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kg 여성이 겪은, 극한 다이어트와 폭식증

2016-09-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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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거식증과 폭식증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거식증과 폭식증의 민낯은 아

더 이상 거식증과 폭식증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거식증과 폭식증의 민낯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이 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부는 "음식을 안 먹고 싶다니 부럽다", "토하면 진짜 살 안 찌나"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24일 만난 제니 심 씨 / 위키트리

지난 24일 수원 한 카페에서 제니 심(Jenny Shim·23)씨를 만났다. 그는 15살 소녀였을 때 폭식증을 심하게 앓았고 용기를 내 올해 SNS에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남김없이 공개했다.

극한 다이어트와 폭식증을 오가며 그녀 몸무게는 114kg에서 60kg대를 넘나들었다. 그가 겪은 폭식증에는 상상 이상의 고통과 집착 등이 뒤범벅돼 있었다. 제니 씨가 그 과거를 털어놓은 이유는 "바보 같았던 자신과 똑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이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내 몸무게는 114kg"

100kg이 넘었을 당시 제니 씨 / 이하 제니 심 블로그(사진을 누르면 블로그로 이동합니다)

15살이 됐을 때 제니 씨 몸무게 114kg이었다. 비만이었다. 특별한 계기로 몸무게가 갑자기 불어난 건 아니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병원에서 '스트레스성 비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제니 씨는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이 딱히 크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2009년 "몸이 너무 불편하다"는 생각에 그는 다이어트를 해보기로 했다. 전쟁 같은 극한 다이어트가 시작됐다.

"다이어트해서 예뻐지겠다는 생각에 달렸죠. 죽도록"

제니 씨 마음가짐은 여느 다이어터와 비슷했다. "빨리 빼야지. 살 빼서 예뻐져야지"

다이어트 방법도 똑같았다.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죽을 만큼 운동하기. 제니 씨는 점심은 밥 반 공기를 먹었고 오후 5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간식은 모조리 끊었고 유산소 운동을 하루에 3시간씩 했다. 비싸지 않은 다이어트 약도 여러 종류 먹었다.

70kg이었을 당시 제니 씨

효과는 꽤 달콤했다. 제니는 8개월 만에 무려 30kg을 감량했다. 가장 많이 빠졌을 때는 몸무게가 60kg대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살찌면 어쩌지... '먹토'의 유혹

몸무게 감량에 '대성공'한 제니는 다이어트 식단이 아닌 일반식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몸무게가 확확 늘기 시작했다. 살이 도로 찔까 봐 공포가 밀려왔다.

"당시에 먹토(먹고 토하기)가 엄청나게 유행했어요"

거식증이나 폭식증을 앓는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방법은 '음식 먹고 토하기'다. 제니 씨도 그 유혹에 빠졌다. 처음엔 좋았다고 했다. 그는 "토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내 몸에서 모든 것을 버린 느낌. 스트레스를 버린 느낌. 상쾌한 느낌. 솔직히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필리핀 기준으로 고등학교 4학년(15살) 막바지부터 폭식증이 시작됐고 대학교 1학년까지 심각한 상태였다. 그는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다보니 어디선가 '먹어! 먹어! 먹어!'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제니 씨는 매일매일 먹은 것을 토했고 하루에 여러 번 하는 날도 많았다. '폭식하고, 토하고 또다시 먹고'의 반복이었다. 이 증세는 식욕 이상 항진증(bulimia)이라고도 부른다.

"토한 다음 먹었던 음식들이 다 나왔나 하나하나 찾았어요"

pixabay

폭식증을 앓을 때 제니 씨는 아주 많이 먹었다고 했다. 배가 볼록해지고 너무 아플 때까지 음식을 넣었다.

살이 찌면 안 되니 그다음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했다. 그는 "강박증이 정말 심해졌을 때는 뭔가를 먹을 때 다 적어놨다. 사과, 과자, 아이스크림 이런 식으로"라고 했다. "토하면 그 음식들을 다 찾았다. 다 안 보이면 계속 토했다"고 덧붙였다.

"몸도 살기 위해서 그랬는지 점점 토하는 게 쉽지 않았다. 손가락만 넣어도 토가 나왔는데 어느 순간 나오지 않더라. 억지로 토 하기 위해 손가락을 점점 더 깊숙이 넣었다"

매일 반복하다 보니 점점 구토도 쉽지 않았다.손에서는 피가 났다. 당시 계속 이빨에 긁혀서 난 흉터는 그의 손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 폭식증을 겪으며 제니 씨 몸무게는 60kg대에서 80kg대로 도로 늘었다. 입안이 헐어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몸이 점점 아파왔다.

폭식증 때문에 손에 남은 흉터 / 제니씨 블로그(사진을 누르면 해당 계정으로 이동합니다)

다이어트로 예뻐지고 싶었을 뿐인데... 왜 폭식증을 끊어내지 못했을까

밀려오는 허전함과 다이어트에 대한 강한 강박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먹는 것에 비해서 많이 찌지 않으니 제니 씨는 폭식과 구토를 끊어낼 수 없었다. 폭식증에서 벗어나기까지 '7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제니 씨는 폭식증이 '마음의 병'이라고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식'과 '감정'이 엉켜 있었고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행복할 때도 먹고, 어느 날은 슬퍼서 먹고 어느 날은 화가 나서 먹고... 섭식장애를 겪을 때 한창 사춘기였는데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상황이었고 집안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처음엔 아니었는데, 점점 습관이 되면서 스트레스 푸는 법이 폭식이 됐어요"

구토를 한 다음에는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면 안 되는 걸 했다'는 생각에 자책했다. 그는 결국 먹으면서도 죄책감, 토하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렸다. 몸도 정신 상태도 피폐해졌다.

이후 2016년 초반 제니 씨 사진이다. 약 25kg 감량해 몸무게 55kg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사진을 누르면 해당 계정으로 이동합니다 / 인스타그램, jennyeatscake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혹시 거식증 증상까지 나타나 급격히 살이 빠졌던 걸까. 다행히 2013년부터 그는 폭식증에서 본격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까지 몸무게는 70kg대 후반, 그대로였다. 제니 씨가 먼저 덜어낸 건 '몸에 붙은 살'이 아니라 '마음속 강박증'이었다.

제니 씨는 "9살부터 필리핀에 살았는데 2013년에 한국에 왔다. 그때부터 한국과 일본 곳곳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살찌는 것에 대한 강박이라는 걸 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해졌고 무엇보다 나만 상처받았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는 먹고 싶은 거 먹었어요 쓰레기 음식이라도(웃음). 살도 찐 상태였고요. 하지만 먹는 거에 대한 강박증, 죄책감은 없었어요. 재밌게 살았고 몸무게도 재밌게(?) 오르더라고요"

이후 지난해 제니 씨는 한국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시작했고 남자친구를 만났다. 당시 가슴이 G컵이었는데 계속 서 있다 보니 허리가 너무 아팠고 남자친구가 가슴 때문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8월부터 남자친구 도움을 받으며 운동과 식이조절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IIFYM(If It Fits Your Macros)를 했다. 'IIFYM'은 내 몸, 운동횟수 등에 맞춰 3대 영양소 비율과 양을 정하고 그 안에서 음식을 자유롭게 먹는 식습관이다.

왼쪽부터 110kg대, 80kg대, 2016년 제니 씨 / 제니 씨 블로그(사진을 누르면 해당 블로그로 이동합니다)

114kg에서 80kg, 80kg에서 55kg... 고등학생 때 했던 다이어트와 2번째 다이어트에서 감량한 몸무게는 비슷했다. 하지만 그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살 빼는 동안 재밌었다"고 했다. 운동은 일주일에 3번 정도 했다.

식이요법과 운동을 하는 이유도 분명해졌다. 근육 있고 힘이 세 보이는 몸매.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인사가 운동하는 영상들을 보여주며 흐뭇해했다. 키 154cm인 제니 씨 몸무게는 9월 현재 65kg이다. 가장 많이 빠졌을 때보다 10kg 정도 더 나가지만 운동으로 몸을 키운 상태였기 때문에 탄탄해 보였다.

좋아하는 SNS 스타 사진을 보며 웃고 있는 제니 씨 / 위키트리

지난 6월 척추측만증에 남자친구까지 캐나다로 가면서 외로움이 찾아왔다. 이때 잠시 폭식을 하고 토하는 습관이 돌아오기도 했다. 55kg에서 몸무게도 늘었다. '아 왜 이런 바보 같은 방식을 다시 하고 있지' 제니 씨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폭식을 했더라도, 몸무게가 늘더라도 토하는 행동을 참았다. 음식을 마구 먹고 토하면 또 다시 음식을 찾고, 살 찔까 두려워 먹은 것을 게워낼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점점 섭취량을 조절하며 몸무게를 빼려고 하고 있다. 그는 음식과 친해지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게 되면서 "행복해졌다"고 했다.

제니 씨가 유튜브에 지난 7년간 겪은 폭식증을 공개한 후 많은 이메일을 날아왔다. 그는 "한국에 이렇게 다이어트부터 폭식증, 거식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며 "내가 겪은 것보다 심각한 분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폭식증을 앓고 있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강함'이라고 말했다. "가혹하게 구는 게 아니라 나를 강하게 믿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보기에도 얼굴도 몸도 너무 예쁜 분이 있었는데 더 마르고 싶다고, 자기 자신이 싫더고 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제니 씨는 "나는 못생겼어, 나는 뚱뚱해... 이런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제니 씨는 이미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길, 몸 상태가 심각하다면 병원에 꼭 가길 권했다.

15살, 어린 나이에 힘들고 외로웠던 스스로에게 그가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괜찮아, 괜찮아였다.

현대인이 겪는 대표적 섭식장애: 거식증, 폭식증

-거식증 (신경성 식욕부진증 anorexia nervosa)

체중 감소를 위한 비정상적 행동을 보이는 섭식 장애. 체중에 부적절한 집착을 하고 살 찌는 것에 강한 두려움을 느낀다.

지난 8월 그룹 오마이걸 진이 씨가 거식증을 앓게 돼 치료가 필요하다며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그룹 레이디스 코드 소정 씨도 과거 거식증에 걸려 38kg까지 나갔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폭식증 (bulimia nervosa)

단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구토 등으로 체중 증가를 막으려는 비정상적 행위를 반복하는 증상이다. 끼니를 걸러 배가 고픈 상태에서 몰아서 음식을 먹는 '과식'과는 다르다.

가수 아이유 씨는 지난 2014년 SBS '힐링캠프'에서 폭식증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모 아니면 도라서 절식 아니면 폭식을 했었다"고 했다. 아이유 씨는 "구토할 때까지 먹었다"며 "안이 공허한데 뭐라도 채워야겠으니 음식물로 속을 채우는 거였다"라고 털어놨다.

오마이걸 진이 씨(왼쪽 사진), 아이유 / 뉴스1

국민건강보험공단 2008년에서 2013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폭식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796명이다. 그중 93.8%(1684명)이 여성이다. 20~30대 여성은 전체 진료 인원 66.5%를 차지했다.

반면 폭식증 환자 증가율은 여성보다 남성이 높았다. 지난 2008년 남성 폭식증 진료 환자는 67명이었으나 지난 2013년에는 112명으로 67.2% 늘었다.

home 강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