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지역 문화유산을 탐방한 문화유산투어버스

2016-06-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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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현충사로 떠난 문화유산투어버스

[지난 토요일 아산공세리 성당을 찾은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들 (이하 사진 / 문화유산국민신탁 촬영)]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들과 함께 떠나는 투어버스
우리 선조들의 경험과 지혜가 담긴 문화유산을 함께 가꾸고 지켜나가며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모아 큰 기적을 이루는 국민신탁(National Trust)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에서 국민신탁 운동 확산 및 문화유산에 대한 의식 고취를 위하여 지난 6월 18일 토요일, 현충사와 외암민속마을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소재하고 있는 충남 아산 지역으로 탐방을 떠났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초대, 제3대 공세리 본당 신부를 역임한 드비즈(Devise . Emile, 18711933) 신부는 1895년 한옥으로 성당과 사제관, 사랑채를 완공하였다.

신자들이 증가하면서 성당이 비좁게 되자, 드비즈 신부는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수년간 계획한대로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1920년부터 2년 동안 터다지기 작업을 하였고, 1922년 초부터 벽돌 굽는 공사를 시작하여 그 해 9월말 경에 충청도 지역에서는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공세리 성당을 완공하였다.

[문필봉이 보이는 외암마을 입구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한 문화유산투어버스 참가자들]

온양의 안산(案山)인 설화산은 서측에 위치한 외암마을은 약 500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조선 초기에는 시흥역이 있어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예안 이씨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예안 이씨 후손들이 번성하여 외암마을은 집성마을로 바뀌게 되었다.

설화산 동측 자락에는 조선 초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 선생이 살았던 맹씨행단이 위치하고 있다.

고택의 중수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 『맹씨세적(孟氏世蹟)』 「행단고택중수유래현판게시문(杏壇古宅重修由來懸板揭示文)」에 의하면 고택을 지은 시기가 충숙왕 17년(1330) 2월 17일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그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 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유산투어버스 아산 탐방에 참여한 청소년회원들은 현충사와 외암민속 마을 탐방을 마치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후기를 정리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정신을 받들자!

사적 제 155호 현충사는 충무궁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위업을 선양하기 위해 숙종 32년(1706년)에 아산 지역 유생들이 조정에 청하여 허락을 받아 세운 사당이다.

1707년 숙종임금은 직접 현충사라는 현판을 내렸다. 그러나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1년 충무공 종가의 집안이 어려워져 충무공의 묘소와 위토가 은행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들을 반갑게 맞이한 원성규 현충사 관리소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전국 각지에 성금을 보전한 현충사 유적이야 말로 국내에서 최초로 진행되었던 범국민적인 국민신탁 운동 있었을 것"이라며 환영 인사를 하였다.]

이 소식이 '동아일보'에 보도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성금이 모여, 그 성금으로 묘소와 위토를 되찾고, 1932년 다시 현충사를 세우게 되었다.

해방 후 1960년~ 70년대 현충사성역화사업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위업과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있다.

자료 출처 : 현충사 안내자료 중 발췌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는 이번 문화유산투어버스 프로그램을 통하여 조금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우리 선조들의 얼과 정신을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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