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르스 자택 격리자 였다" 살벌한 로맨스의 시작

2015-07-0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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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5월 말 수술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이하 삼성병원)에 통원치료를 다니고 있었다. 수술

필자는 5월 말 수술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이하 삼성병원)에 통원치료를 다니고 있었다. 

수술 흉터만 15cm에 달하도록 배를 갈랐지만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촐싹거리며 밥도 거르며 돌아다닌 것이 화근이었을게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나는 결국 병원에서 수납을 하던 도중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누워있는 곳은 삼성병원 응급실이었다. 

그때가 바로 6월 3일 6월 3일 6월 3일.  

한산했던 강남 삼성서울병원 로비 / 연합뉴스

 

내가 응급실에 누워있던 3일은 삼성병원이 메르스 감염 환자로 한창 시끄러웠을 때였다. 

이날 응급실에 입원한 나를 찾은 것은 나의 어머니였다. 

평생 'FM'에 충실한 교사로 살아 오신 어머니는 당일 바로 제주도 교육청에 자진 신고를 하셨다. 참고로 내 본가는 제주도이며 어머니는 혹여나 학생들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교육청에 바로 연락을 하신 것이다. 

교육청에서는 어머니가 응급실을 방문한 3일부터 바이러스 잠복기(2주)가 지나는 17일까지 자가 격리를 권유했다. 

어머니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데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인 나는 어머니와 함께 스스로 자가 격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회사는 커녕 집 밖으로도 나갈 수 없는 격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13일이 돼서야 내가 3일 삼성병원 응급실을 방문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메르스 자택격리자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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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날(3일) 응급실에서 퇴원하는 나에게 그 어떤 의료진도 메르스와 관련한 주의 사항을 알려주지 않았다. 

병원은 되려 처방이 나온 약을 누락시키기까지 하는 어수선함을 보였다.

MBC '무한도전 캡처'

 

어머니와 나는 삼성병원에서 나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감금 생활을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메르스 환자와 격리자에 대한 뉴스가 쉴 새 없이 쏟아졌고 많은 이들의 걱정스러운 연락이 이어졌지만 다행히 어머니와 나는 그 어떤 메르스 의심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정작 나와 나의 어머니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 평생 교단에 서온 어머니와 직장 생활을 하던 내가 집이라는 공간에 갇혀 할 것이 당최 무엇이란 말인가. 

도교육청에서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연락을 하며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했다. 교단에 다시 서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였다.

삼성 병원? 보건복지부? 강남구청? 전화번호도 1도 모르겠다. 어느 한 곳 에서도 연락은 없었고 삼성병원 응급실 방문자 관리를 하긴 하고 있는 건지 강하게 의심이 들었다. 

KBS '아침마당' 캡처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6월 11일 오후쯤이었다. 

갑자기 휴대전화로 '출국제한통보'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출입국관리법 제4조에 따라 출국이 제한되오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란다. 

유선상 연락도 아니고 열흘 가까이 지나 뜬금없이 날아온 문자에 웃음이 피식 터져 나왔다. 

휴대전화 메시지 캡처 / 이하 홍수현 

그 때 부터였을 거다. 병원과 보건복지부 그리고 구청과의 살벌한 로맨스가 시작된 게. 

6월 13일. 드디어 연락이 왔다. '자택격리대상자'라고. 심플하게 문자 하나 왔다. 응급실을 방문한 지 열 흘이 지나서였다. 전화? 당연히 없다.  

 

14일 낯선 전화번호가 연달아 울리기에 받았더니 보건복지부다. '메르스 자택격리대상자'라며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근데 묻는 말이 어딘가 이상하다. 격리 해제일(17일)을 3일 앞둔 이제 와서 나에게 자택격리대상자라고 알려줘 놓고 "어디 나간 곳은 없으셨죠? 돌아다니셨으면 안돼요."란다. 

다시 한 번 있는 기억 없는 기억, 뇌세포 DNA까지 쪼개봐도 그 누구도 나에게 메르스 자택격리 대상자임은 알려주기는커녕 경고조차 해준 적은 없다. 교사 정신이 투철한 어머니 덕분에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고 있었을 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인가보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KBS '안녕하세요' 캡처

 

15일 이번에는 삼성병원과, 구청에서 쉴새없이 번갈아 가며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다들 하는 말은 똑같다. "열은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건강 상태를 점검한다. 언론에서는 필요한 물품도 지원해준다던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어느 곳도 그런 말을 꺼낸 곳은 없었다. 

집에 사다 둔 물이 떨어져 갈 쯤이라 슬쩍 말을 꺼내보았지만 돌아온 답은 "자기네는 모른다'는 대답뿐. 네 고맙습니다~  

MBC '무한도전' 움짤

 

구청의 관리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응급실에서 정신을 잃었을 당시, 부모님은 제주도에 계셨기 때문에 노원구에 사는 작은어머니가 먼저 병원을 찾아주셨다. 

당시 치료를 위해 기본적인 신상을 비롯한 서류 작성이 필요했고, 구체적인 내 주소를 알 리 없는 작은어머니는 본인 주소인 노원구 주소를 적으셨다. 이에 15일부터 노원구청에서 나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노원구청과 강남구청에 직접 전화를 걸어 메르스와 관련해 주소지 정정을 3차례 이상 요청했지만, 강남구청은 나는 자기네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삼성병원은 치료를 받고 있던 모든 과에서 예약이 취소됐다며 각기 다른 과가 제각기 다른 번호로 전화해댔고 보건복지부는 전화는 하지도 않으면서 전화를 받으라는 문자만 거듭 보내왔다. 

일 처리가 엉망인 구청과 체계가 전혀 잡히지 않은 병원, 무늬만 정부인 보건복지부 탓에 며칠간 휴대전화는 불이 났고 나는 아무런 소득 없이 탈진하기 직전인 상태까지 됐다. 

이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단 두 가지. "죄송합니다"와 "잘 모르겠습니다"였다. 오죽했으면 결국에는 되물어 봤다. "저에게 전화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메르스와 관련해서 뭐 알고 있는 건 있으세요?"라고.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움짤 (열매)

 

그리고 드디어 격리해제일인 17일이 됐다. 난 이제 모든 것에서 해방 돼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알았다.

부질없는 착각과 겪어보지 못한 고난은 그 때 부터였다.  

보름만에 기어나온 사회에서 나를 반겨주는 곳은 없었다. 난 그렇게 또 다시 사회적 왕따가 되었다. 

- 내일(10일) 2편이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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