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에게서 배우는 16가지 성취 법칙

2015-04-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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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지난 2천년 동안 인류 정신을 매혹시켜 왔다. 카이사르보다 더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지난 2천년 동안 인류 정신을 매혹시켜 왔다. 카이사르보다 더 큰 일을 한 위인은 많지만, 카이사르가 보여준 능력과 매력, 그 드라마틱한 삶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카이사르가 살았던 기원전 1세기는 로마 시대 중 가장 역사 사료가 풍부해, 로마시대 인물 중 누구보다 생생하게 카이사르의 인물됨을 짐작할 수 있다. 사료를 통해 본 카이사르의 인생 철학을 정리해봤다.

1. 오직 행동

HBO 드라마 '로마' 중 율리우스 카이사르

카이사르만큼 '행동으로 삶을 이끈다(Anteire Operibus)'라는 고대 로마 격언에 걸맞은 로마 인물은 없을 듯하다. 사실 그의 삶은 '과잉 행동'으로 느껴질 정도다. 카이사르에게 삶은 성찰이나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실천력'은 로마 공화정의 남성이 갖춰야할 미덕 중 하나였다. 다만 카이사르는 그 가치들을 "이 정도면 됐어" 수준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2. 뛰어나고자 하는 욕망

카이사르를 모욕하고 싶으면, "넌 평범한 인간이야"라고 말하면 됐을 것 같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애썼다. 실제로 로마 최고의 연설가라는 칭찬을 받았고, 뒤이어 로마 최고의 문장가, 로마 최고의 장군이라는 명성도 얻었다. 또 최고의 행정가이자 경영의 달인이었다.

카이사르를 끔찍히 싫어했던 정적들도 그의 능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거만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는다

카이사르의 자신감은 유명하다. 10대 시절 서슬이 퍼렇던 최고권력자 술라가 아내와 이혼하라고 명령했을 때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이 때문에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해적에게 잡혔을 때 해적들이 인질 몸값을 책정하자, "내가 그 정도밖에 안되냐"고 비웃으며 스스로 자신의 몸값을 높였다.

기상이 안 좋은 바다에 배를 띄울 때 선원들이 두려워하자 "여러분은 카이사르의 행운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로 거만하게 느껴질 정도다.

흥미로운 건, 그가 젊어서 쥐뿔도 없었을 때 이미 이런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자신감이 성취보다 앞섰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에 대한 '신화적 믿음'을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 신화는 어머니 아우렐리아가 심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4. 줌으로써 얻는다

"호의를 베푸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친구들 일을 도와주는데 전력을 다했다", "남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카이사르 전기를 쓴 로마 제정시대 인물 플루타르코스와 수에토니우스는 카이사르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남이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호의를 베풀었다. 이는 상대에게 빚진 마음을 심어줬고, 나중에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 됐다.

카이사르는 젊었을 땐 빚에 허덕였다. 돈을 꿔주기 위해,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렸다.

(아예 한 푼도 없는 사람에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전쟁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5. 위대함을 추구한다

카이사르가 부하들과 어느 촌락 집에 머물게 됐는데, 마침 아픈 부하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아픈 부하를 좋은 침소에서 자게 하고, 자기는 불편한 자리에서 잠을 잤다. 그러면서 "약한 사람에겐 편한 자리를, 위대한 자에겐 명예로운 자리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초대받은 자리에서 주인이 잘못 조리한 음식을 가져오자, 함께 간 사람들은 다 불평하는데 혼자만 맛있게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애써 조리했는데 주인이 얼마나 민망하겠나"

카이사르가 권력자가 되기 전, 어느 촌락을 지나면서 "로마에서 이인자가 되느니, 이 촌락에서 일인자가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일화에서 보다시피, 카이사르는 '평범함'을 넘어선 '그라비타스(중요함)' '아욱토리타스(권위)'를 삶의 지표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폼페이우스를 이긴 후, 과거 적들을 다 용서하는 '만용'도 그의 위대함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싹을 없애버려야한다"는 참모들의 조언도 "평생을 두려움 속에 살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6. 무난하게 옷 잘 입는 수준을 넘어 '패셔니스타'가 된다

카이사르는 흔히들 대기만성형이라고 하는데, 실은 젊었을 때부터 유명 인사였다. 다만 로마를 이끌 유망한 젊은이로서가 아니라, '희한하게 옷을 입는 바람둥이 청년'이라는 명성이었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카이사르하면 눈쌀을 찌푸렸다.

카이사르의 패션과 '그루밍'은 유명했다. 핏이 딱 맞게 타이트하게 입기보다는 항상 느슨하게 입는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 몸의 털도 다 밀었다고 한다. '왁싱'의 선구자인 셈이다.

키케로는 "점잖게 한 손가락을 이용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저 젊은이가 로마를 뒤엎을 사악한 계략을 품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7. 탁월함은 '디테일'과 '철저함'에 달려 있다

commons.wikimedia.org

카이사르의 전쟁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디테일을 중시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또 자신의 별장이 다 완공됐는데, 몇 가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 허물어버렸다는 일화도 사료에 적혀 있다.

집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지 인테리어는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 상세하게 지침을 줬다는 기록도 있다.

전쟁 계획이란 다르게 말하면 디테일을 통제하는 기술이다. 카이사르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던 나폴레옹도 디테일의 화신이었다.

카이사르가 제출했던 '농지법' 은 너무나 철저하게 잘 정리된 법안이어서 반대자들도 딱히 반대 구실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카이사르를 보면, 하지 않는 건 아예 무시하고 만약 하면 대충하지 않고 끝장을 볼 정도로 철저하다는 게 느껴진다.

8.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있음을 인정한다

'갈리아전기'나 '내전기'를 보면, 카이사르는 전쟁에서 운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는 언제나 운명을 테스트했으나, 운명이 허락하지 않는다 싶으면 또 빠르게 포기했다. 라인강 넘어서 게르만족의 땅으로 진전하지 않았으며, 브리타니아도 맛배기만 보고 더 이상 진격하지 않았다. 이게 카이사르의 진정한 위대함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한계 상황에 봉착했을 때도, 어쩔 수 없는 건 재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했다.

9.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카이사르의 신속함 (Celeritas Caesaris)'은 유명하다. 카이사르의 삶을 보면 약간 '현기증'이 날 정도다. 수많은 행동들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그의 군사적 스타일도 '기동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정도 때면 당도하겠지" 적의 판단을 뒤엎고 훨씬 빠르게 로마군은 당도해 적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일부러 휴일 때 갑자기 '행군'해야하는 상황을 반복해 훈련했다고 한다.

또 라틴어 고전으로 추앙받는 '갈리아전기', '내전기'도 아주 빠르게, 일필휘지로 쓰여졌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이 모든 해야할 일을 감당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동시에 하거나 혹은 한 가지로 여러 목적을 이뤘다.

10.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한다

사료를 읽어보면 여러 상황에서, 대다수는 이렇게 판단하는데 유독 카이사르만 독특하게 다른 입장을 취하는 사례를 여러번 보게 된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군중 사고' '집단 사고'를 카이사르가 경계했으며 혼자 힘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했음을 알 수가 있다. 여기에는 물론 카이사르의 예외적인 자신감이 한 몫했다.

11. 신파적인 태도를 지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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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감정'을 이용했지만 감정에 지배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정에 이끌리지 않았지만, 항상 다른 사람 입장을 배려했다. 이 모순이 카이사르의 독특한 점이기도 하다. 그의 관용과 배려는, 철저히 이성적 판단의 결과이지 감정적 끌림이 아니었다.

이런 태도는 카이사르가 쓴 글에서도 느껴진다. 감정적인 부분을 서술하지만,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자신이 잘한 점도 구구절절 쓰지 않고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기만 한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챌 수는 있도록 하면서.

12. 강한 몸에서 강한 정신이 나온다

어렸을 때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단히 몸을 단련해, 나중에 갈리아 전쟁과 내전을 이끄는 15년 가까운 기간 동안은 엄청난 육체적 고생을 견뎌 냈다. 본인이 일일이 결정해야할 수많은 업무에 둘러싸였으면서도 마지막 암살 때까지 정력적으로 일했다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사실 '세련된 취향의 바람둥이 귀족 청년'이 십몇 년을 전쟁터에서 군대를 이끌며 로마 역사상 유례가 없는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은 동시대 로마인들에게도 찬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을 안겨줬다.

13. 술을 자제한다. '미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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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무너졌을 때, 카이사르는 술 취하지 않은 채 걷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카이사르의 정적 카토가 언급한 적 있다.

카이사르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사리판단이 느슨하게 되는 걸 경계했던 듯하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신경썼지만, 정작 본인은 좋은 음식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동물을 사람보다 사랑한다"며 '반려 동물'을 애지중지하는 당시 로마 상류사회 풍습도 탐탁치 않게 여겼다.

14. 간결하고 평범한 언어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어려운 단어는 배가 암초를 피하듯 피해야 한다"고 카이사르는 말했다.

카이사르는 외래어 쓰는 걸 경계했고,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평범한 구어체 라틴어를 즐겨 사용했다. 동시대 인물들은 카이사르 문체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찬사를 던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광고 카피 같이 단순한 세 단어는 카이사르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까지도 카이사르의 문장은 라틴어 문체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15. 문제를 그냥 해결하지 말고, 창조적으로 해결한다

[flickr.com]

창조성이야말로 또다른 카이사르의 장점이 아닌가한다. 그는 문제에 직면하면, 무언가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내 돌파해내곤 했다.

카이사르는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책을 넘기면서 보는 형태의 제책도 카이사르가 고안했다고 하며, 로마 지인들과 내통하는 통신 암호도 만들었다고 하고, 본인 이름이 들어간 달력(율리우스력)도 새로 제정했다.

카이사르의 전쟁 전술도 상황 속에서 순간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들어낸 게 많다. 다시 말해, 교본화할 수 없으며 대체가 불가능하다.

16.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카이사르 경력을 따라가면 아슬아슬하다. 한 단계 한 단계, '승부수 던지기'로 점철돼 있다. 한번 삐끗하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도박을 카이사르는 여러 번 감행했다. 목표를 향해 물불 가리지 않으며, 결정적인 순간 '리스크'를 건다.

재정적으로도 엄청난 빚을 지며 살았는데, 이는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었다.

루비콘강을 건넜을 때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고 말했다는데, 실제로 이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카이사르 인생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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