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아내로 둔 한 남자의 고백

2015-08-19 11:23

add remove print link

이하 SBS스페셜 '최후의 심판, 엄마여서 미안해' 방송 영상 캡처 "처음에 결혼하고

이하 SBS스페셜 '최후의 심판, 엄마여서 미안해' 방송 영상 캡처

"처음에 결혼하고 몸을 안 주려고 해

왜 그러냐니까 얘기도 안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맏이를 낳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일본놈들에게 붙잡혀가 골병이 들도록 얻어맞고 밤에는 한 방에 하나씩 넣어서는 군인들 열 명씩 넣어놓고 밤새도록... 그 젊은 놈들이 사정을 봐줍니까.

기분 좋게 못 살았지 남의 남자하고 실컷 뭐하던 것을 내가 데려와서 사니 기분 좋게 못 살고 (당시에는) 지금이라도 새장가 가서 새사람하고 살아봤으면 (생각했었어요)

어릴 때 그런 고통을 받았으니 사는 동안 평생 영향을 미쳐서 아프다고 하는 게 달리 아플까 (위안소 생활 때문에) 골병이 드니 아프다 하지. 한평생 아프다 하고

뭐하러 그런 데 갔나? (물으면) 가고 싶어 갔나. 붙잡혀갔지 그러데요

내가 원망해봤자 소용없고 겪은 사람이 더 애먹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일본 놈들 밑에서 고생 그만큼 하고. 해방되고 나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그때도 고생 많이 하고 요새 혼자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참 별 마음이 다 들어요 진짜

가끔 '이놈의 자식들 때문에 나 죽는다 사람 살려라' 할 때가 더러 있어요 혼자만 마음 아프고 그놈들이 학대해서 고생한 것 생각하면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 하고 막 그래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내가 살아온 평생 요즘이 제일 심심하고 사는 것 같지도 않고

(일본이) 말만이라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사과라도 듣고 죽으면 그래도 저승 가서 잊어버리든지 할 텐데 그런 사과도 못 듣고 가니 너무나 분하지요."

일본 정부로부터 한마디 사과도 받지 못하고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외한 할머니 남편 송선호(87) 씨가 한 말이다.

광복절인 지난 15일 저녁 SBS스페셜 '최후의 심판, 엄마여서 미안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족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송 할아버지가 첫날밤 잠자리를 하지 않으려는 신부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첫 아이를 낳은 후였다. 송 할아버지는 "남의 남자하고 실컷 뭐하던 것을 내가 데려와서..."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어디 맘 놓고 얘기할 곳도 없고 둘이서만 알고 살아왔다"라고 말한 송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과거를 고백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은 아픈 아내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외한 할머니는 11살 때 정부등록 위안부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갔다. 평생을 병으로 고생하다 치매로 남편과 떨어져 살던 김 할머니는 다큐 제작 당시인 지난 6월 세상을 떠났다.

송 할아버지는 70년을 함께해온 아내를 떠나보내고 "섭섭하다. 많아 아팠어도 살아있을 때는 괜찮았는데..."라며 눈물을 보였다.

이에 송 할아버지는 "(일본이) 말만이라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사과라도 듣고 죽으면 그래도 저승 가서 잊어버리든지 할 텐데 그런 사과도 못 듣고 가니 너무나 분하다"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그들의 가족들도 아직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위안부 피해자 자식들은 대부분 엄마가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부정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위안부 피해자 김경순 할머니 딸 김미숙 씨는 "(엄마는) 자식들이 과거를 알까 봐 사진도 감추시고 그러셨다.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가 40대부터 신경안정제를 드셨다.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셨고. 저는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19살 때 일본 히로시마에서 위안소 생활을 했다는 김 할머니는 자식들에게도 감추던 이야기를 1993년 처음 세상에 털어놓았다.

그가 증언한 위안소 생활이다.

home 김도담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