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쓰레기 물이 손에 뚝뚝" 폐지 주워본 체험기

2015-07-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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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저녁 9시 폐지를 주우러 길에 나섰다. 폐지를 줍는 노인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돈

지난 2일 저녁 9시 폐지를 주우러 길에 나섰다. 폐지를 줍는 노인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알고 싶었다.

체험 장소로 택한 곳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일대. 그러나 시작하자마자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우선 주변 고물상이 모두 닫은 늦은 저녁이라 리어카를 대여하기 어려웠다. 또 힘들게 생활하시는 분들의 일감을 뺏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무엇보다 혼자 폐지를 주우려니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다. 

이에 폐지 줍는 어르신을 찾아 함께 따라다니기로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충정로에서 아현 방향으로 걷던 중 손수레를 끌고 이동하는 한 장년 남성 대모 씨(52)를 발견했다.

 

아현동 인근에서 폐지가 담긴 손수레를 끌고 걸어가고 있는 대 씨를 발견했다. 대 씨가 저녁 먹고 나온 뒤 주운 폐지가 담긴 손수레./위키트리

 

저녁밥을 먹고 나왔다는 대 씨의 손수레에는 폐지가 절반 정도 차 있었다. 기자가 따라다니며 같이 폐지를 줍겠다고 말하자 "더러운 일을 왜 하려고 하냐. 나 따라다니면 힘들다"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대 씨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대 씨가 손수레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던 도중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폐지 값이었다. 그는 폐지 값이 원래 1kg당 100원이었는데 정부가 고물상에 주는 세제 혜택을 줄이는 바람에 80원으로 떨어져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가 세법 개정을 하면서 고물상이 내는 세금이 늘어났다. 2013년에는 고물상이 폐지·고철 구입 비용의 5.66%를 세금에서 공제받을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는 공제율이 4.76%로 낮아졌다. 이렇게 낮아진 공제율은 고스란히 폐지를 줍는 이들에게 전가됐다. 

대 씨가 손수레를 끌고 아현동 언덕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 아현동과 충정로 일대에는 언덕이 많다. /위키트리

 

북아현동과 충정로 일대는 유난히 언덕이 많았다. 대 씨는 연신 "주변에 고바위가 많아 힘들다"고 말했다. 

대 씨는 "더러우니 만지지 마라. 마음이 편치 않다"며 기자를 말렸지만 열심히 폐지를 주웠다. 하지만 흘깃흘깃 바라보는 행인들의 시선이 느껴져 자꾸 멈칫하게 됐다. 

또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금방 더러워졌다. 캔을 주우려다 흘러내린 이물질이 손에 묻기도 했다. 대 씨 역시 목장갑을 끼지 않아 이유를 물어보니 "목장갑 사려면 돈이 들고 또 목장갑 끼고 일하면 속도가 느려진다"고 말했다. 

북아현동에서 충정로로 걸어왔다. 충정로역 인근에 있는 편의점에서 쓰레기 봉투를 열어 캔을 수집하고 있는 대 씨.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일을 하고 있다./위키트리

 

대 씨를 따라 북아현동 골목골목을 걷다보니 어느새 충정로3가동을 지나 서대문역에 도착했다. 서대문역 인근에는 주변 음식점에서 나온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서대문역 인근에는 주변 음식점에서 나온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위키트리

 

평소에는 코를 막고 황급히 지나갔던 곳이지만 이날은 종이박스를 얻기 위해 쓰레기에 손을 댔다. 박스에 배인 음식물쓰레기 물이 손에 묻었다. 

또 기자는 캔을 골라내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뒤지기도 했다. 그러자 대 씨는 "이제 만지지 말라"며 기자를 향해 손사레를 쳤다. 그러면서 대 씨는 박스만 빼서 가면 욕을 먹는다며 박스에서 꺼낸 쓰레기를 쓰레기봉투에 고이 넣었다. 이 때 맞은 편에 있던 중년 남성은 기자가 자리를 뜰 때까지 뚫어지게 응시했다. 

서대문역 일대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자신이 사는 충정로로 걸어가는 대 씨. 옆으로 차들이 달리고 있다./위키트리

대 씨가 사는 고시원으로 걸어가던 도중 종이박스 더미를 발견했다./위키트리

 

대 씨는 한 달에 20만 원하는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그는 용인 건설현장에서 철근을 나르다가 허리를 다쳐 힘든 일은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기초수급생활비만으로는 약 값과 생활비를 대기 힘들어 폐지를 줍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새 11시 반. 폐지가 손수레 높이까지 쌓였다./위키트리

 

어느새 11시 반. 서울역까지 폐지를 주우러 간다던 대 씨는 시간이 늦었다며 들어가야겠다고 했다. 대 씨는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 반까지 종일 폐지를 줍는다고 말했다. 

폐지는 손수레 높이까지 가득 찼다. 대 씨는 하루에 폐지 60kg를 주워 4000원 정도를 번다고 알려줬다. 

대 씨에게 맥주 한 캔을 사드리고 인사를 했다. 대 씨는 기자 덕분에 폐지를 많이 주운 것 같다며 고맙다고 했다. 괜히 짐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대 씨는 다음에 만나면 자신이 맥주를 사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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