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간격 '전화 공세'로 보이스피싱

2015-09-0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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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노인들을 상대로 보이스피싱으로 뽑게 한 현금을 자택에 두고 외출하게 하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노인들을 상대로 보이스피싱으로 뽑게 한 현금을 자택에 두고 외출하게 하고서 침입해 훔친 혐의(특수절도 등)로 중국동포 정모(52)씨와 김모(53)씨를 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정씨 등이 돈을 훔치려 피해자의 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엘리베이터 안 CC(폐쇄회로)TV 영상에 찍혀 있다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경찰관입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이 선생님 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하려고 하니 빨리 찾아놔야 합니다. 금융감독원에서 연락 갈 겁니다."

지난달 25일 점심 무렵 A(69·여)씨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전화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수차례 걸려왔다. "금융감독원입니다. 경찰 연락을 받았는데 거래 은행은 어딘가요? 일단 한군데 있는 7천만원을 빨리 뽑아서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A씨는 5분 간격으로 경찰, 금감원, 은행 직원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이 전화가 보이스피싱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화는 계속됐다.

"경찰입니다. 찾아온 현금을 집 냉장고에 넣어두면 저희가 보호해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영등포경찰서로 가서 담당 형사를 만나셔야 합니다."

이 지시에 따라 경찰서로 향하던 중 또 전화가 왔다. "지금 선생님 집에 사기범들이 침입했습니다. 경찰관이 들어가 범인을 잡아야 하니 출입문 비밀번호를 말해주세요." 놀란 A씨는 얼떨결에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경찰서에 거의 다 왔는데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은행에서 4천만원을 더 출금해서 소방서에 외근 나가 있는 형사에게 전달하면 위치추적 장치를 설치해 범인을 잡을 겁니다."

A씨는 다시 돈을 찾아 자신을 영등포경찰서 소속 경찰관이라고 소개한 남성에게 전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냉장고 안 현금은 사라진 뒤였다.

그제야 전화로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사실이 떠올랐고 이 모든 것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행인 것을 깨달았다. 첫 전화가 오고서 6시간 만이었지만 1억1천만원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범인들이 나이가 많은 피해자에게 현금을 집에 두게 하고 경찰서 주변으로 유인하는 수법으로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전 형사과 직원들에게 경찰서 근처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서성이는 노인이 있으면 철저히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지난달 27일 오후 1시께 영등포경찰서 소속 정금용 경장은 경찰서 정문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이는 B(76·여)씨를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같은 범죄 피해자임을 간파했다.

아니나 다를까, B씨는 이날 오전 10시께 비슷한 전화를 받고 자택 전화기 옆에 2천200만원을 두고 경찰서에 왔다고 털어놨다. 집 현관 비밀번호도 알려준 뒤였다.

경찰은 B씨 집에 형사들을 급파했다.

다행히 현관문 비밀번호 오류로 B씨 집에 들어가지 못해 인근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던 조선족 정모(52)씨와 김모(53)씨를 체포했다. A씨 집을 털다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힌 일당과 옷차림이 같았기에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조사 결과 이들은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국제전화로 걸려오는 지시에 따라 피해자들의 집에서 돈을 가져와서는 송금책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정씨 등을 특수절도·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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