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급 떼고 '~님'으로 호칭 통일

2016-06-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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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27일 연공주의를 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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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27일 연공주의를 허물고 업무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인사제도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서열파괴·인사혁신의 바람이 재계 전반으로 퍼질지 주목된다.

권위주의에 젖은 한국 대기업 생태계 전반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경쟁 가속화, 노동시장 환경 변화 등으로 기업 인사관리 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은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 직급 단순화·호칭 통일…기업마다 대수술

삼성전자는 이날 직급체계 단순화, 수평적 호칭을 골자로 하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기존의 부장, 과장, 사원 등 7단계의 수직적 직급을 직무역량 발전 정도에 따라 4단계(CL1∼CL4)로 단순화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에도 선배보다 먼저 승진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연한이 존재했다.

앞으로는 연한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고 능력이 뛰어난 사원이 과장, 부장보다 더 높은 직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 잘하는 후배 팀장과 선배 팀원이 나올 수도 있다.

또 호칭은 '○○○님'으로 통일하고 업무 성격에 따라 '님', '프로', '선후배님' 또는 영어 이름 등을 쓰기로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삼성전자와 같은 안을 마련, 내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삼성 계열사 안에서는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제일기획[030000]이 직급에 따른 호칭을 없애고 모두 '프로'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

호칭 통일 제도를 먼저 시작한 곳은 CJ그룹이다. CJ는 2000년부터 '님' 호칭 제도를 도입했다. 공식 석상에서 이재현 회장을 부를 때도 '이재현 님'이라고 부른다.

LG전자[066570] 역시 올 연말 또는 내년 시행을 목표로 진급·평가제도 혁신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기존 5직급 호칭을 유지하면서도 파트장, 프로젝트 리더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앞서 임직원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팀장 없는 날, 회의 없는 날, 플렉서블 출퇴근제, 안식 휴가제 등을 도입했다.

SK하이닉스[000660]는 정기승진을 폐지하고 인사 마일리지 제도를 통해 마일리지 점수 누적에 따른 승급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 '피처폰급' 韓기업문화, '스마트폰급'으로 바꿀 수 있을까

앞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3월 한국 기업문화와 관련, "피처폰급 기업운영 소프트웨어(SW)를 최신 스마트폰급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대한상의와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국내 기업 100개사의 임직원 4만 명을 조사해 발표한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에서 한국의 전근대적 기업문화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

조사대상 100개사 중 최하위 수준 52개사를 포함해 77개사의 조직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중견기업은 91.3%가 하위수준으로 평가됐다. 상위수준 진단을 받은 기업은 23개사(최상위 10개사)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한국형 기업문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습관화된 야근'을 꼽았다.

비효율적 회의, 과도한 보고, 소통 없는 일방적 업무지시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병든 조직으로는 저성장 뉴노멀 시대의 파고를 절대 이겨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구시대적 기업문화의 근인을 찾아내 기업운영 소프트웨어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삼성전자 내부의 인식과 진단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이번 시도가 '피처폰급'에 그쳤던 한국의 기업문화를 '스마트폰급'으로 올릴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재계 맏형 역할을 하는 삼성의 변화가 변화를 선도하는 부분이 있다"며 "제도의 안착이 관건이지만 성공적으로 적용되기만 한다면 이를 따라 하는 기업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양대 경영학부 유규창 교수는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화의 변화가 필요한데 대표적인 걸림돌이 호칭이었다"며 특히 '호칭'의 개편안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기존 다른 기업들이 호칭 단순화를 도입한 사례가 있지만, 사회 전반으로 퍼지지 못했다"며 "삼성전자가 오랜 시간 고민해 개편안을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시도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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