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군산으로 떠난 청소년 근대유산 탐방단

2016-08-1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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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탈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떠난 군산 근대유산 탐방

[한반도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 대웅전을 찾은 청소년 근대유산 탐방단 이하 사진 / 문화유산국민신탁 촬영]

개항장 군산을 찾은 청소년 근대유산 탐방단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은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후원아래 미래세대의 주역인 청소년들의 역사의식 고취와 대한제국의 근대화 그리고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알아보고자 대한제국의 정치 외교 중심지인 서울의 정동, 개항장인 인천과 군산을 차례로 탐방하는 ‘청소년 근대유산 탐방단’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제7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8월 12일, 중,고등학생 30여명으로 구성된 청소년 근대유산 탐방단 단원들이 군산에 소재하고 있는 근대유산을 탐방하였다.

1899년 개항한 군산은 외세 개입에 의해 개항한 부산, 원산, 인천과 달리 대한제국 정부의 자율적 의지로 개항하였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군산에 군사부를 설치하고 임피군을 옥구군에 포함시켰다. 일본은 식민 지배를 하기 위해 자율성을 빼앗고 군산을 비롯한 대한제국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안내해설사로부터 삼국시대 이전부터 그리고 삼국시대 이후에 고려시대, 조선시대 마지막 일제강점기까지의 군산역사에 대하여 안내해설을 듣고 있는 청소년 근대유산 탐방단]

1920년대에는 일제의 미곡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일본의 간척왕이라 불리는 후지이 켄타로가 불이흥업 주식회사를 통해 서해안 간척사업을 통해 '불이농촌'이라는 대규모 간척지를 만들었다.

옥구군 해변에서 섬이었던 무의인도까지와 알산도에서 어은리까지 간척사업을 진행하였다.

대규모 간척사업에 동원된 사람들 대부분은 고향에서 일본인에게 땅을 빼앗기거나 빼앗길 위기에 있는 소작인들이었다.

군산은 1900년초에서 1945년대까지의 우리나라 모든 도시들이 겪었던 식민지시대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군산을 비롯하여 인천, 대구 등 현재 전해지고 있는 근대건축물들은 일제 36년 치욕의 역사를 후손들이 잊이 않고 기억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1922년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설립한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쓴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도 등장한다. 해방 이후 한일은행 군산 지점으로 사용되다가 유흥시설로 바뀌었고 화재로 인해 빈 건물만 남았다. 보수공사를 통해 현재는 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용인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전라북도 군산에 다녀왔다.

군산은 호남 곡창 지대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국내의 미곡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출발지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나는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당시 군산 주민들의 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1894년부터 광복까지를 말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 조선은 외세의 강렬한 간섭에 의해 자신의 영토임에도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욱이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한국을 일본과 한 나라로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일제에게 ‘군산’의 의미는 아주 컸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군산을 여러 가지 곡식을 자국으로 들여오기 위한 항구로 사용했다.

주변에 넓은 평야가 위치해있고, 해안과 접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여러 교통 시설이 군산을 향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산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제는 그곳에 이주한 일본인들과 군산에 계속 살고 있었던 주민들의 생활공간을 나누고, 심지어 그 공간에 일본식 가옥을 설치했다. 비록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군산에 있는 히로쓰 가옥과 같은 일본 가옥이 군산 등지에 건설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군산’을 경제 수탈의 근원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생각은 오히려 지워지지 않고, 구 조선은행 건물에 들어갔을 때 확실히 와 닿았다. 다른 일반 한인 거주지에 비해 월등히 높았던 4층 높이의 건물은 단순히 금전 거래가 이루어지는 은행 역할 뿐만 아니라, 군산 주민들에 대한 무시와 내려보는 듯한 일본인의 억지스러운 생각이 개입했던 것 같다.

군산을 여러 방면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지만, 그 어떤 도시보다도 군산은 남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에 수탈된 처량한 흔적, 그를 잊지 말자는 근대사박물관,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은행 건물, 마지막으로 일본식 가옥과 동국사까지 모두 일본풍의 문화를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심을 거쳐 이 일본 문화의 잔재를 남겨 놓은 만큼, 우리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본 기사는 청소년 근대유산 탐방단 단원인 죽전중 3학년 현예준 군 후기를 토대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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