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문 닫은 헌책방 명소 '대양서점'
2016-01-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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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홍제역 4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헌책방 대양서점(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지난달 30일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이 문을 닫았다. 서울 홍제역 4번 출구에서 5분 정도 곧장 걸으면 도착하는 약 6평(20㎡) 규모 헌책방이다.
이날 오전부터 대양서점 사장 정종성(74) 씨는 일꾼과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기자가 방문한 오후 2시 쯤엔 작업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 오래된 책 냄새는 사라진 채 바깥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먼지연기만 가득했다. 손님을 맞을 때 앉아있곤 했던 의자 위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책장을 들어낸 벽은 허름한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고, 책 3만여 권이 빼곡히 들어갔던 책장은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나무판자로 변해있었다. 소나무와 잡목으로 이루어진 책장은 정 씨가 1985년 서울 홍제동에서 책방을 처음 하던 시절 목수에게 부탁해 짰다. 요즘엔 완제품을 사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직접 제작했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대양서점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정 씨가 헌책방을 시작한 것은 1979년이었다. 서울 강북구에서 지인이 하던 헌책방 ‘동아서점’을 인수했다. 공무원이었던 그는 폐결핵으로 오랜 휴직을 해야 했고, 이후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차렸던 가게였다. 당시 즐겨 다녔던 책방 주인에게 새 사업 아이템으로 '헌책방'을 추천받은 것도 이유였다.
1985년 서울 홍제동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대양서점’이라는 상호를 붙였다. 고향인 경남 합천군 대양면에서 따온 이름이다. 1992년 임대료 등을 이유로 서울 홍제역 4번 출구 인근으로 이전했고, 그로부터 지난해까지 한자리에서 23년을 지켜왔다.

아동서적부터 참고서, 각종 문학과 실용서적 등 다양한 장르를 취급해온 터라 손님 층도 다양했다. 한때는 엄마 손을 잡고 책방을 찾은 아이 손님부터 참고서를 찾는 학생 손님, 말동무를 할 겸 책방에 마실 나온 중장년층까지 말그대로 '남녀노소' 모두가 이 서점을 찾았다.
정 씨는 “불과 2000년대까지만 해도 종종 손님들이 왔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책방 임대료도 안 나올 만큼 손님이 뜸해졌다. 경기가 불황이 될 수록 사람들이 책을 더 안 읽는 것 같다”고 했다.
참고서를 찾던 어린 학생들에서 오랜 단골인 노년층들로 주된 고객층이 바뀐 것도 2010년 즈음부터였다. 정 씨는 “헌책방을 운영한지 거의 40년째다. 나이가 들어서 몸도 좋지 않고 이제 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대양서점의 마지막을 함께한 단골 손님들
담담하게 입장을 전한 정 씨와는 달리 서점을 찾던 단골 손님들은 철거에 몹시 아쉬워했다. 전날 이곳을 찾은 이준섭(68) 씨는 "1983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오랜 추억이 담긴 장소가 문을 닫아 슬프다고 했다.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책방에 들어온 이준호(50) 씨는 1999년부터 이곳을 찾았다. 부산 출신인 그는 그해 서울로 직장을 잡게 되면서 입소문으로 대양서점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단골이 됐다. 이후 사정상 지방으로 다시 내려가 살다가 한 달 전 서울로 다시 올라왔는데, 문 닫는다는 이야기에 급히 왔다고 사정을 전했다. 이어 "보물창고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오랜 손때가 묻은 책들을 잘 살피다 보면 마음에 드는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라며 추억에 젖었다.
대양서점은 사라지지만… 가업을 이어가는 아들 태영 씨
단골손님들의 아쉬움에 응답한 것일까. 정 씨가 운영한 대양서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들 태영(43) 씨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바로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에서 약 100m 떨어진 홍제 현대상가 206호에 있는 '기억속의 서가'다.
태영 씨는 "6·7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책방에 자주 다녔다. 그때마다 책방 한구석에 앉아 만화책을 읽곤 했는데 그 공간이 너무 좋았다. 다 자란 후 삶을 돌아보니 그때가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 이어 책방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께선 책방을 여신 후 문 닫는 일도 거의 없을 정도로 일하셨다. 어린 마음에 서운한 마음을 품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태영 씨는 지난 2000년 아버지를 도와 헌책방 일을 시작해 10년 넘게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대양서점 인근 골목길에 낸 2매장으로 시작해 '부자 헌책방'으로도 불렸다. 아버지와 함께할 땐 서로 밀어주기 식으로 '우리 아버지(아들) 책방에도 가보세요'라고 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제 그것을 하지 못하게 돼 아쉽다"고 했다.
이어 "이제 책방을 운영한지 약 15년 됐다. 아버지는 한자리에서 23년 하셨는데, 아버지처럼 오래도록 한자리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우연히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곳을 지나칠 때 여전히 그곳이 거기에 있다면 너무 반갑지 않을까. 변하지 않고 계속 지켜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