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을 찾은 청소년 Volun-tour 탐방단

2016-05-2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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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국민신탁 청소년 Volun-tour 탐방단은조선왕실문화를 이해하기를

[문화유산국민신탁 청소년 Volun-tour 탐방단은 조선 왕실문화를 이해하기를 주제로 경복궁을 시작으로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차례로 탐방하면서 역사에 관심있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탐구활동 및 궁궐 환경미화 봉사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하 사진 / 문화유산국민신탁 촬영 ]

대한제국의 흔적을 찾아서...

지난 5월 21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의 청소년 Volun-tour 탐방단이 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을 찾았다.

덕수궁은 조선 왕조의 최후의 궁궐로서, 독자적인 관영 공사 체제로 조영된 조선왕조의 마지막 궁궐이었다.

사적 제124호로 지정된 덕수궁의 본래의 이름은 경운궁이다.

경운궁이란 아름은 광해군 3년 당시 정릉동 행궁이라 부르던 이곳에 처음으로 붙여진 궁궐 이름이었으며, 한때 광해군의 계모 인목대비가 이곳에 유폐되었고 대비의 호는 삭탈당하여 서궁이라 속칭되었다.

[덕수궁 환경미화 봉사활동에 앞서 문화유산국민신탁 활동가로 부터 덕수궁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듣고 있는 청소년 Volun-tour 탐방단 단원들]

경운궁이란 이름은 광해군 3년부터 고종이 양위할 때까지 297년 동안 사용되었다.

고종시대의 경운궁이 직접적으로 대한제국의 황궁이 되게 된 계기는 역시 1895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발생한 명성황후시해사건으로 인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직접적인 이유로 볼 수 있다.

1897년 8월 16일 새로 사용될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하여 반포하고 10월 2일 황제 즉위식이 거행될 원구단 축조의 명령이 내려진다.

18971012일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고, 고종은 원구단에서 고천지제를 올리고 다음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여 반포하였다.

수리하던 함녕전의 온돌 아궁이에서 비롯된 화재는 궁궐 중심부의 중화전을 비롯하여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함녕전 등 주요한 전각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1904년 5월 잿더미가 된 경운궁 위에서 다시 한번 경운궁을 중건하고자 단호한 결의를 밝히며, 궁궐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정전 중화전은 애석하게도 단층으로 축소되어 중건되었다.

경운궁의 전각들

경운궁의 정전인 중화전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 즉조당과 준명당 그리고 동쪽으로는 석어당, 함녕전, 덕홍전, 정관헌 등이 위치하고 있다.

선조 시기부터 있었던 즉조당은 1904년 4월 화재 뒤인 1904년 5월에 중건되었으며,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하여 '즉조당'이란 명칭이 붙었다. 중화전이 건립되기 전 한때 정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귀비 엄씨가 거처하였다.

황제께서 업무를 보던 편전 역할을 한 준명당은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되었으며, 경운궁 대화재를 입은 뒤 고종, 순종의 어진, 예진을 준명당으로 옮겨 보관하기도 하였다.

고종황제의 침전인 함녕전과 명성황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던 경효전 터에 중건된 덕홍전은 고종황제가 고위 관료와 외교 사절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고종황제께서는 함녕전에서 기거하다가 68세를 일기로 승하하였으며, 고종황제가 승하한 뒤 함녕전은 빈전 및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 청소년 Volun-tour 탐방단 단원들은 두 모둠으로 구분하여 편전인 준명당과 침전인 함녕전에서 환경미화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다. ]

[덕수궁 탐방 및 환경미화 봉사활동 후기]

덕수궁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모두 담고 있는 새롭지만 슬픈 공간입니다.

다른 궁궐과 다르게, 덕수궁 안에는 기존 조선의 전통 문화와 어울리지 않는 근대적 건물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석조전입니다.

조선의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창조된 새로운 문화 중 하나이며, 조선의 수난도 이 곳 덕수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와 당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리고 대한 제국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경운궁 주위에 여러 서양 열강과 일본의 공사관이 있었고, 이에 따른 간섭은 점점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고종 황제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다시피 하였고, 순종 황제 때는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 뒤편에는 여러 서양 건물들이 보였습니다. 석조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은 마치 덕수궁이 여러 국가들의 전쟁터가 되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 나라들의 개입, 그리고 고종 황제에게 넣은 은근한 압력,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지어진 건물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종 황제가 주무시던 침소는 '함녕전'이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1919년, 대한 제국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지 9년째 되는 해에 고종 황제는 이곳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른 궁궐의 건물과는 달리 오히려 이곳에서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이곳의 먼지를 털고 마룻바닥을 닦으면서 고종과 순종 황제가 흘렸던 눈물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벗어나게 된 것은 고종이 승하한지 자그마치 26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힘이 약했던 대한 제국은 우리에게 잊어진지 오래지만, 더 이상 약소국의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본 활동 후기기사는 청소년 Volun-tour 탐방단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죽전중 현예준 학생의 후기를 토대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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