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격리 후 나는 사회적 왕따가 되었다"

2015-07-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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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부터 17일까지. 2주간 메르스 자택 격리가 끝난 후 나는 즐거

6월 3일부터 17일까지. 2주간 메르스 자택 격리가 끝난 후 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보름 만에 사회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곳은 없었다. 나는 어느덧 이 사회에서 피해야 할 존재, 사회적 왕따가 되어있었다.

나는 6월 17일 자정을 기점으로 격리 해제가 됐고 미뤄둔 일 들을 한둘씩 해치우기로 했다.

일단 해제 첫날인 18일. 강남구청에서는 또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귀하는 17일까지 자가격리대상자였으나 명단을 늦게 받아 이제야 연락드려 죄송합니다"라는 귀엽기 짝이 없는 문자를 말이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캡처 / 이하 '홍수현'

이미 터무니없이 엉망진창인 행정을 느끼고 있던 터라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일 내게 도착한 '자가격리 통지서'. 우주를 열 바퀴쯤 돌고 돌아 나에게 온 것인지, 이제 와서 나에게 이 통지서를 발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잠시 생각에 빠졌다.

보시다시피 격리 기간은 3일부터 17일까지인데 발급 날짜는 18일이다.

"아하! 탁상행정". '그들에게도 자신들은 메르스 관리를 위해 무엇을 했다는 증거가 필요할 테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자가격리통지서

해제 다음 날인 19일 나는 메르스나 삼성병원과는 별개로 수술 이전부터 받던 치료를 받기위해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내게 삼성병원 등 메르스 관련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혹은 증상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그들은 내가 치료를 위해 하나씩 검사를 받을 때 마다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리스트에는 마스크 착용, 폐기물 처리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리스트 속 나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의심환자'로 분류돼있었다. 격리는 해제됐지만, 바이러스 잠복기가 끝난 직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의료진이 수많은 장갑을 겹겹이 끼고 비닐로 된 가운 따위를 입고 마스크 너머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서울대병원에서 나를 조금 꺼리는듯한 느낌을 받기는 했어도 이는 의료진이라기 보다 '사람으로서 본능적인 일일 수도 있겠거니'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체크리스트

이윽고 날짜는 흘러 20일. 메르스로 인한 서러운 사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일단 삼성병원이 외래를 폐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술 이후에는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나는 치료가 중단됨은 물론이고 당장 지병과 관련된 먹을 약조차 떨어져 갔다.

삼성병원에서는 기존에 받았던 처방전으로 인근 병·의원을 찾을 것을 권유했다. 일부 삼성 의료진은 소견서를 써서 팩스로 보내주는 등 성의를 보였지만 일부는 나 몰라라 행태를 보여 수차례 간호사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날 나는 삼성병원에서 받아두었던 처방전을 들고 강남구 A 병원을 찾았다. 당시 웬만한 병·의원에서는 삼성병원 방문 여부 등을 물었고 나는 그렇게 그대로 쫓겨났다.

삼성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자 A 병원 데스크에 있던 직원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심슨네가족들 움짤

무슨 이유인지는 알겠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들은 잠시 방으로 들어가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더니 굉장히 이상한 소리를 내게 늘어놓았다. "죄송한데 다른 병원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씩씩 오른 열을 삭히기도 전에 나는 또 다른 강남구 B병원에서도 같은 일을 겪었다. 내가 무슨 벌레라도 되는 걸까.

씁쓸하게 병원 문을 나서는 내 등 뒤로 병원 직원들이 서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빨리 가서 손 씻어, 여기 소독제로 다 닦고! 마스크는 쓰고 있었지?" 라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심슨네가족들 움짤

결국 삼성병원에서는 진료협력이 가능한 병원 리스트를 보내주었지만 별다른 소용은 없었다. 진료과목 자체가 없거나 집에서 너무 멀거나 했으니까.

그렇게 병원에서 몇 차례 문전박대를 당한 나는 잔뜩 움츠러들었고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무슨 볼드모트냐" 말도 못하고 슬금슬금 피해야 하게.

영화 '해리포터'중 볼드모트 캡처

그렇게 21일부터 나의 병원과 약국 방랑기는 시작됐다. (참고로 나는 삼성병원에서 서로 다른 3개과 진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3곳을 찾아야 했다.)

마지못해 나를 받아주는 병원에서도 의사와 간호사들은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그저 날 받아준다는 사실만도 고마웠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약마다 코드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삼성병원에서 처방받아 먹던 약을 처방해 줄 수 없는 병원들이 있던 것이다.

당시 내 몸 상태는 함부로 다른 약으로 대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렵사리 찾은 병원에서도 나는 다시 문을 나서야 했다.

짱구와 도라에몽

그러던 22일 구세주가 나타났다.

병원에서 몇 차례 거부를 당한 나는 소심한 마음으로,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오랫동안 다니던 병원을 찾았다.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터라 앞서 집 근처에 있는 인근 병원들을 찾았던 것인데 결과는 뭐 앞에 썼다시피 참담했으니까.

이 병원 역시 출입구에서 삼성병원 방문 혹은 발열 내용 등을 확인하고 있었고 나는 또다시 출입문 앞에 멈춰서야 했다. 또다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원장 선생님께서 직접 병원 출입문 밖으로 나와서 현재 상태에 대해 상담을 해주셨다. 출입문 앞에서 간단한 진료와 상담이 이뤄졌다.

원장 선생님은 병원 안에 들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정중한 사과를 하셨고 나는 조금 착잡하지만, 이전과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빨간머리앤' 캡처

그렇게 며칠을 돌고 돌았을까. 나는 마침내 3개의 새로운 처방전을 얻을 수 있었다. 처방전을 받은 것만으로도 더는 아프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각 개인병원에서는 개인 병원 근처에는 없는 약이 많으니 대형병원 근처 약국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근처 약국 몇 곳을 돌아보았지만 약은 없었다.

심슨네가족들 움짤

그리고 이번에는 또다시 시작된 약국 방랑기.

서울시 중구 백병원, 서초구 강남 성모병원, 강남 세브란스병원 등 세 곳 인근에 위치한 약국이란 약국은 죄다 돌아다녔지만, 꼭 한두 가지는 없다고 하는 통에 이제 나는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심슨네가족들 움짤

결국 나는 다시 삼성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외래는 하지 않더라도 주변 약국은 영업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처방전으로는 좀처럼 다른 병원 쪽에서 약을 구할 수 없다는 하소연을 늘어놨다. 내 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어쩐지 그곳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일 것만 같아서.

다행히 삼성병원 인근 몇몇 약국은 영업하고 있었고 나는 다시 일원동 삼성병원을 찾았다.

원래 분주한 곳이 아니긴 하지만 삼성병원이 위치한 일원역 인근은 적막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삼성서울병원이 있는 일원역에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 홍수현

그렇게 모든것이 잠잠해지나 싶을 쯤, 지난달 25일 강남구청에서 또다른 연락이 왔다. 복지 생계비를 지원한다는 소식이었다. 앞에 붙어있는 '긴급'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도 않다.

여하튼 나는 6월 26일 생계비 신청을 했고 이번달 3일 40만 9000원을 지급받았다.

강남구청 홈페이지 캡처

7월 10일 현재 나의 메르스 자택격리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새로 처방받아온 약들도 슬슬 바닥을 보이는데 삼성병원은 당최 외래를 재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에서 느껴지듯 현재 내 몸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못해 겨우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에 가깝다. 그래서 더더욱 의료진과의 신뢰가 필요하다.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약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서울병원(왼쪽) 서울대학교병원 / 각 병원 홈페이지캡처

참, 6월 중순 이후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병원 두 곳(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이번 메르스에 대응한 태도를 비교하자면 두 병원은 참 달랐다.

삼성병원에서는 모든 방문객에게 마스크를 나눠주며 손을 소독하도록 하고 있었다. 외래 환자들은 진료 대기 중 체온 체크를 비롯해 기본적인 메르스 의심 증상 점검이 이뤄졌다.

서울대병원에서는 검사 당시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것을 제외하고는 "혹시 열이 나거나 하세요?" 라고 내가 다른 곳에서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들어본 질문조차 들은 기억이 없다.

환자 입장에서, 사실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은 환자인 나를 검사하는 게 아니라 '메르스 의심군'으로 분류된 나를 경계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pixabay

이번 일을 겪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부 체계부터 근거 없는 카더라에 의한 상처까지. 사스나 신종플루 때와는 달리 내가 직접 겪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부디 더는 감염자도, 사망자도 없기 고이 대한민국에서 메르스가 물러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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