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유적지에 일본 철쭉 논란

2016-04-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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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종합=연합뉴스) "민족의 독립 열망이 담긴 곳에 일본 꽃이 판을 치는 현실에 가슴이

(전국종합=연합뉴스) "민족의 독립 열망이 담긴 곳에 일본 꽃이 판을 치는 현실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안성 3·1운동기념관 / 이하 연합뉴스

대한민국 독립과 항일운동 등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에서 서식하는 갖가지 꽃과 나무의 출처 문제로 갑론을박이 뜨겁다.

경남 통영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제승당'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일본 철쭉인 영산홍이 있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 현충사에 심은 일본 소나무인 금송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국 최대 독립운동가 배출 고장인 경북 안동 관공서에는 일본 조경수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영산홍

일본산 나무와 꽃을 독립기념관 등에서 보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네티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현충사 금송을 옮기는 문제로 법정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색안경을 끼고 본 결과로 국수주의를 불러온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일본산이라도 일제 침략 이전에 들여온 것은 토종 식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 일본 품종 꽃·나무 곳곳에 심어져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진 경북 안동의 관공서에는 일본 조경수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안동시청에는 일본이 원산지인 수령 70년 안팎의 가이스카 향나무 1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 소나무는 1990년대 안동시청이 현재의 위치인 신청사로 옮기면서 옛 안동군청 등에 있던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밖에도 안동시청 곳곳에는 일본이 원산지로 알려진 섬잣나무와 노무라 단풍 등이 식재돼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일본 품종으로 밝혀진 조경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며 "하지만 당장 교체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진영이 있었던 유적지인 경남 통영시 한산도 제승당에도 왜철쭉인 영산홍이 심겨 있다.

제승당

경남도 제승당 관리사업소에 따르면 1970년 제승당 성역화 사업 당시부터 조경수 중 하나로 왜철쭉이 심어졌다.

이후 제승당 정비사업이나 죽은 조경수를 바꿔 심을 때 왜철쭉을 다른 조경수와 함께 섞어 식재를 했다고 한다.

제승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인 대첩문에서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영당 사이 도로변에 산철쭉, 개철쭉 등 다른 철쭉류 나무와 함께 영산홍이 섞여 심어진 상태다.

앞서 2010년에는 경기도가 3·1운동 정신과 역사를 기리기 위해 안성시 원곡면 칠곡리 일대 일명 '만세 고개'에 조성한 무궁화동산 내 무궁화의 품종 가운데 50% 이상이 일본과 유럽산 품종이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도는 당시 한국산 무궁화의 품종이 100여 가지가 넘는데도, 일본품종인 '하공(나츠조라)'과 일본 무궁화 연구가인 다찌바나씨가 육성한 '대덕사백(다이토구지시로)', '자세변(무라사키세이번)' 품종을 심어 바판을 자초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안성시는 곧바로 무궁화동산 무궁화를 모두 한국산 품종으로 바꿔 심었다.

1994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선정된 안성 3·1운동 기념관은 2001년 10월 안성시 만세 고개 일대 부지 3만91㎡에 세워졌으며, 순국선열 25위와 애국지사 196위를 모신 사당과 무궁화동산 등을 갖췄다.

◇ "일본 품종 이전해야" vs "이미 국산화된 품종" 논란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남 아산 현충사에는 일본산 금송(錦松)이 있어 한때 논란이 됐다.

아산 현충사 소나무길

2011년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은 문화재청을 상대로 현충사 금송의 이전을 요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이 단체는 '현충사 본전 앞 금송은 일본 천황을 상징하는 나무'라며 이전을 요구했고, 문화재위원회는 "이 금송이 외래종인 것은 맞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에 기념식수한 나무로 시대성과 역사성이 있는 만큼 이전할 수 없다"고 맞섰다.

법원은 "금송의 이전은 행정처분의 영역이 아니며, 문화재위원회에서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고 판결해 문화재위원회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산이라도 일부 품종은 오래전에 들어와 국산화된 만큼 굳이 일본산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독립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벚나무의 경우 제주가 왕벚나무의 원산지라고 하지만 벚나무 자체가 왜색이 강해 독립기념관에는 단 한그루도 심지 않았다"며 "하지만 영산홍은 이미 조선 세종 때 들어와 궁궐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고유수종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독립기념관은 1990년 일제 조사를 해 왜색 나무가 있는지 파악했다"며 "경내에 심어진 것은 영산홍이 아니라 자산홍으로, 올해 식목일에만 4만여 주를 심었다"고 덧붙였다.

한 네티즌은 "이순신 장군이 모셔진 현충사에 일왕을 상징하는 금송이 서 있다니 이순신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할 노릇"이라며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니 옮겨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나무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데 일본에서 자란다고 왜(倭) 나무 취급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일본 품종의 무궁화 식재에 대해 "과거에 무궁화를 집단으로 심을 때에는 일본산 등 외래 품종을 함께 심기도 했지만, 요즘은 국산 품종이 100여개에 달하는 만큼 '백단심'이나 '홍단심' 등 국산 품종을 심도록 권장한다"며 "과거에 '세한' 등 일본 품종이 심어져 아직 자라고 있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심는 나무는 국산 품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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