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은 원래 '웃픈' 코미디…다들 힘들구나 생각"

2014-12-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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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김원석 PD, 정윤정 작가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

['미생' 김원석 PD, 정윤정 작가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원래는 '미생'을 '웃픈' 코미디로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1, 2회를 보고 울었다는 얘기에 다들 힘들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는 20일 종영을 앞둔 tvN 금토드라마 '미생'의 김원석 PD는 18일 강남구 신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찰리 채플린 스타일의 웃으면서 짠한 느낌이 드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단순히 우는 건 싫다. 직장인들의 외로움과 불안감을 '웃픈' 감정으로 전달하려고 했는데 의도와 달리 시청자들은 1, 2회 방송 보고 울었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웃픈'은 '웃기다'와 '슬프다'를 합쳐 만든 조어로, 웃기면서도 슬픈 느낌을 뜻하는 속어다.)

이날 새벽 마지막 장면 촬영을 끝마쳤다는 그는 이 드라마를 코미디처럼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전에 드라마 '몬스타'를 함께 한 정윤정 작가에게 삼고초려를 해 집필을 부탁했다는 뒷얘기를 털어놨다.

김 PD는 "정윤정 작가는 내가 아는 최고의 코미디 작가다. 특히 제가 만나본 그 어느 작가보다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코미디를 잘 쓰기 때문"이라며 "원작에 없는데 드라마에 추가된 부분을 보면 거의 다 코미디 에피소드"라고 말했다.

김 PD는 연출자로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도 바로 이런 코믹한 에피소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이 '갑'이 된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나 온갖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접대하는 장면 등이 그가 꼽은 '웃픈' 명장면이다.

이 자리에 함께한 정윤정 작가도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특히 친구에게 택시를 잡아주는 장면에서는 김 PD의 연출력에 말을 잃었다. 내 대본이 행간을 읽어야 연출할 수 있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김 PD가) 잘 살려줘서 정말 고맙다"며 김 감독의 칭찬에 화답했다.

일반 직장인들의 생활을 그대로 브라운관으로 옮긴 것 같은 사실적인 묘사로 화제가 된 작품이지만 정작 정 작가의 직장 경력은 20대 초반 9개월간 회사에 다닌 것이 전부다.

정 작가는 "24살 때 삼성 홍보팀 사보를 제작해주는 대행사에 카피라이터로 잠깐 일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을' 회사에 다니는 신입사원으로 원고와 사진을 갖고 삼성 본관에 찾아가 담당자를 만나던 때의 복잡한 감정을 드라마에 녹였다"고 말했다.

부족한 부분은 김 PD, 보조작가들과의 끝도 없는 대화와 현장 조사를 통해 메웠다. 보조작가 중 2명은 촬영 장소인 대우인터내셔널 사옥에서 한달 가량 직원들과 똑같이 출퇴근하며 매일 직원들의 일상을 보고서로 작성해 정 작가에게 넘겼다.

정 작가는 "사전 준비 작업까지 1년 2개월간 매달리면서 중간에 후회를 많이 했다"면서 "나중에는 시청률은 바라지도 않고 이 늪에서 기어올라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라고 털어놨다.

김 PD와 정 작가는 이런 '창작의 고통'을 감내한 것은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 PD는 "광고 카피였던 '그래도 살만한 인생'은 회사가 의논 없이 정했다. 누군가가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위로가 되겠느냐. 우리가 하려던 얘기는 '이 사람들도 힘들다, 너도 힘들지. 그래도 살아야하지 않겠느냐'다"라고 강조했다.

결말에 해당하는 2회분 방영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아쉬움은 없을까.

김 PD는 막바지에 간접광고(PPL)가 눈에 띄게 노출된 것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그는 "PPL을 눈에 띄지 않게 하면서 16부작, 20부작을 하기가 참 어렵다"면서 "우리나라 연출자라면 이런 광고를 어떻게 녹일지 고민해야 하는데 나중에 몇몇 장면은 실수한 게 있다"고 털어놨다.

정 작가는 "다시는 남들이 말리는 작품을 하지 않겠다"며 크게 웃었다.

정 작가는 "CJ에서 '미생' 판권을 사들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위에서 다들 그 작품은 드라마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작가도 정해지지 않았을 때인데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창작의 영역에서 불가능한게 뭐지?'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는 남들이 말리면 안 하는 게 편한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웃었다.

'미생' 종영 이후에도 두 사람이 손발을 맞춘 작품을 또 만나볼 수 있을까.

정 작가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작가와 PD는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 PD는 '일생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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