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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CT지기

 
로봇, 기술, 기계, 컴퓨터
이 단어들이 가진 진정한 의미는
우리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로봇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인류의 희망을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존재인가? 인류의 역사를 파괴할 수 있는 부정적인 존재인가?

 답은 없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로봇은 어려운 대상이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물리적인 거리감과는 달리 인간과 로봇사이에는 아직까지 모호한 심리적인 거리감이 남아있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로봇이 등장하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며 때로는 그들의 영웅적인 면모에 반했고 때로는 인간을 뛰어넘는 그들의 능력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진행된 ‘로봇 에세이’ 전은 이처럼 로봇이라는 대상에 대한 다양한 느낌들을 담아 낸 전시였다.

 전시 소개에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이제 우리는 기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인간과 기계의 공존상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 공존은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과 공포 모두를 제공하고 있다.’

 기계와의 공존이 인간에게 가져오는 희망과 공포. 필자가 이 전시를 감상하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문장이었다.

 ‘로봇 에세이’ 전에 참가한 작가 8명/팀이 보여주는 작품 세계는 로봇, 즉 기술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충분히 묻어있었다. 짧은 전시 구간이었지만 충분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상진 작가의 <화성 영가>(2015) / CT지기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니 아름다운 화음이 들렸다. 전시장에서 노래 소리라니! 하지만 정작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5개의 의자와 스피커가 전부였다.

 이 작품의 이름은 <화성 영가>(2015)이다. 김상진 작가의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파란 불빛을 내는 스피커가 바로 인공음성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노래를 부르는 ‘로봇’이다.

 실제로 곡 작업을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일본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한 음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가 이 프로그램에 입력한 곡은 흑인 영가인 ‘Lord, I want to be a Christian'이다. 이 노래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흑인 노예들이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받으며 부르게 된 일종의 토착 민요인 이 곡은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문화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점점 우리가 알게 모르게 로봇, 기술의 문화에 물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도록 하려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몇 년 후 우리가 더 이상 사람이 부른 노래가 아닌 기계가 만든 노래를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공감한 순간 이 작품이 말하고 있는 희망과 공포를 볼 수 있었다. 가수가 없어 곡 작업을 하지 못 했던 사람들이 기계를 사용해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과 가수라는 직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피터 윌리엄 홀든 작가의 <아라베스크>(2007) _1 / CT지기
 

피터 윌리엄 홀든 작가의 <아라베스크>(2007)_2 / CT지기
 
   필자에게 전시장 안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피터 윌리엄 홀든 작가의 <아라베스크>(2007)를 선택할 것이다.

 푸른색의 조명을 받아 파란 빛을 띠고 있었던 팔들과 다리들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기계장치’에 고정된 팔들과 다리들은 이따금씩 클래식 선율에 맞춰 군무를 선보인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림자에 비춰진 군무의 모습이 기괴하기보다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본 모습은 그로테스크했다. 그런데 그림자를 통해 본 이 작품은 정 반대의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바글바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멀리서 볼 때는 어떠한 감흥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에 비해 똑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연을 볼 때는 멋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기계장치를 보았을 때는 분명했던 이성이 그 모습이 약간 변하기만 해도 풀어져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통해 문제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희망이 공포가 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패트릭 트레셋 작가의 <폴이라는 이름의 다섯 로봇>(2012) / CT지기
 
   전시장 모퉁이를 돌자, 5개의 책상과 벽에 가득한 그림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죄다 초상화이다.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애매한 이 초상화들이 뜬금없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 책상의 정체를 알고 나서야 초상화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5개의 책상은 단순한 책상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패트릭 트레셋 작가의 <폴이라는 이름의 다섯 로봇>(2012)으로 작가가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만든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 ‘로봇’이다. 그림으로 탄생할 대상을 카메라를 통해 인식하면 폴의 임무가 시작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분명 작가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폴이지만 그의 작업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폴은 창조하는 로봇인 셈이다. 그려야 하는 대상은 분명하지만 그 결과물은 작가, 심지어 폴조차도 예상할 수 없다. 초상화계의 새로운 스타일을 폴이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폴에게 초상화를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간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사라지고 폴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바라는 소비자들은 폴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승백 김용훈 작가의 <캡차 트윗>(2013) / CT지기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작품은 필자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은 작품인 신승백 김용훈 작가의 <캡차 트윗>(2013)이다. ‘캡차’는 인간과 컴퓨터를 구분하는 테스트이다. 우리가 흔히 회원가입을 할 때 볼 수 있는 바로 그 테스트! 왜곡된 이미지 속에서 글자를 읽어야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쉬운 반면 컴퓨터는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다고 한다. 따라서 두 작가는 온라인상에서 컴퓨터 몰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인 ‘캡차 트윗’을 개발하였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지배자의 감시를 벗어나 자신을 표현한다는 발상을 어떻게 한 것인지······. 대단함을 넘어서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작품은 관람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인터랙티브 아트이다. 준비된 컴퓨터에 관람객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글을 적어 ‘트윗’ 버튼을 누르면 그 글이 캡차 형태로 화면에 나타난다.

 분명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이지만 당사자는 인식하지 못한 속에서 우리끼리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관람객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필자 또한 참여해보았는데 어디에서나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는 점, 나만의 캡차를 만들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내 글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인식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출발한 <캡차 트윗>. 컴퓨터의 인식 체계와 인간의 인식 체계의 차이를 작품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점차 캡차를 읽을 수 있는 컴퓨터가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새삼 기술의 발전에 대한 딜레마에 빠졌다. 우리가 평생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을 이미 ‘기계’는 극복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기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전시회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기술이 주는 희망과 공포, 이 양가감정을 몸소 느끼고 나니 ‘로봇 에세이’ 展을 마냥 전시회로만 즐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속에서 뭔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번뜩거렸다.

 ‘로봇 에세이’ 展에서 만난 작품들은 모두 문화와 접목된 기술들이었다. 노래, 무용, 그림, 그리고 글자(언어)까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문화에 기술을 더하니 마치 조미료를 뿌린 것처럼 감칠맛이 났다.

 그래서 첫 인상은 신선했고 신기했다. 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조미료가 주는 불편한 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즐겁지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생겨났다.

 로봇이 들고 있는 양날의 검, 이 검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는 가는 우리 인간의 몫이다. 이 부분은 분명 로봇은 절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앞으로도 기술은 더욱 진보해나갈 것이고 이 기술은 다방면에서 활용되어 우리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 것이다. 항상 인식해야한다. 컴퓨터는 볼 수 없는 우리의 시각으로 그들의 방향을 주시해야한다. 그리고 명심해야한다. 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로봇 에세이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CT개발사업실 제4기 문화기술(CT)리포터 김 규리

키워드 한국콘텐츠진흥원,문화기술,로봇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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