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탓, 여혐 사건 아니다" 주장에 전문의 일침

2016-05-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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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34)씨 / 뉴스1 신경정신과 서천석 전문의가 "정신병을 가진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34)씨 / 뉴스1

신경정신과 서천석 전문의가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행위가 모두 정신병 때문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서천석 전문의는 지난 19일 오후 8시 40분쯤 페이스북에 장문 글을 올렸다. '강남역 살인사건 범죄자가 정신병이 있으니 여성 혐오 사건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일침이었다.

서천석 전문의는 "정신병에도 맥락이 있다"며 "정신병적 증상을 갖고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서 전문의는 "그들은 정신병을 가진 사람일 뿐, 정신병 그 자체가 아니"라고 했다. 정신병력을 가졌다는 이유가 범행 동기가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서 전문의는 "문제는 그(피의자 김모(34)씨)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것"이라며 "이 말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여성혐오'다"라고 주장했다.

서천석 전문의는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라며 "정신병이 범죄의 원인이냐, 아니면 여혐이 원인이냐 이런 수준 낮은 논쟁은 이젠 멈춰야 한다"고 했다.

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도 이날 페이스북에 "이미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고,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고, 이미 여성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남역 사건은 그 '결과'이거나, 아니면 문제를 더욱 '증폭'시킨 것일 뿐"이라며 "아무런 맥락 없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홍성수 교수는 "사건 자체의 성격 규정보다는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을 통해 드러난 여러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정신과 서천석 전문의 글 전문

강남역 살인 사건. 범죄자에게 정신병이 있으니

여성 혐오 사건이 아니라고 말하는 주장에 대해서...

정신병에도 맥락이 있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 시절에는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환청을 호소하면서 중앙정보부가 나를 미행하고 도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무렵 어떤 환자가 TV 뉴스 생방송 중 뛰어들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말을 외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사회적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면서 CIA가 환청의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도 생겼고 2000년대 이후 삼성의 지배력이 커지면서는 삼성이 소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운동을 한다고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고, 정신질환에 걸릴 사람이 학생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정신병이 생기면 그 증상에 정치적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망상이란 자기의 사고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고 내부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정신병(이 경우 정신병은 현실에 대한 검증력이 떨어져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질병 상태, 대표적으로는 급성기의 조현병, 조울정신병을 의미한다)을 가진 사람이 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드러낸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문제의 리트머스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정말 그런지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신병의 증상은 사회적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이다.

어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이 번화가의 화장실에서 한 남성에 의해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났고' 그래서 죽였다는 말을 했다. 그 남자는 오랜 조현병의 치료력을 갖고 있고 현재는 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그가 지금 정신병적 급성 상태에 있는지는 나로서는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다. 그가 현실적인 판단력을 잃고 심각한 공격적인 행동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행위가 모두 정신병 때문인 것은 아니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의 범죄율이 정신병이 없는 사람에 비해 낮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여기에 일부 정신병적 증상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것으로 범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정신병적 증상을 갖고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병을 가진 한 사람이지, 정신병 그 자체가 아니다. 한 사람으로서 그들은 다양한 기질과 성격, 성장배경, 문화, 생활 조건이 다르며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도 다양하다.

문제는 그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다.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병을 갖고 있으며, 범죄를 저지른 그는 아마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분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외감의 원인을 여성들의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찾고, 분노의 초점을 여성들에게 맞춘 것은 분명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우리 사회 내에서 최근 들어 뚜렷하게 늘어난 심리적 현상인 여성 혐오가 (만약 그에게 정신병적 망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망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성 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망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은 맥락이 있다.

결국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근거일 수 없다. 오히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의 이유로 '여자들의 무시' 운운하는 상황이 여성 혐오 이슈를 우리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 사건은 분명한 여성 혐오 범죄다.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닌 것이 아니라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성혐오 범죄인 것이다.

한 가지 더. 또 상상해 보자. 만약 우리 사회가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누군가 이런 살인을 저지르고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지금과 같은 사회적 파장이 일어났을까? 수많은 여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그런 분들이 있더라도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이 큰 이슈가 된 이유는 한 범죄자의 말 때문이 아니다. 그 범죄가 일어난 우리 사회의 위험한 현실 때문이다. 강력 사건의 희생자 비율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8배가 넘는 통계로 알 수 있듯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여성 차별에 더해서 최근 잘못된 여성 혐오 의식으로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다. 여성 혐오 의식의 확산으로 범죄의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여기니 범죄의 잔인성은 증가하며 모방 범죄도 늘어난다.

이 문제로 불필요한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다. 여성 혐오 의식이 정신병의 증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면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사회 전반에서 이런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구조적 개혁을 하고 의식의 변화를 추구해야지 지금 뭐를 하고 있나 싶다. '정신병이 범죄의 원인이냐? 아니면 여혐이 원인이냐?' 이런 수준 낮은 논쟁은 이젠 멈춰야 한다.

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 글 전문

강남역 사건 문제와 관련해서, 정신분열 치료 경력이 있다는 점 때문에 혐오범죄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네요. 일단, 어떤 범죄를 범죄자의 정신병을 위주로 접근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은 생략합니다.

혐오범죄가중처벌'법'이 있는 나라에서 어떤 범죄행위를 혐오범죄로 볼 것인가는 사실 복잡한 문제입니다. 강남역 사건이 그런 법률의 적용을 받는 '법률적 혐오범죄'가 맞냐고 누가 저한테 묻는다면, "뭐라고 단정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답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 범죄자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도 이 문제를 "여성혐오범죄다"라고 부르는 것이 유의미한 것은 이 문제를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범죄자는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언급했고, 그 언급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전형적인 혐오범죄의 양태(대상 집단의 공포와 분노)가 나타난거죠. 그런 분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그거야 실제로 혐오범죄여서가 아니라, 혐오범죄로 규정했기 때문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하겠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남성을 살해했고, '남성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나서서, "이것은 남성혐오범죄다"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성들이 지금처럼 분노할까요? "밖에 돌아다니기가 무섭다"며 공포에 떨까요? 혐오범죄적 양태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남성혐오범죄다'라고 규정해도 별 파급력을 갖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 강남역 사건은 그 사건 자체가 단순히 '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줬죠. 그건 이 사건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고,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고, 이미 여성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남역 사건은 그 '결과'이거나, 아니면 문제를 더욱 '증폭'시킨 것일 뿐입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현단게에서 이 문제를 '여성혐오범죄'라고 보는데 별 무리가 없고, 정신분열 여부는 이런 맥락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슈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마지막 질문. 강남역을 굳이 찾아가 추모하고 인터넷에서 분노와 공포의 글을 남기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범죄가 아닌데도 누군가가 혐오범죄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신병력 때문이니 혐오범죄가 아니니까 오버하지 말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하고 진정될 수 있을까요?

* 추가: 이 사건이 혐오범죄로 불릴 수 있을지 여부나 '범죄원인'은 지금 단계에서 논하기 어려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실 가해자 개인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이는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사건 자체를 혐오범죄로 규정할 수 없어도 이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의 중요한 의미를 살펴야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사건 자체의 성격 규정보다는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을 통해 드러난 여러 문제에 주목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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