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는 일주일' 자칭 보살도 힘들었던 이유

2016-08-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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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꾸는 악몽에는 '휴대폰'도 등장한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꿈에서도 나온다. 휴

현대인이 꾸는 악몽에는 '휴대폰'도 등장한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꿈에서도 나온다. 휴대폰 액정이 깨지는 악몽도 있지만, 휴대폰을 아예 못 쓰게 되는 꿈은 절로 식은땀이 흐르게 한다. 

오 마이 갓! 그런 악몽이 얼마 전 현실이 돼 버렸다. 구입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휴대폰이 고장 났다. 사용을 하다 갑자기 전원이 꺼져 버렸다. 그 뒤 핸드폰이 실행되지 않았다.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니,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 약 1주일 정도는 기다리라고 했다.

부팅 화면만 계속 뜨는 G4. 치명적인 고장이었다. 한때 내 사랑♥이었는데... / 이하 위키트리

 

※ LG전자 'G4'를 쓰다 일명 '무한 부팅' 현상을 겪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면 휴대폰이 실행되지 않고 부팅 화면만 계속 떴다. 최근 이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G4 사용자들이 적지 않다.    

 

'다음 날 회사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때마침 휴일근무를 하게 됐다 ㅠㅠ)

 

마치 악몽을 꾸고 일어났을 때처럼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부터, 어쩔 수 없이 '휴대폰 없는 일주일'을 살게 됐다. 대학 1학년 때 휴대폰을 처음 산 이후로 휴대폰 없는 생활을 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군대에 있을 때는 제외하고 말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두려웠다. 머리는 온갖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혹시 급한 연락이 오면 어떡하지…' '연락을 씹는다고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수십 번 반복했다. 참기 힘든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손톱을 치아로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으엉엉엉~~~ 고뇌에 빠진 위키아재

 

그래도 인내심 만큼은 뒤지지 않는. 자칭 '보살'(과거 낸 이력서 특기사항에 '인내심'을 적은 적도 있다)인 내가, 이 정도 일을 못 견디지 않을 것 같았다. 나름의 '인생 경험'이라고 치고, 휴대폰 없는 생활을 해봤다. 8월 14일부터 21일까지였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줄어들고 한숨은 늘었다. 에휴~~~ 힘든 일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3가지로 추렸다. 

"휴대폰 바로 고쳐!" 회사 상사 꾸지람

휴대폰을 한동안 쓸 수 없게 됐지만, 당장 다른 휴대폰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 휴대폰 없이 출근한 16일, 회사 사람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어김 없이 회사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들을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이 회사를 계속 다니는 상황이라면.

(※ 개인적으로 이 분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 둡니다)

상사는 "핸드폰을 한동안 못 쓰다니, 바로 고쳐야지. 우리 업무 보는데 핸드폰은 필수"라고 했다. 맞는 말씀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한가지였다.

"네 최대한 빨리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모두 내 탓입니다 ㅠㅠ / 네이트온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지킬 수 없는 말'이었다. 서비스 센터 문의 결과 약 일주일은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휴대폰 없는 기간 회사에 나오면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말이다. "왜 내 말을 듣지 않나?" 이런 말이 날아올 것 같았다. 상사의 또 다른 꾸지람이 두려웠다.  

'연락 두절' 남편에게 폭발한 아내 

아이가 있어 하루에도 수시로 아내와 연락을 주고 받는다. (위키아재는 올해로 결혼한 지 4년째인 기혼 남성이다^^) 하지만 휴대폰 없는 일주일 동안 나는 무책임한 '연락 두절' 남편이 돼야만 했다. 

회사 자리 전화로 집안 일을 얘기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휴식 시간 등 틈틈이 회사 컴퓨터에 깔아둔 메신저로 급한 얘기는 나눴다. 물론 업무에 방해되지 않게 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서로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특히 퇴근 이후에는 아이를 돌보는 문제 때문에 서로가 예민해 진다. 회사 일로 지친 상태에서 '제2의 업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자 결국 아내가 폭발해 크게 화를 냈다. 핸드폰으로 연락하며 의논할 일이 있지만 며칠을 참아준 아내. 이제 나를 향한 원망이 눈빛에 가득했다. 

"아이도 있는데, 당신은 당신 밖에 모르냐?"는 아내는 이글이글 분노에 타오르며 한마디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라고 맞받아 치고 싶었지만 속으로 꾹 참았다.     

(※ 개인적으로 아내도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 둡니다)

절망 모드 / 이하 위키트리

 

아내는 기약이 없는 수리를 기다리지 말고, 빨리 새 핸드폰을 사자고 했다. 아이도 있는데 더 이상 연락이 두절되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나는 며칠을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새 핸드폰을 사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런 답답하고 '보살' 같은 남편을 아내는 못마땅해 했다. 휴대폰 없는 일주일, 화목했던 집안 분위기는 살벌하게 변했다. 

택시 비로 줄줄 샌 내 용돈 ㅠㅠ

평소 버스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이 중 지하철 역으로 가는 '버스'는 특정 시각 차량을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버스 도착 시각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그냥 도착 시각을 외워도 되지만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곤 한다)

핸드폰을 쓰지 못하게 되자, 회사에 지각하거나 집에 조금 늦게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놓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특히 퇴근 시간에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발걸음이 바빠진다. 평소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급한 일이 아니면 택시를 잘 타지 않는다. 하지만 휴대폰 없는 일주일, 출퇴근 때 눈물을 머금고 매일 같이 택시를 탔다. 

휴대폰 없이 회사에 출근한 8월 16일부터 19일까지 택시 비로 약 3만 2000원(하루 약 8000원)을 썼다. 이 돈이면 회사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턱 낼 수 있는데… 아깝다.

택시 기사님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화이팅! 

 

'휴대폰 없는 일주일' 눈물 어린 소감

회사 상사 눈치 + 살벌해진 집안 분위기 + 홀쭉해진 지갑. 이런 '3중고'를 견뎌내지 못했다. 인내심 한계를 처절하게 느꼈다.   

결국 지난 8월 21일, 새 휴대폰을 장만했다. 휴대폰 없이 보낸 일주일째였다. 그동안 쓰던 LG전자 'G4'는 스마트폰 메인 보드를 교체하는 무상 수리를 받았다. 하지만 '또 고장 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때문에 더 이상 쓰기 꺼려졌다. 

수리 받는 휴대폰 카카오톡 앱에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된 지인 메시지도 와 있었다. 이 분은 일주일째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은 답문을 보내며 미안함이 밀려왔다.  

2016년은 '휴대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었다. (산에 홀로 들어가 도를 닦지 않는다면) 내가 쓰고 싶지 않아도 주변에서 가만 놔두지 않았다. 자칭 '보살'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핸드폰 없는 일주일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보살이 될 수 없었다.

*사진 = 전성규 기자

home 손기영 기자 sk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