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굶기고 죽이고…'위기의 반려동물'

2016-09-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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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대구 동구의 주택가에서 주인으로부터 학대 받다 구조된 강아지가 치료를 받는 모습

지난달 말 대구 동구의 주택가에서 주인으로부터 학대 받다 구조된 강아지가 치료를 받는 모습. 이 강아지는 학대로 인해 양쪽 눈을 실명했다.[동물자유연대 제공] / 이하 연합뉴스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말 못하는 동물을 매질하고, 방치해 굶기고, 처참히 죽이기까지 하는 동물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물호보가들은 동물 학대를 목격해도 동물에 대한 소유권이 없으면 구호 조치를 할 수 없는 현행 동물보호법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는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 생명보다 소유권을 우선하는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식용견 관련 산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도 일고 있다.

◇ 학대받는 동물 봐도 "구조 못한다"

지난달 말 대구 동구의 주택가에서 주인 A(70대)씨로부터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질질 끌려다니며 얻어맞던 두 살도 안 된 강아지가 가까스로 구조됐다.

구조된 강아지는 양쪽 눈을 실명한 데다 다리와 꼬리 부위 골절상을 입고 있었다.

A씨는 자신이 먹으려던 어묵이 없어지자 강아지가 먹은 것으로 생각해 최소 한 달여 동안 학대를 일삼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보호단체는 경찰, 지자체와 함께 학대 영상을 확보하고, A씨에게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아 강아지를 구조했다.

지난 7월 경기 성남의 한 다세대주택 빈집에서 발견된 시베리안허스키의 구조 당시 모습

이 과정에는 수일이 소요됐다고 한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학대받는 동물을 구조하는 것이라고 해도 소유권 침해에 대한 위법성은 조각되지 않는다.

A씨 사례를 예로 들면, 학대를 문제 삼아 A씨로부터 강아지를 빼앗는 방법으로 구조했다가는 되레 절도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지난 7월 경기 성남의 다세대주택에서 아사 직전에 목숨을 건진 3개월 된 시베리안 허스키도 비슷한 경우였다.

당시 이웃 주민에게 발견된 시베리안 허스키는 쓰레기와 오물더미에 둘러싸여 쓰러진 채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제보를 받은 동물보호단체는 집주인 허락 없이 주거지에 들어가면 주거침입죄로 입건될 수 있는 데다, 강아지 주인이 "강아지를 곧 데려가겠다"고 말해 곧바로 구조에 나서지 못하고 며칠을 흘려보내야 했다.

다행히 지자체가 동물보호 조치를 발동해 시베리안 허스키는 구조됐고, 병원 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7월 경기 성남의 한 다세대주택 빈집에서 발견된 시베리안허스키가 병원 치료를 받고 몸상태가 좋아진 모습

◇ "인간이 가장 잔인" 동물보호법 위반 매년 증가

동물보호단체로부터 구조돼 목숨을 건진 동물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주인에게 혹은 이웃 주민이나 행인에게 학대를 당하다 끝내 목숨을 잃는 동물도 부지기수로, 끔찍한 동물 학대 사건은 해마다 증가세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표창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검거 인원은 2012년 138명(118건)에서 지난해 264명(204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달 기준으로 벌써 210명(159건)이 입건됐다.

경찰 입건 사례를 보면, 한때 애지중지하던 반려동물을 무자비하게 죽인 남성이 검거된 상식 이하의 사건도 있어 인간이 가장 잔인한 동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 남성은 아내와 싸운 뒤 화를 주체하지 못해 6개월 된 바셋하운드를 5층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셋하운드의 몸에 라이터용 기름을 부은 뒤 불태워 죽여 경찰에 붙잡혔다.

또 옆집의 생후 1년 된 요크셔테리어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몰래 쥐약을 먹인 이웃 주민이, 만삭의 고양이를 발로 차 새끼 고양이 3마리를 사산케 한 행인이 각각 입건된 사례도 있었다.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이 늘어난 이유로는 동물 학대 범죄에 대한 시민 의식이 높아진 결과라는 시각이 많지만, 도를 넘은 학대가 잇따르면서 신고가 증가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동물보호법 개정안 발의…반대 여론도 있어

동물보호가들은 동물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심인섭 동물자유연대 부산지부 팀장은 "현행법은 동물을 물건으로 간주하고 있어 주인으로부터 학대받는 동물이라고 해도 함부로 구조에 나설 수 없다"며 "주인과 동물을 격리할 권한은 동물보호감시원(지자체 공무원)만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대가 인정돼 처벌이 내려져도 소유권은 여전히 주인에게 있어 구조 과정에서 아예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아 둔다"라며 "동물보호단체가 동물 학대자에게 소유권을 포기해달라고 애원해야하는 셈"이라고 부연했다.

사정이 이렇자 표 의원 등 60명은 지난달 말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누구든 동물 학대 행위자로부터 동물을 구조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규정은 물론 학대 행위를 구체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표 의원은 "현행 동물보호법은 소유권 침해에 대한 위법성을 조각해주는 제도, 즉 '긴급격리조치'가 없어 개정안에 관련 규정을 신설했다"며 "누구든지 동물 학대 행위자로부터 동물을 구조할 수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도구·열·전기를 사용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 '좁은 공간 장시간 가두면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개고기 합법화, 동물보호법 개정저지 투쟁'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관련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식용견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중심이 된 '동물보호법 개정저지 투쟁위원회'는 지난달 말 서울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어 개정안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개정안은)사실상 개 도축을 원천 금지하고 있다"며 "소·돼지·말 등이 포함된 축산물가공처리법 시행규칙에 개를 포함하고, 자유롭게 개고기를 먹고 농민들도 떳떳하게 개고기를 판매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내 한 식용견 시장 관계자는 "식용견 사육, 도·소매에 종사하는 2만여명이 거리에 나앉게 될 판"이라며 "국회의원들은 관련 산업 종사자에 대한 생계 대책 마련도 없이 법 개정만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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