표시로 받아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다음과 같은 상태에서 출산을 한다면 어떤 조치가 취해질까?

아프리카 여성이 할 수 있은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가 임신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시에라리온은 모성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10명 중 1명의 여성이 출산하다 죽는다. 만일 남자가 출산 중 이렇게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긴급회의를 열고 해당 국가들은 지제 없이 부성사망률을 다루기 위한 부처가 만들어질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아직도 한 해에 50만 명의 여성들이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출산과 출산 관련한 합병증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렇게 죽어 가는데 아무 조치가 없는 것은) 이들이 세상에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 즉 가난하고 교육 받지 못한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위 글들은, 지성과 미모를 갖추고 페미니스트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미국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남자가 월경을 한다면(If Men Could Menstruate, 1978)과 성평등, 빈곤, 갈등과 분쟁 관련 글을 많이 쓰고 있는 뉴욕타임지 컬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이 엄마는 죽을 필요가 없었다(This Mom Didn't Have to Die, 2009)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들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1978년과 2009, 30년이란 세월의 간격을 두고 쓰여 진 이 두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아직도 두 글의 내용이 2014년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얘기가 아닌, 별반 다르지 않게 그대로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월경을 한다면, 여성들이 월경을 함으로써 겪고 있는 차별적이고 억압적 상황과는 달리1), 남성들은 월경을 우상화할 것이고 남성우월주의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할 것이라 가정하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경험이 부정적 담론이 되는 원인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성사망률 감소는 2015년에 종료되는 유엔의 새천년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s) 중 가장 성취 가능한 세부목표였으나 현재 가장 성취가 안 된 세부목표로 평가되고 있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모성사망률이 높은 국가에서 모성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해당 국가가 여성의 사망을 다른 안건에 비해 우선시 하지 않기 때문이며, 만일 남자가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분명 긴급조치가 실행될 것이라는 상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형성되는 성 정치학(gender politics)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30년 차를 두고 쓰여 진 두 글의 요지는 같다. 즉 생물학적 차이가 차별이 되는 과정의 논리는 만들기 나름이고, 그 논리는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가 만든다는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자신의 글들이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읽히길 바라지만, 반면 아직도 읽히고 있다는 게, 즉 아직도 공감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유쾌하고 따끔한 발상의 전복이, 즉 여성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긍정적인 시각을 갖으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는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계속 이러한 발칙한 상상만으로 만족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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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를 들어 네팔의 ‘차파디(chhaupadi)’는 월경 중 여성들을 집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 머물게 하는 관습으로 이렇게 외딴 곳에 머무를 때 성폭행도 자주 일어나고 또 추운 겨울에는 동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의 비위생적인 환경이 여성의 건강을 해친다. 이러한 격리는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섬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우리는 약국에서 생리대를 검은 비닐봉지에 싸주고 또 생리대를 보이지 않게 몰래 화장실에 가지고 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15-55세의 여성이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월경이 보편적인 일상의 일로 드러나지 못하고 숨겨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분명 당연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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