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국민신탁과 서촌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2015-03-2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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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국민신탁과 함께 서촌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2015 을미년을 시작하는 첫 문화탐방

지난 21일 토요일 오전,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우리 선조들의 얼과 정신을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주는 '국민신탁(Ntional trust)' 운동을 시민들과 함께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의 2015년 첫 탐방을 시작하였다.

서촌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탐방은 최근 언론매체를 통하여 변화와 보존 두 가치에 충돌하여 위기에 처해 있는 체부동성결교회과 같은 문화유산을 보존하자는 공감대 형성과 함께 문화유산국민신탁의 제1호 보전자산인 ‘이상의 집’의 활용 사례를 체험하며, 또한 진경산수화 대가 겸재 정선의 화폭 속에 나오는 필운대와 수성동계곡의 발자취를 찾아가보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예제를 중시한 유교사회 조선에서의 사직단

사직단(社稷壇)은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주례고공기에 실려있는 좌묘우사의 원칙에 따라 궁궐(경복궁)의 오른쪽에 위치하였다.

[조선시대 사직단은 태조4년(1395)에 한성부 인달방에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사상에 근거하여 조성되었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서를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제는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았다. / 이하 사진 문화유산국민신탁 촬영]

필운대와 붉은기와의 2층 팔작지붕

189710월 배화학원의 설립자인 캠벨 여선교사가 남감리회의 여선교부의 정식 파송선교사로 내한하여 활동하였고, 1898년 5월 캠벨부인은 당시 한성부 인달방 고간동(현재 내자동)에 있던 가옥 여러 채를 구입하고 10월 교원과 학생이 중심이 된 일종의 학교 교회인 캐롤라이나학당이라는 새로운 여성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배화학원을 이전하기 위한 부지를 찾고 1913년 이항복 소유의 대지 가운데 일부를 구입하여 현재 위치에 이전하였다.

[배화여고 생활관의 지붕은 외관 뿐 만 아니라 지붕을 만드는 구조방식에서 한옥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붕의 처마를 내밀기 위한 장식부재를 한옥의 부연과 유사한 방식으로 하여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필운대는 중종 때 명사들이 풍류를 즐겼던 장소로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이항복이 살던 집터였으며, 필운대에서는 경복궁과 창덕궁이 보였을 뿐 만아니라 청명한 날에는 동대문까지 보일 정도 당시에 경관이 훌륭한 장소였다.

[지금은 배화여고 건물에 막혀 필운대에서 바라보는 경복궁과 창덕궁의 모습을 볼 수 없게되어 아쉬웠다.]

배화여고 생활관이 위치한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이 보인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서촌 일대에 들어선 다세대 주택과 빌딩들로 인하여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의 용마루만이 위치를 알리고 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불 탄 경복궁은 고종 대에 이르러야 옛 모습을 찾는다. 겸재는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100여년 이후에 태어났으며, 당시 옥인동 겸재의 집에서 바라본 경복궁은 폐허 속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겸재의 화폭 속 경복궁은 무너진 궁궐 담장과 광화문과 경회루의 석축만이 폐허로 변한 경복궁의 모습을 지금의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도시 개발로 인하여 건물 숲 속에 가려진 경복궁은 여전히 쓸쓸해 보인다.]

천재 시인의 숨결을 느끼다.

서촌 초입에 위치하고 있는 이상의 집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민들의 모금과 국민은행(은행장 윤종규)의 후원으로 도시개발에 직면하였던 가옥을 매입한 문화유산국민신탁의 제1호 보전자산이다.

이상의 집은 천재 시인 이상을 기억하고 그의 작품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며, 이상의 집은 이상의 삶 뿐 아니라 서촌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상다운 공간'으로 변화 중에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는 시범운행한 서촌 문화탐방을 수정 및 보완하여 향후 이상의 집을 중심으로 한 서촌 탐방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활성화할 계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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