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서 북한 유학생 강제송환 중 탈출

2014-11-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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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학생이 다닌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정문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

[북한 유학생이 다닌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정문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프랑스 파리에서 북한 유학생이 북한 당국에 의해 강제송환되는 과정에서 탈출한 사건은 김정은 정권의 장성택 숙청작업이 '현재진행형'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북한의 인권 침해를 그대로 노출해 최근 국제사회에서 타오르는 북한 인권문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프랑스 유학생에 미친 '장성택 잔재' 청산 여파

이번에 강제송환과정에서 탈출해 잠적한 북한 유학생 한모 씨는 부친이 지난해 말 장성택 처형 사건 여파에 휩쓸려 최근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의 부친이 북한에서 가진 지위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장성택 세력 숙청에 나선 김정은 정권이 그를 숙청한 데 이어 아들 한 씨에게도 손을 뻗친 것으로 관측된다.

한 씨가 아직 대학생이라는 점으로 미뤄 그의 강제 송환을 시도한 것은 북한에 여전히 남아있는 '연좌제'를 적용한 결과로 보인다.

한 씨에게 장성택 숙청의 여파가 미친 것은 북한이 작년 말 장성택 숙청 이후 그의 친인척과 최측근을 제거한 데 그치지 않고 1년 동안 지속적으로 대규모 숙청작업을 진행해왔음을 보여준다.

국가정보원도 지난달 말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국정감사에서 장성택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북한은 작년 말 장성택 숙청을 전후로 그의 조카인 장용철 당시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매형인 전용진 쿠바 대사, 박광철 스웨덴 대사, 홍영 유네스코 북한 대표부 부대표 등 최측근을 줄줄이 소환했다. 이 가운데 장용철과 전영진 등은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그의 측근들이 잠적했다는 설은 끊이지 않았으나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장성택 세력 숙청작업이 1년 가까이 계속되면서 유학생 한모 씨의 잠적과 같은 '사고'가 터진 것이다.

장성택 세력 숙청작업을 지켜본 외국의 장성택 관련자들이 당국의 소환 지시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무리하게 강제 송환에 나섬에 따라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 1999년 3월 '홍순경 납치미수 사건'과 유사

북한이 외국에서 외교관이나 유학생 등을 강제 송환하려다 실패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3월 홍순경 당시 태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의 납치미수 사건이다.

북한은 당시 홍 씨와 그의 가족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는 과정에서 홍 씨 부부를 태운 차량이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이들을 놓쳤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태국 경찰에 홍 씨 부부가 인계된 것이다.

홍 씨 가족이 잠적한 사실은 같은 해 2월부터 언론에 보도돼 이미 초미의 관심사가 돼 있었다. 사건 이후 홍 씨 부부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한국 망명을 택해 2000년 10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해외에 나와있는 대다수 외교관이나 유학생 등은 북한에 소환될 경우 정치적 불이익을 받거나 신변에 위협이 생긴다고 판단할 경우 강제송환이 이뤄지기 전에 탈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 1997년 장승길 당시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와 그의 형인 장승호 당시 프랑스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대표의 잠적 사건이 있다. 1999년 김경필 당시 독일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서기관의 잠적 사건도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 망명을 택했다.

또 이번 유학생 한 씨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서 불법행위인 강제 송환을 실행하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외국에서 북한 인사를 강제 송환할 경우 해당 국가나 주변국에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을 보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밀착 수행하는 방식으로 첩보작전을 벌이듯 북한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외적으로 최대한 불법행위의 티가 나지 않도록 하는 과정에서 '빈틈'이 생기고 이번 사건과 같이 송환 대상자의 탈출로 이어질 수 있다.

◇ 北 인권문제 비판 여론 불붙을 듯

홍순경 씨 납치미수 사건 당시 태국 정부는 자국 영토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주권침해'로 간주해 외교적 마찰로 번졌고 북한은 박동춘 당시 외무성 부상을 태국에 파견하는 등 사건 수습에 진땀을 뺐다.

프랑스에서 유학생 한 씨가 잠적한 이번 사건에서도 북한이 강제 송환을 시도한 정황이 노출됐다는 점에서 양국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강제 송환을 실행하려던 요원들이 제3국에서 파견됐다는 점으로 미뤄 해당 국가와 북한의 마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북한과 특정 국가간 갈등을 넘어 국제사회 전반에서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사건이 공교롭게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18일(미국 현지시간) 북한 인권문제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포함한 북한인권결의안을 압도적인 표결로 채택한 상태다. 국제사회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이번에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는 북한의 '주민에 대한 강제송환' 행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결의안은 유학생 한 씨에게 적용된 것으로 보이는 연좌제에 대한 우려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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