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전통시장에서 '노라조'와 놀아봤다

2015-07-24 14:28

add remove print link

시장 한복판 ‘소문난 순대곱창집’에 노라조가 나타났다 / 이하 위키트리 "여러분 잠시만,

시장 한복판 ‘소문난 순대곱창집’에 노라조가 나타났다 / 이하 위키트리

"여러분 잠시만, 잠시만요. 연예인도 초상권이 있어요! 그러니까 사진 찍으셔서 SNS에 올리시고 많이 퍼뜨려주시기 바랍니다~"

"연예인도 초상권이 있다"는 소리에 순간 굳었던 시장 사람들이 요란하게 웃었다.

"아휴, 이미 올리고 있어요!" 어느 넉살 좋은 아주머니가 소리치고, 주위로 시장 바구니를 든 사람 몇몇이 더 몰려들었다.

지난 9일 인천 서구 가정동에 위치한 중앙시장 골목에서는 '순대곱창'과 '헤비메탈'이 어우러진 흔치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밴드 노라조의 '동네가게 CM송 헌정 프로젝트' 두 번째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이었다.

'광고 구걸' 하다 '광고 기부'?

노라조는 지난 3월 "광고 좀 주세요!"라며 '니팔자야 CM송을 불러보자 버전'을 냈었다. '노라조 올림'까지 다소곳하게 쓴 뮤직비디오에 모 피자 기업은 박수치며 화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동네가게 CM송을 불러보자'며 광고 기부에 나선 것이다. 첫 광고 기부 뮤직비디오는 이랬다.

"신선한 물회가 온다~" / 유튜브 '핫질 HOTZIL'

물회와 대게찜이 이렇게 '트렌디'하게 들릴 줄 누가 알았을까. '대체 무슨 약을 빨면 이런 곡이 나오지' 궁금했다. 마침 2차 광고 기부 소식이 들려왔다.

"여기 '약' 파는 데가 어디에요?" 물어물어 직접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 찾아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이게 바로 프로구나. 이 사람들, '똘끼'가 프로급이야.

호흡 맞춰 표정 연기에 한창인 노라조 멤버들. 소속사 측은 "같이 있는 시간이 원체 많다 보니까 생각이 거의 똑같다"고 말했다.

"저희는 원래 시장에서 국밥 먹고 마트 가고 이런 사람들인데"

'광고 구걸송' 이후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광고 기부송'을 만들고 다니는 노라조. 그 뒷사연은 뭘까. 사실 여기에는 '좀 더 솔직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조빈 씨는 "사실 저희는 원래 시장에서 국밥 먹고 마트 가고 이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동네가게를 위한 노래도 만들어보자고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노라조 조빈 씨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약 탄 것 같은' 남자였다. 조 씨는 이날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시종일관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을 하며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조 씨는 입구에서 기웃거리며 서 있던 가겟집 고등학생 딸에게 "내가 지금 후회하는 게 괜히 인문계 가서, 어차피 대학도 못 갈 거"라며 허물 없이 '자학개그'를 건넸다.

또 수저통을 들고 노래를 부르다 뜬금없이 숟가락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울버린' 흉내를 내기도 했다. 평범한 철수저를 아다만티움 칼날로 바꾸는 패기.

'숟버린 조'가 "나 그냥 이러고 있을라고"라며 숟가락을 흔들자 이에 질세라 밴드가 흥을 돋웠다. 흐흐 웃던 감독이 "이대로 갈게요!"라고 외쳤고, 이 장면은 그대로 촬영 카메라에 담겼다.

선풍기에 흩날리는 머릿결, 타투 가득한 팔뚝 앞으로 보이는 순대, 뜨거운 락스피릿…!

조빈 씨의 농담은 실없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익살스러운 분위기는 곧 시장 사람들 협조와 즉흥적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순대집 사장님은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다. "사장님도 이쪽에 앉으세요"라며 권하는 감독에게 본인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에 조빈 씨는 "사장님! 컴온 베이베~"라며 넉살 좋게 손짓했다.

이어 "저기 따님이시죠? 너도 와. 내 생각엔 네가 졸업하잖아? 엄마가 가게 하라고 할 수도 있어"라며 곁에 서 있던 딸까지 뮤직비디오 화면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촬영에 함께 하게 된 가겟집 모녀. 수줍게 입을 가리고 웃는 분이 순대집 사장님이다

노라조는 가겟집 모녀와 같은 상에 앉아 즉석 인터뷰에 들어갔다. "이건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저거는?", "이것도 직접 만드신 거예요?"라는 질문에 "네", "아, 저건 시골에서"라며 짤막짤막한 대답이 이어졌다.

"국밥 하나 딱 먹으면서, 보드카 한잔 딱 먹으면서 캬~ 와따스키~!"

곧이어 조빈 씨가 속사포 같은 칭찬 세례를 쏟아냈다.

"근데 여기 있는 식당의 모든 건, 물론 여기 이런 건 돼지가 하사하신 걸로 한 거지만, 어쨌든 다 직접 만드셔서 야~ 그래서 중앙시장에서 이게 난리구나."

"이제 이 소문난 순대가 중앙시장을 넘어서, 인천을 넘어서, 한국을 넘어서, 미국에서도 그리워하는, L.A.직영점, 블라디보스토프 직영점!"

"거기 러시아 춥거든. '어후, 어후 어후 추워스키 추워스키' 이러면서 딱 와갖고, 국밥 하나 딱 먹으면서, 보드카 한잔 딱 먹으면서 '캬~ 와따스키~!' 하면서 집에 가는 거야."

분명 사장님은 "네"나 "저건 시골에서" 밖에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말에 순간 조빈 씨가 신내림 받은 줄 알았다.

노라조가 위키트리 독자들을 위해 남긴 최면 영상. 신들린 듯한 입담을 엿볼 수 있다. ‘여친, 남친’ 급한 분들, 회사 일이 잘 안 풀리는 분들은 꼭 보시길

"촬영할 때 주민 분들께 말을 많이 거시네요?"라고 묻자 노라조 매니저는 "성격이에요, 성격"이라고 대답했다.

촬영 내내 조빈 씨는 시장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산책 나온 강아지에게도 말을 걸었다. (키 180cm가 넘는 남성이 하얀 반려견을 안고 "오구오구 달이 엄마 봐~ 엄마 봐~"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신선했다.)

매니저는 "조빈 씨 자체가 남 피해 주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이거 좀 조용히 그냥 하고 갔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걱정 많이 하더라"고 전했다.

이혁 씨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며 "(인터뷰에서) 이혁 씨한테 물어봐도 '형님하고 똑같습니다' 이렇게 가는 게 많다"고 소개했다.

사실 이혁 씨 이미지는 조각미남인데… 조각이 순대국밥을 먹고 있다니 짱신기

"본인들 노래는 '샨티샨티 카레카레'면서…"

동네가게 CM송 헌정 프로젝트 곡은 노라조가 직접 프로듀스했다. "자기들 노래는 '샨티샨티 카레카레' 이렇게 만들면서, 헌정송은 쓸데없이 고퀄리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평이다.

조빈 씨는 "사실 처음엔 '니 팔자야'에 동네 가게 상호를 다 넣어 부르려고 했다"고 밝혔다. '광고 구걸송'처럼 한 곡을 40구절로 나누어 가게 40곳을 담을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그런데 대기업은 다들 들으면 알지만 동네 가게는 잘 모를 수도 있다. '저기가 어디야?' 이럴 수도 있고. 그래서 의논 끝에 한 가게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라조는 곡을 만들기에 앞서 직접 가게를 찾아 사장님을 뵙고 사연을 듣는다. 그렇게 가게 개성과 특징을 담아 곡을 만들어낸다.

이날 촬영 직전까지 곡을 수정하느라 늦었다는 노라조는 "좀 더 그 가게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듣다 보면 가사에 있는 가게 메뉴나 장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200여 사연 가운데 고르고 고른 '착한 가게'

돼지국밥과 동치미냉면, 그리고 순대볶음 사이에서 ‘ROCK SPIRIT’

동네가게라고 해서 '아무 가게'나 고르지도 않았다. 200여 통에 달하는 사연에서 제대로 '착한 가게'를 골라냈다.

조빈 씨는 "처음 개업하신 분들보다는 꾸준히 오래 하신 분들 중에서 고르는 편이다"라며 "사실 처음 개업하신 분들은 잘 될지 안될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느냐. 노라조도 '슈퍼맨' 전까지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꾸준히 오래 하신 분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혼자 하신 분들, 주변 평판이 좋으신 분들 위주로 고르고 있다"고 밝혔다.

성실하게 가게를 꾸려왔지만 가게를 알릴 방법이 없었던 분들과 홍보가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은 가게를 찾아 CM송을 만들어 드린다는 게 노라조 측 설명이다.

진정한 똘끼는 '노력'을 동반했다

사실 CM송 헌정 프로젝트는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달 동안 꾸준히 준비해 왔고, 들인 시간만큼 많은 노력과 고민이 들어갔다.

조빈 씨는 "이 모든 것들이 좀 신선하게 다가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들었을 때 '아 그 노라조, 옛날에 들었던 거잖아 비슷하네' 이렇게 되면 노래 자체를 안 듣게 되는 상황도 생긴다"며 "그래서 아예 저희가 했던 것과는 반대의 느낌을 내도록 했다"고 헌정송 뒤에 숨은 고민을 털어놨다.

'한국 가요계의 마약상', 'B급 감성의 거성' 등 노라조가 갖고 있는 별명은 많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노라조는 '약 빨았다'고 웃기엔 더없이 진지했다.

'재미'를 찾기 전에 '배려'를 앞세우는 밴드, 자신들의 끼를 남을 위해 쓸 줄 아는 밴드. 진정한 똘끼는 노력을 동반했고, 노라조는 진정한 '프로'였다.

CM송 헌정 프로젝트 뮤직비디오 2탄 / 유튜브 '핫질 HOTZIL'

* 위키트리 김나경, 전성규 기자가 공동 취재한 스토리입니다.

home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