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싫다" 자퇴한 청소년이 택한 길

2016-05-2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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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 김하영 양(왼쪽부터), 최예리 양, 김준성 군 / 이하 위키트리 김준성

'학교 밖 청소년' 김하영 양(왼쪽부터), 최예리 양, 김준성 군 / 이하 위키트리

 

김준성(18)군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11월 25일 스스로 학교를 그만뒀다. 경기도의 한 특수목적고에 다니던 김 군이 자퇴한 이유는 "답답해서"였다. 김 군은 "제 의지를 토대로 저만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첫 시집을 출판한 김하영(16)양도 마찬가지였다. 김 양은 “친구들에게 왜 대학을 가는지 물어봤는데, 그걸 왜 지금 생각하냐, 일단 대학에 간 뒤 생각해보자는 답만 들었다”며 “학교는 나를 이해 못 해주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양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9월 자퇴했다.

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학교 밖 청소년’은 39만 2231명에 이른다. 전체 청소년 100명 중 6명 꼴로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다. 제도권 밖에 놓인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해 여성가족부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밖청소년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오는 29일 시행 1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학교 밖 청소년을 학교 폭력이나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에 한정 짓다 보니, ‘진정한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던 청소년을 위한 정책은 역부족이었다.

원래 김준성 군은 국제중을 졸업해 특목고에 진학했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다. 김 군은 “엊그제도 학교에 놀러 갔다 왔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김하영 양도 여전히 학교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친구들이 시험 기간만 되면 너무나 힘들어해 안쓰럽다”며 김 양은 수줍게 웃어 보였다. 

김준성 군

 

최예리(18)양은 부모님이 먼저 최 양에게 자퇴를 권유해 지난해 10월 학교를 떠났다. 최 양은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언어 폭력을 당해 법정 공방까지 가야 했다. 이후 전학도 가봤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최 양은 “당시 몸이 많이 안 좋았는데, 부모님은 제 건강이 우선이라며 학교를 그만둬도 좋다고 하셨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감사하다는 생각 뿐”이라고 했다. 

김준성 군 등 세 명의 첫 번째 공통점은 ‘학교밖청소년법’이 생긴 후 자퇴를 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아무도 연계 기관을 소개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학교밖청소년법 제15조에 따르면 각급 학교장은 소속 학교 학생이 학교 밖 청소년이 될 경우, 지원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센터에 연결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제15조(지원센터에의 연계) ① 「초·중등교육법」 제2조 각 호의 각급 학교의 장(이하 이 조에서 "학교장"이라 한다)은 소속 학교의 학생이 학교 밖 청소년이 되는 경우에는 해당 청소년에게 학교 밖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지원센터를 연계하여야 한다.

② 「청소년복지 지원법」 제9조에 따른 지역사회 청소년통합지원체계에 포함된 기관 또는 단체의 장(이하 이 조에서 "단체장"이라 한다)은 지원이 필요한 학교 밖 청소년을 발견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청소년에게 학교 밖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지원센터를 연계하여야 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센터에 연계하는 경우 학교장, 단체장 및 지원센터의 장은 해당 청소년에게 정보의 수집·이용 목적, 수집범위, 보유 및 이용 기간, 파기방법을 고지하고 동의를 받은 후 다음 각 호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1. 학교 밖 청소년의 성명

2. 학교 밖 청소년의 생년월일

3. 학교 밖 청소년의 주소

4. 학교 밖 청소년의 연락처(전화번호·전자우편주소 등)

④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학교 밖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의 안내 및 지원센터의 연계에 필요한 사항은 여성가족부령으로 정한다.

김준성 군은 “최근에야 지원 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퇴 당시 학교에서 안내받지 않아 학교 밖 청소년이 된 지 7개월이 넘도록 방치됐다. 법의 허점이 드러난 부분이다. 김 군은 “만약 이런 센터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바리스타 교육 등도 큰 부담 없이 이용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위키트리 디자이너 김이랑(@goodrang)

 

이들이 가진 세 번째 공통점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 중 상당수는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적어도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 ‘다른 곳에서 원하는 것을 배우고 싶어서’ 학교를 그만둔 이들은 22.3%에 달했다. ‘학교 분위기(문화·동아리·자치활동 등)가 나와 맞지 않아서’ 그만둔 청소년도 14.4%나 됐다. ‘내 특기를 살리려고’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은 12%에 이르렀다. 

김하영(왼쪽)양이 낸 시집 '16-17' / (오른쪽) 부커스

 

김하영 양은 자퇴한 뒤 맘껏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최근 ‘채식주의자’를 읽었다는 하영 양은 “작가가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길래 샀는데, 바로 다음 날 상을 탔다”며 들뜬 얼굴로 말했다. 김 양은 이 책을 한나절 만에 다 읽었다. 밤에는 주로 글을 쓴다. 김 양은 지난 1일 시집 ‘16-17’을 출판한 ‘소녀 시인’이다.

위키트리 디자이너 김이랑(@goodrang)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온종일 노는 것은 아니다. 최예리 양 역시 “엄마가 저더러 ‘비서가 필요한 것 같다’고 하실 정도로 바쁘다”며 “내 마음대로 하루를 쓸 수 있어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최 양은 “학교를 그만둔 뒤 꿈이 생겼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현재 ‘경기도 꿈드림 대표단’, ‘도로명 서포터즈 부대표’, ‘경기도 꿈드림 기자단’ 등을 동시에 맡아서 활동하고 있다. 최 양은 “학교 폭력도 당해보고, 소송도 진행하고, 전학도 가보고, 자퇴까지 해 봤다”며 “다양한 경험을 살려 또래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대외활동 중인 최예리 양 / 이하 위키트리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는 ‘학교 밖 청소년’도 지원은 필요했다. 학교에 소속되지 못한 청소년들은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이들은 자신을 ‘이중 사각지대’라고 생각했다. 최예리 양은 “청소년 중에서도 학교 밖 청소년은 사각지대지만, 우리 같은 청소년은 학교 밖 청소년 중에서도 사각지대”라고 설명했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관심 대부분이 폭력이나 범죄 등 교화가 필요한 청소년에게만 집중된 탓이다.

김준성 군은 “학교를 그만둔 뒤 따로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국가 장학금을 알아봤지만, 모든 기관에서 나는 ‘학생’이 아니라, ‘청소년’이어서 대상이 안 된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학생이 아닌 청소년은 사람도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김하영 양도 “백일장에 지원했는데, 학교장 추천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자퇴생이라고 밝히니 소속 단체장 추천서를 요구했다”며 “백일장 나가기조차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최예리 양 역시 “영화관에서 청소년 할인을 받고 싶었는데, 학생증이 없어서 거절당했다”며 “용돈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자퇴했다는 이유로 짤렸다”고 말했다. 

청소년참여활동단체 혜욤 박배민(23)대표는 “여성가족부에서는 전부터 가정이나 학교 폭력, 위기에 놓인 청소년 위주로 다루다 보니, 다양한 부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의지를 갖고 온 친구들은 또 사각지대에 놓이는 현실”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예산 부족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학교밖청소년법 시행 이후 지원센터가 생기긴 했지만, 실효성이 충분하려면 사업비와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센터당 실무자가 1~2명뿐이고 그나마도 1년 계약직이다 보니 경력은 물론 전문성을 키우기 너무 힘든 구조”라고 했다. 또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센터에 나올 교통비조차 없다”며 “경제적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 학교 밖 청소년 정책 담당 송영광 사무관은 “학교 밖 청소년 지원사업은 사실 기반을 마련하는 단계”라며 “지속해서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 지원사업에 배정된 국가 예산은 지난해 113억 원에서 올해 149억 원으로 36억 원가량 늘어났다. 전국에 있는 약 39만 명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예산인 만큼 넉넉하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송 사무관은 “부족한 예산은 민간에서 최대한 협조를 구하고 있다”며 “현재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계속 보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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