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실천했던 우리병원 요즘 너무나 어렵다" 인하대병원 교수 글

2015-06-08 09:29

add remove print link

pixabay인하대병원 측이 메르스 감염자로 알려진 환자를 받아들인 뒤 한 교수가 남긴 글

pixabay

인하대병원 측이 메르스 감염자로 알려진 환자를 받아들인 뒤 한 교수가 남긴 글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인하대병원 외과 최모 교수는 지난 5일 페이스북으로 병원 상황을 전했다.

최 교수는 "이제는 비밀도 아니다만, 우리 병원은 지난 화요일 아주 특별한 손님을 맞이 했다"며 "어려움에 처한, 딱한 처지의 그분을 마냥 반길 수 만은 없었지만, 굳이 내가 24년 전에 했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또한 그 알량한 의료인의 사명감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곳이 병원임은 부정할 수 없기에 그분을 받아드린 우리병원의 결정은 감히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심지어 그분이 이곳 인천으로 이송되기 전 의뢰받은 몇몇 병원들이 이송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전해듣고도 우리병원의 선택이 잘못됐다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며 "평상시 기껏해야 몇 십건에 불과했던 내 페북에 이천건이 넘는 '좋아요'를 보면서 유치하게도 정의가 살아있음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이렇게도 넓은 것이였던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의(?)를 실천했던 우리병원은 요즘 너무나 어렵다"며 "매일 일천 오백명이 넘는 외래 환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많던 수술들은 모두 하나씩 취소되고 있고, 수 많은 입원 환자들이 퇴원을 자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인하대병원은 메르스 환자에 대한 격리시설과 시스템을 갖춰 2000여명이 넘는 구성원 중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다. 또 병원 측에 이송됐던 환자 또한 재검 결과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은 뒤 점차 회복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는 "요즘 나는 품절이라는 N95 마스크를 외래 책상 서랍 깊은 곳에 보관하고 있다. 아직도 나를 믿고 찾아주는 얼마 안되는 내 환자에게 혹시라도 필요할까 하여. '상처뿐인 영광' 이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오늘도 간절히 믿고 싶다"고 전했다.

앞서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여성 A씨가 지난 2일 새벽 2시쯤 인하대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가 치료를 받던 서울 지역 병원에는 음압병상(바이러스가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설계된 병실)이 부족했던 게 이송 이유였다. 질병관리본부가 인천 지역 다른 병원 2곳에 연락했지만 모두 A씨의 이송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수 글 전문이다.

내 환자의 8할은 중증도 A인 대장암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주치의인 나와는 아주 오랜기간 어려움을 함께 해왔기에 단순한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그 믿음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이제는 비밀도 아니다만, 우리병원은 지난 화요일 아주 특별한 손님을 맞이 했다.

어려움에 처한, 딱한 처지의 그분을 마냥 반길 수 만은 없었지만, 굳이 내가 24년 전에 했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또한 그 알량한 의료인의 사명감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사실 따지고 보면 그분은 아픈 사람이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곳이 병원임은 부정할 수 없기에 그분을 받아드린 우리병원의 결정은 감히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분이 이곳 인천으로 이송되기 전 의뢰받은 몇몇 병원들이 이송을 거부(http://news.naver.com/main/read.nhn…)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전해듣고도 우리병원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주변의 많은 병원들이 앞다투어 "우린 그런 사람들도 없고 그렇게 의심되는 사람들 조차 없습니다"라는 비열한 선전문구를 내세우며 환자유치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도 오히려 그들의 얄팍한 상술을 딱하게 생각하면서 지난 몇 일간 그렇게 평상시와 동일하게 수술하고 묵묵히 내 환자들만을 위해서 진료실을 지켜왔다.

교수인 나조차 그분에게는 물리적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고 의무기록 마저도 조회가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병원은 철저히 원칙에 입각한 조치를 취해왔고 또한 그 조치에 모든 구성원들은 충실히 따라 주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일까? 그분은 우리병원에서 다시한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을 받았고 점차 회복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에 요 몇일 조금은 자부심을 갖을 수도 있었고, 그 자부심에 취해서 서로를 믿으며 우리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왔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연일 회자되는 "현재 SNS에서 지지받고있는 인하대병원의 행보"( http://cafe.daum.net/ok1221/9Zdf/171973…)라는 네티즌들의 응원에 한편으로는 미소를 머금으며 소소한 보람을 느꼈고, 평상시 기껏해야 몇 십건에 불과했던 내 페북에 이천건이 넘는 "좋아요"를 보면서 유치하게도 정의가 살아있음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순진했었던 것일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이렇게도 넓은 것이였던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의(?)를 실천했던 우리병원은 요즘 너무나 어렵다.

매일 일천 오백명이 넘는 외래 환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많던 수술들은 모두 하나씩 취소되고 있고, 수 많은 입원 환자들이 퇴원을 자청하고 있다. 완벽한 격리시설과 시스템은 그들에게는 공허한 외침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그곳에는 아직도 이천 여명이 넘는 구성원들이 무사(?)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시는 것일까?

모든 것이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미쳐가는 이 세상이 이제는 두렵기까지 하다. 이 사회의 리더라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어렵기만한 이 상황을 "올바름"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이용하려고만 하는 행태들을 보이고 있고..

요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병원을 믿기에 내 몫으로 주어진, 품절이라는 N95 마스크를 외래 책상 서랍 깊은 곳에 보관하고 있다. 아직도 나를 믿고 찾아주는 얼마 안되는 내 환자에게 혹시라도 필요할까 하여..

"상처뿐인 영광.."

이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오늘도 간절히 믿고 싶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