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남산으로 향하는 트랜스젠더들

2015-05-2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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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짧은 치마에 쭉 뻗은 다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짙은 화장으로 한껏 치

[뉴스1]

짧은 치마에 쭉 뻗은 다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짙은 화장으로 한껏 치장한 여성들. 그들 옆을 스치자 진한 향수 향기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화려한 여성의 겉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과 일반 여성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이들에게는 '목젖'이 있었고, 그런 목에서는 남성의 굵직한 기침 소리가 새어나왔다.

평범한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야심한 시각, 서울 용산구 남산에 위치한 소월길에 범상치 않은 여성 수십 명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2일 새벽 소월길을 찾자, H호텔 앞 약 1.5㎞ 정도 되는 길가에 오가는 차를 바라보며 서성이는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둑한 밤, 공기가 다소 차가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허벅지를 대부분 드러내는 짧은 치마에 분홍색, 노란색 등 현란한 색의 얇은 자켓만을 걸치고 있었다.

각각 10~20m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거리에 나선 이들은 길가를 지나는 차량들에게 다가가 '호객행위'를 하거나 수시로 핸드백에서 거울과 화장품 등을 꺼내 매무새를 다듬었다.

매일 밤이면 어김없이 남산으로 향하는 이들은 다름아닌 '트랜스젠더'다.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를 뜻한다. 남산에 있는 이들은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새벽 내내 지나가는 차량들을 세워 "자기야, 연애할래?"라는 말을 건네며 유사성행위 등을 제안했다. 실제 뉴스1 취재진들이 새벽 이 길을 찾자 트랜스젠더로 보이는 3명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찢어진 청 미니스커트에 가슴골이 깊게 파인 티셔츠를 입고 있던 한 이는 먼저 다가와 "자기야, 연애하러 왔어? 우리(트랜스젠더) 찾으러 온거야?"라며 살갑게 말을 건넸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어물쩡 거리는 취재진에게 "원하는 것, 무엇이든 말하면 해줄게"라며 "사는 인생 이야기도 하고 연애도 할 겸, 조용한 곳 아니까 근처 모텔로 가자"고 제안했다.

누가 봐도 예쁘장한 외모를 하고 있는 한 이도 취재진에게 다가와 "서비스 잘 해줄게, 어서가자"고 말을 건네 왔다.

이들은 유사성행위 혹은 또다른 변종 섹스 등을 제안하며 그에 상응하는 돈을 요구했다.

마치 정해진 것처럼 이들은 남성이 타고 온 차량에서 성관계를 맺을 경우 5만원, 인근 모텔 혹은 자신들의 집으로 향할 경우에는 10만원을 요구해왔다. 길을 지나는 행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할 경우 이들은 남산의 한적한 공원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남산에 모이는 이들 대부분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들이었다. 성형수술을 통해 인공으로 여자의 가슴을 만든 이들은 호르몬 투여 등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아 대부분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은 "돈만 주면 함께 하는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면서도 "음주단속은 물론 이곳에서는 어떠한 단속도 없다"며 현금을 가져오라며 취재진의 등을 떠밀기도 했다.

실제 이들이 길가에 서성이는 약 2시간 동안 소월길을 지나는 경찰 순찰차 여러 대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경찰은 거리에 나온 이들에게 어떠한 제재도 없이 유유히 길가를 떠났다.

단속 '사각지대'에 놓인 탓인지 2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트랜스젠더들 앞에는 상당수의 차량들이 멈춰섰다. 이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구간을 한 시간째 빙빙 돌며 동태를 살피는 차량들도 있었다.

차량이 멈춰서자 이들은 남성 운전자와 몇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조수석으로 올라 탔다. 취재 결과 이들은 인근 H호텔의 한적한 주차장 혹은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보안이 철저하지 않은 틈을 노린 이들은 주차장으로 향한 지 약 10~20분만에 다시 호텔 정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매수 남성과의 '할 일'을 끝낸 이들은 모든 것을 총괄하는 것으로 보이는 50대 트렌스젠더에게로 향해 몇 마디를 나눈 채 다시 정해진 구역으로 가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이들에게 취재진임을 밝히고 다가가자 "우리는 시간이 돈이다"라며 "돈을 줘야만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결국 취재진이 5만원을 건네자 입을 열었다. 서른 두 살 여성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한 그는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밤 11시쯤 되면 바에 손님들이 빠지기 시작한다"며 "손님들이 적어지고 바가 한적해지면 남산으로 넘어와 새벽 3, 4시까지 호객행위를 한다"고 설명했다.

군대를 제대한 뒤 가슴 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라며 "사춘기 시절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알았고, 내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가방에 콘돔 등을 소지하고 있던 그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돈을 주고 유사성행위를 한다"며 "다만 다른 방법의 성관계를 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남산까지 오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트랜스젠더라는 신분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극히 드물다"며 "얼마 전까지는 바에서 주로 일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게 되니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거리로 나선 또 다른 이도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남산으로 왔다"면서도 "이곳은 우리가 일하는 곳이니 이제 그만 가달라"고 잘라 말했다.

이같은 기형적 구조의 성매매는 근래의 일만이 아니었다. 인근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20여년 가까이 택시 운전을 했는데, 내가 운전을 시작할 때부터 이들이 있었다"며 "처음에는 길가에 서서 손짓을 하길래 손님인가 싶어 멈춰서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수십년간 이어온 기형적 성매매가 버젓이 도심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경찰은 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관할 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구역에 대한 순찰을 돌고 있다"면서도 "과거 트랜스젠더 성매매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근래에는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와 남자 사이에 벌어지는 성행위라 관련 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며 "필요할 경우 손님으로 가장해 현장을 덮치는 등 해당 구역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유사성행위 등을 벌이는 장소로 선택된 H호텔 측은 난감한 입장이다. 호텔 관계자는 이들이 향하는 호텔 뒤쪽 주차장 인근에 대해 "구청 등과의 협의 끝에 호텔 뒤쪽은 일반 시민들의 통행권을 보장하기 위해 열어 놓은 상태"라며 "호텔 측에서도 이같은 문제에 대한 민원이 적지 않게 들어와 보안 요원 등을 통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거 몇차례 제지한 사례가 있는데 당시 그들이 '인권'과 '생존권' 등을 언급하며 강하게 항의해왔다"며 "호텔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에 이들이 더 이상 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길 바랄 뿐"이라고 호소했다.

트랜스젠더들이 남산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전문가는 이들이 원하는 성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관련 법체계가 보다 간소화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이들에 대한 '혐오적인 시각'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홀릭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트랜스젠더들이 소월길에서 성매매를 한 지 오래됐다"면서도 "이들이 거리에 나오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3000만원에서 40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이 큰 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며 "동시에 이들이 성전환수술을 마쳤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여성'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이유에서 실제 성전환수술을 모두 마친 트랜스젠더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수술 후에 이들은 호르몬 투여를 계속해서 받아야 한다"며 "이같은 조건 속에서 트랜스젠더들이 생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민등록상으로는 남자인데 외모는 여자인 사람은 단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며 "이들이 살아가는 것에 현실적인 조건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홀릭 대표에 따르면 법적으로 성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와 주변인들의 보증서, 스스로가 다른 성으로 살았다는 것에 대한 진술서, 성전환수술을 완벽하게 마쳤다는 사실, 부모 동의서, 호르몬 투여를 1년 이상 지속해왔다는 사실 등이 모두 갖춰져야만 한다.

그는 "그러나 성전환에 대한 특별법 등이 제정된 것이 아니라 성전환에 대한 표준화된 안은 없다"며 "모든 것은 단순히 '운'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홀릭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전환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남산으로 향한다"며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체계가 간소화돼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혐오적인 시선'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음지를 택하고 있다"며 "그들은 단지 인간으로서 자신의 성적 권리를 스스로 정한 사람들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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