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공개' 조성호는 되고 조두순은 안 되는 이유

2016-05-1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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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국민이 조성호 얼굴은 알아도, 조두순 얼굴은 모르는 이유‘조두순 사건’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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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조성호 얼굴은 알아도, 조두순 얼굴은 모르는 이유

‘조두순 사건’ 가해자 조두순은 4년 뒤 2020년에 출소한다. 조두순은 지난 2008년 12월 안산 단원구에서 8살 여학생을 성폭행해 대장·항문·성기 등 장기 기능을 못 쓰게 만들었다. 당시 검찰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법원은 당시 술을 마셨다는 조두순 진술을 참작해 심신미약 등을 이유로 12년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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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이 다시 세상 밖에 나오면 여성가족부 장관은 조두순 신상정보를 5년간 공개한다. 사진·실명·나이·거주지 등이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제5장 49조에 따라 공개된다. 이때 조두순 얼굴과 실명, 거주지 등은 언론에 의해 보도될 수 없다(같은 법 55조). 개인이 확인하는 용도로만 써야 한다.

조두순은 흉악한 범죄 행위로 국민을 분노하고 불안케 만든 장본인이지만, 그에 대한 신상 정보는 공개된 내용이 없다. 그와 반대로 지난 4일 동거하던 남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조성호(30)는 개인 정보가 모두 공개됐다.

조성호 / 뉴스1

얼굴과 이름·거주지를 비롯한 신상 정보 공개, 조성호는 되는데 조두순이 안 된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 때문이다. 조두순이 범행을 저지른 2008년 당시에는 특강법 8조 2항이 없었다.

특강법 8조 2항은 피의자 얼굴 등 공개에 대한 내용이다. 이 조항은 지난 2010년 4월 15일에 신설됐다. 조두순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피의자 얼굴이나 신상 정보 등은 공개하려고 해도 근거가 없었고, 공개한 사례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①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의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개정 2011.9.15.> 1.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2.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3.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4.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②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본조신설 2010.4.15.]

특강법 8조 2항이 없어도 얼굴이 공개된 피의자들

지존파 / 연합뉴스

1980년대에는 피의자 얼굴이 경찰 수사 단계부터 공개되는 경우가 있었다. 경찰은 1994년 납치·살해로 붙잡힌 지존파 사건과 이를 모방한 막가파 사건(1996년) 피의자 얼굴을 공개했다.

피의자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은 2000년대 들어 제기됐다. 경찰은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마련했다. 수사 중인 피의자 얼굴에 마스크와 모자를 씌워주는 등 얼굴 공개를 막은 것이다.

얼굴을 공개하자는 분위기로 전환된 계기는 '강호순 여성 연쇄살인 사건' 이었다. 당시 중앙일보는 강호순 증명사진을 신문에 실어 공개했다. 중앙일보는 강호순에 이어 초등학생을 성폭행해 붙잡힌 김수철 얼굴도 신문 1면에 공개했다. 두 기사 모두 현재 온라인 판에서는 사진을 삭제한 상태다.

반사회적 흉악범 김수철 얼굴 공개합니다

이후 경찰은 흉악범죄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특강법 8조 2항이 신설된 것이다.

얼굴이 알려진 VS. 가려진 사람들

특강법이 없었다면 조성호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 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받기 전 혐의를 받는 사람은 형법상 무죄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안산 단원경찰서 측은 조성호를 검거한 후 특강법에 따라 신상 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논의에 나섰다. 그 결과 경찰은 검거 1시간 만에 조성호 신원(얼굴과 실명 등)을 언론에 공개했다. 조성호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죄를 지은 증거가 충분한 점 등이 근거였다.

조성호 신상을 공개한 후 경찰은 “공개 기준이 없다”는 논란에 직면했다. 각 경찰서장 주재로 열리는 심의위원회가 공개 여부를 결정짓다 보니 ‘고무줄 기준’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네티즌은 “평택 원영이 사건 가해자는 왜 얼굴을 가려주느냐”,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남매 얼굴을 스스로 밝히겠다고 하는데도 가려주는 이유가 뭐냐”는 등의 비판이다. 이에 강신명 경찰청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제시하겠다"고 했다.

위키트리 디자이너 김이랑(@goodrang)

외국은 피의자 얼굴을 공개할까?

미국·일본·프랑스 등에는 '피의사실 공표죄'라는 개념이 없다. 혐의를 받는 사람에 대한 신상을 공개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일본은 피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를 제외하고 언론에 사진과 이름을 공개하고 있다. 미국은 피의자가 미성년자일지라도 신상 정보를 공개한다. 그렇다고 피의자 개인 정보를 마음대로 뿌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 법무부는 '형사 및 민사절차에 관계한 법무부 직원의 자료공개기준'으로 피의자 정보 공개 기준을 자세하게 구분 짓는다.

형사 및 민사절차에 관계한 법무부 직원의 자료공개기준(Kazenbach-Mitchell Guidelines)

미국 법무부

공개 허용되는 부분: 피고인 이름·나이·주거·고용·혼인 등 신분 배경 정보, 고발장이나 대배심 공소장, 수사 또는 체포에 관여한 수사관의 인적 사항, 체포와 관련된 장소, 시각, 주거, 무기 사용 여부, 압수한 물건 등

영국은 1967년 법정모독법을 제정해 피의자를 체포해 공소를 제기하기 전 피의사실을 보도하면 법정모독으로 처벌받게 했다. 이후 영국은 이 법을 개정했다. ‘보도가 해당 사건에서 정의 수행이 중대하게 저해 받거나 편견을 주게 될 실질적인 위엄을 야기하는 때’에만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독일은 ‘피의사실 공표죄’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다. 연방지침으로 검찰 또는 경찰 조직 내 언론 담당 직원이 ‘국민 알 권리’와 ‘피의자 인격권’이 모두 존중받도록 재량껏 공개하도록 했다.

피의자 얼굴을 알아야 하나

현재 여론은 피의자 얼굴 공개를 원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다. 12일 CBS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에 대해 응답자 중 87.4%가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은 8.9%에 그쳤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 위키트리
피의자 신상 공개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지만 헌법에서 보장한 인격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지난 2014년 3월 27일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피의자 얼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했다. 헌재는 그러나 피의자 신상 정보 공개 등 불이익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강법에서도 '공공 이익' 또는 '재범 방지'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

5. 본안에 대한 판단

나. 촬영허용행위의 위헌 여부

(1) 범죄수사와 피의자의 인격권 제한의 한계

피의자의 인격권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제한이 가능하므로,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 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무죄추정원칙을 천명하고 있는바, 아직 공소제기가 없는 피의자는 물론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이라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하고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 되며 가사 그 불이익을 입힌다 하여도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헌재 1990. 11. 19. 90헌가48; 헌재 2011. 4. 28. 2010헌마474 참조).

그러므로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자의 초상 공개에 따른 인격권 제한의 문제는 위와 같은 무죄추정에 관한 헌법적 원칙, 수사기관의 피의자에 대한 인권 존중의무(형사소송법 제198조 제2항), 수사기관에 의한 인격권 침해가 피의자 및 그 가족에게 미치게 될 영향의 중대성 및 파급효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헌법적 한계의 준수 여부를 엄격히 판단하여야 한다.

피의자 얼굴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인권 전문가 입장이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피의자가 범인인지 아닌지는 경찰의 주장일 뿐 그대로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오 사무국장은 "만약 범인이 아닐 경우, 혐의를 받은 사람이 받는 피해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살인 및 시신 유기 혐의를 받는 조성호의 경우, 가족과 전 애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신상 정보까지 공개되기도 했다.

결국 좀 더 명확한 기준을 내세우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견이다. 노영희 변호사는 "신상 정보를 어디까지, 언제 공개할 건지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특강법은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라고 돼 있어 그 개념이 모호하다.

노 변호사는 “얼굴과 이름, 나이까지만 한다는 등 기준이 없던 결과 조성호는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인신 공격받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뒤늦게 부랴부랴 조성호 가족이나 지인을 모욕할 경우 처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노 변호사는 “피의자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시점도 최소 1심 판결이 난 후여야 한다”고 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법관의 구속영장이 발부됐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었다. 이에 대해 노영희 변호사는 “영장이 나올 때 역시 수사단계”라며 “대법원 판결까지는 너무 오래 걸리니 적어도 1심 판결이 나온 뒤에 공개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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