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야동을 보고 싶다"

2014-12-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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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미스터쇼 하이라이트” 유튜브 by ‘미스터쇼 For Ladies Only’]

[동영상=“미스터쇼 하이라이트” 유튜브 by ‘미스터쇼 For Ladies Only’]

‘미스터 쇼’는 여자를 위한 쇼다. 인기 연출가 박칼린 씨가 연출했다. 그는 “무대엔 남성들만, 관객석엔 여성들만 모십니다. 오늘 만큼은 당신의 욕망에 충실하세요”라는 초대장을 보냈다.

‘와이셔츠 단추 사이로 보이는 단단한 가슴’, ‘여교사 설레게 하는 남학생’, ‘흰 티와 청바지를 입고 맨 발로 춤 추는 군무’, ‘거친 남성의 상징, 군복’, 거친 성 행위를 연상시키는 쇼 무대. 돌아서서 하나 둘 옷을 벗던 남자 배우들이 팬티를 내리는 순간 객석에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떤 이들은 “힐링이 됐다. 여고 동창 모임같이 유쾌했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남녀만 바뀌었을 뿐 기존의 남성 중심 성 콘텐츠와 다른 게 뭐냐?”고 했다.

‘미스터 쇼’는 드러내기 조심스러웠던 여성의 욕구를 마음껏 풀어내라고 깐 ‘멍석’이다. ‘쇼’답게 볼 거리도 풍성하다. 의아한 건 적지 않은 여성들이 “딱히 야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평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박칼린의 ‘미스터 쇼’…“이게 음란하다고? 웃기시네!!”

쇼를 보고 난 후 한 신문사 여기자들은 “이게 야하다고? 말도 안돼!”라고 잘라 말해다. 볼 거리는 화려했지만 ‘여성의 취향’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친구들끼리 웃고 떠들면서 즐기긴 했지만 짜릿한 감흥을 얻기엔 ‘2% 부족하다’는 아쉬움에 입을 모았다.

‘미스터 쇼’만의 고민은 아니다. 여성의 성욕을 소재로 한 콘텐츠, 여성들을 위한 성 콘텐츠 모두 비슷한 어려움을 안고 있다.

“정말 어려운 야한 이야기”

['핑크영화제' 공식 포스터]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에선 매년 ‘핑크영화제’라는 여성 전용 영화제가 열렸다. ‘미스터 쇼’와 비슷한 취지였다. 여성을 위한 ‘야한 영화제.’ 독특한 콘셉트로 이목이 집중됐던 이 영화제는 하지만 기대만큼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다.

[동영상=”님포매니악: 볼륨 1 – Trailer” 유튜브 by HOTMOVIES]

지난 여름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님포매니악’ 시리즈가 국내에서 개봉됐다. 개봉 후에는 "금기로부터 해방을 보여준다(오동진 평론가)", "흥미로운 성장담이자 모험담이다(김지혜 SBS 기자)" 등 호평이 이어졌지만 개봉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 영화는 수 개월에 걸쳐 상영 등급 논쟁을 빚었다. 다루고 있는 소재, 표현 수위 등이 ‘외설적’인지를 두고 말들이 오갔다. ‘님포매니악’은 ‘여자색정광’이란 뜻이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영화는 여성의 성욕을 매우 솔직하게 표현한다. 감독은 “보여줄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긴 논쟁 끝에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제한상영’ 대신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 덕분에 관객들은 일반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미스터 쇼’, ‘핑크영화제’, ‘님포매니악’은 “말하기 어려운 여성의 성욕”을 말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점 때문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여성의 성욕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일인지 확인시켜 준다는 것도 역시 공통점이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 변신원 교수는 “성욕이 자연스러운 욕망이라고들 하지만 다소 과잉되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런 과잉된 욕망을 상품화하는 것은 주체가 남성일 때가 많다"며 "수많은 성 콘텐츠들은 남성의 시선으로 제작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여성의 성욕은 남성 중심 문화권에서 오랜 기간 금기시되어 왔기 때문"이라며 "결국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욕을 솔직히 인정하기 부끄러워하고 감추려 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죄책감까지 느끼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여성을 위한 야한 이야기'를 찾기 어렵고 하기 힘든 까닭이 개인에게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제대로 된 야동을 보고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야한 이야기를 원한다.

[“너랑 세상에서 제일 야햔 섹스를 하려고 어둠 속에서 나왔어” /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중]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은 평생을 ‘사람’이 아닌 ‘장애인’으로 살아온 여주인공 조제가 ‘사랑’을 하며 겪는 변화를 그렸다. 그는 애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랑 세상에서 제일 야햔 섹스를 하려고 왔지.”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여기에서도 ‘섹스’는 연인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섹스’가 사랑의 결과물이라거나 부속물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섹스’는 조제에게 그 자체로 특별한 사건이다. ‘한 명의 사람’이자 ‘나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사건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섹스의 두 가지 면을 동시에 담았다. 즉, 마땅히 자연스러운 ‘동물적 본능’이자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로 섹스를 표현했다.

[동영상="포르노와 현실의 차이” 유튜브 by couchotaku(한글 번역판)]

지난 해 7월 유튜브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은 동영상이 있었다. 제목은 ‘포르노와 현실의 차이’였다.

‘kbcreativelab’이라는 스토리텔링 프로덕션이 제작한 이 동영상은 포르노 속 장면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 냉정하게 보여준다. “남성 성기의 굵기 차이”, “여성이 오르가즘에 이르는 시간” 등 포르노와 현실의 차이를 조목조목 짚었다. SNS 이용자들은 크게 공감했다.

포르노가 꼭 현실과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판타지’는 현실의 갈증을 채운다는 저만의 역할이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포르노의 왜곡된 표현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소년이 ‘야동’을 통해 여성과의 섹스를 배운다. 수많은 여성은 남성 중심의 ‘야동’을 보며 불쾌함을 느낀다. '조제'가 원하는 '세상에서 제일 야한 섹스'는 도통 찾아보기 어렵다.

양성평등교육원 변신원 교수는 "왜곡된 성문화를 개선하는 길은 솔직하고 즐겁게 성을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는 "과장되고 왜곡된 성 콘텐츠는 성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킨다. 제대로 된 야한 것을 즐길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의미다"고 말했다.

※ 이 글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기획된 연재물 ‘미디어와 성’의 다섯 번째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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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그의 완벽한 몸이 날 괴롭힌다”

② “성희롱, 어떻게 생각하나?” 면접관이 물었다

③ “여자애처럼 달려보세요”

④ “이 옷은 YES를 뜻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야동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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