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으로 달라진 대학가 풍경

2016-10-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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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첫날인 지난달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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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첫날인 지난달 28일 정오를 막 넘긴 무렵, 서울지방경찰청에 첫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한 대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서면 신고를 안내했지만, 그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다소 허무하게 끝난 김영란법 1호 신고 소식에 반응은 엇갈렸다.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만든 법인데, 학생이 교수 캔커피 사준 거나 적발하며 본 취지와 다르게 나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저런 행동에서 차별과 비리가 싹 틀 수 있다. 캔커피를 사줘도 교수가 사주는 게 맞다고 본다"는 긍정적 반응도 있었다.

실제 대학가에 김영란법이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대학 전경 / 위키트리

연세대 재학 중인 민모(23) 씨는 "법 시행 직후 수업 시간 전 교수님께 음료를 드렸는데, 교수님이 정중하게 거절하셔서 좀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며 "아주 작은 거라도 빌미를 제공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외대에서 조교로 근무 중인 한모(23) 씨는 "일반 교수님들은 물론 외국인 교수님들에게까지 김영란법 관련 서약서에 서명을 받았다. 법에 저촉되는 금품을 받지 않고, 이를 어길 시 불이익을 달게 받겠다는 취지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김모(25) 씨는 "개인적으로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피부로 느껴질만큼 달라진 점은 없다. 대다수 학생들이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교수님들이나, 조기 취업을 한 친구들은 고민이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조기 취업생들은 학교에 '취업계'를 낼 수 없게 됐다. 졸업예정자가 수강하고 있는 과목 교수에게 남은 수업 출석을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은 '부정청탁' 범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딸을 둔 최모 씨는 "힘들게 대학을 다닌 딸이 6개월 인턴을 거쳐 조기 취업에 성공했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취업계를 내기 위해 상담을 받던 중 '김영란법에 의한 부정청탁'이라는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며 황당한 심경을 전했다.

군 복무 중인 남학생들도 김영란법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군 복무 중인 23살 박모 씨는 올해 초 전문하사를 신청했다. 전문하사는 군 의무 복무 기간을 다 채우고 최소 6개월 간 직업군인처럼 월급을 받으며 추가로 복무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박 씨는 "원래는 전문하사를 신청하고 학교에 취업계를 제출하면 B 정도(학교마다 상이)의 학점으로 학기를 인정받고 군에서 더 근무할 수 있었는데 김영란법 때문에 취업계 제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학교 측에 문의했지만 언제 대책이 마련될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송기석 의원이 공개한 '2016학년도 재학생 취업 현황'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62곳과 전문대 65곳에서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취업을 했거나 취업 예정인 재학생들이 401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는 11~12월에 하반기 공채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더 많은 학생들이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기 취업자들의 불이익 논란이 일자 지난 26일 교육부는 각 학교에 '자율적으로 학칙을 개정할 경우 조기 취업 학생에게 학점을 부여할 수 있다'는 안내 공문을 보냈다. 문제는 당장 학칙을 개정할 수 있는 학교가 없다는 점이다.

연세대 홍보팀 담당자는 "학칙 개정에 대한 공고는 받았지만, 그 절차가 복잡하고 바꾼다해도 몇 개월 이상 소요된다. 당장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 10월 초 중으로 실질적 운영이 가능한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서울대 학사과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학생들의 조기취업 관련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꼭 학칙개정이 아니더라도 공문을 통해 교수가 재량껏 출석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합리적 방안 등도 고려 중에 있다"고 전했다.

다른 대부분 대학들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기 보다는 학생들 여론을 수렴해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pixabay

김영란법은 학부 졸업자와 직장인들이 다니는 대학원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대학원생은 학부생들보다 훨씬 교수와 많이 얽히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A 대학 경제대학원 홍모 교수는 "일단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다. 법 취지에 대해선 십분 동감하지만 법 시행 후 모든 행동이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진 건 사실"이라며 "괜한 오해를 살까 학생들과 1:1 면담도 피하고 있다. 아직 별다른 적발 사례가 없고, '청탁'이라는 의미가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어 모두들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B 대학 대학원생 김모(31) 씨는 "논문 심사 시기에 (교수에게 대접할 것을 생각하느라) 바빴던 풍경은 사라질 것 같다.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이어져 오던 풍습 같은 거라 또 다른 경로로 횡행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임지본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영란법은 국민들이 취지에 공감하는 법"이라면서도 현재의 혼란에 대해 "법 적용 대상을 명확히 하고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공직사회의 청렴성 제고라는 취지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