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후 "선거권 달라" 목소리 높이는 청소년들

2016-11-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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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우리가 뽑았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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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뽑았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거권 연령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도 의견을 표출할 수 있도록 투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정황이 드러나며,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청소년들이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때 '유모차 부대'가 있었다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에는 교복을 입고 거리로 나온 '교복 부대'가 있다. 정유라 씨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돈도 실력이야, 너네 부모 원망해"라는 정유라 씨 발언 등에 분노한 청소년들이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2일 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청소년들 /유튜브, 요토

지난 12일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에서 열린 3차 촛불집회에서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은 "박근혜는 하야하라, 청소년이 주인이다"를 외쳤다. 앳된 목소리지만 힘이 실려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일부 청소년들은 타악기 퍼포먼스를 보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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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은 입을 모아 "우리가 뽑지 않은 대통령이 우리 삶에 너무 많은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정유라 씨 부정입학 의혹,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은 성인들보다 청소년들에게 더 민감한 문제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날 만난 고등학생 김 모(18) 양은 "정유라 부정입학 의혹을 보면서 허탈했고, 허탈함이 분노가 돼 집회에 나왔다"며 "대통령이 사태에 책임지고 하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청소년들도 '투표'라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고생연대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최준호(19) 군은 위키트리에 "이번 사건은 기성세대 혹은 성인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우리도 충분히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대통령 선거 등)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청소년들이 정치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선거권 연령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 요구

현행법은 선거권 연령 기준을 19세로 규정하고 있다. 2005년 선거법 개정으로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하향 조정됐다.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에 대한 논의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난 8월에는 선거 관리 주무기관인 중앙선관위가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낮출 것을 제안했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청소년들 정치 참여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지부진한 선거권 연령 인하 논의에 불이 붙을 조짐이다. 청소년들이 직접 선거권 연령 인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 16세 선거권을 주장해 온 녹색당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녹색당 전 공동운영위원장)는 최근 현상에 대해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지난 9일 위키트리에 말했다. 

하승수 대표는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데 선거권 연령 기준이 만 19세로 너무 높아 제약이 있었다"며 "청소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번 사태로 끝나서는 안 되고 정치 제도를 개선하는 데까지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거권 연령을 인하해야 하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OECD 국가 중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과 한국에서 대부분의 권리와 의무가 만 18세를 기준으로 부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하승수 대표 / 하승수 대표 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 게시물 바로 가기)

 

OECD 국가 중 19세 선거권 유일, 병역 ·납세의 의무도 만 18세부터

실제로 OECD 국가 중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인 국가는 한국뿐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은 '만 18세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는 만 16세 이상부터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케냐, 라이베리아, 모잠비크,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36개국도 선거권 연령 기준이 만 18세다. 

하승수 대표는 "선거권 연령이 한 살이라도 내려간다는 것은 더 많은 청소년들이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는 의미"라며 "선거권 연령 만 19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한국이 정치 후진국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18세 참정권 운동을 실시하고 있는 한국 YMCA 김진공 국장은 "만 18세가 되면 선거를 제외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운전 면허를 따거나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병역 의무도 짊어져야 하는 나이다. 선거권만 주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김진공 국장은 "청소년도 시민이다. 4.19 등 한국 민주화 운동에는 중고등학생들 참여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청소년들도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갖고 불합리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며 연장선상으로 선거권도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선거권 행사할 능력과 소양 부족하다"는 우려도 나와

만 18세 선거권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 선사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 모(18) 군은 "주변 친구들을 보면 우리 또래는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다. 온라인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를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도 있다"며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혹은 진지하지 못한 투표를 하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선거권 연령 인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우려가 기우라고 반박한다. 하승수 대표는 "보편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을뿐 아니라 최근에는 정보 접근이나 자기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방법이 쉬워졌다"며 청소년들도 선거권을 행사할 능력과 소양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에 휩쓸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나이가 들었다고 소문, 풍문에 휩쓸리지 않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고생연대 상임고문 최준호 군은 이런 우려에 대해 "선거권이 주어지면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 최준호 군은 "청소년들이 성인 보다 일정 부분 미성숙할 수 있다"며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아 정보나 교육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 군은 "선거권이 주어지면 정보 혹은 교육 부족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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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 조정하게 되면 현재 기준으로 유권자가 약 63~64만 명 더 발생한다. 김진공 국장은 만 18세로 하향 조정되면 고등학교 재학생들이 포함된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라고 짚었다.

김 국장은 "고등학교 3학년이 포함된다는 의미는 입시제도나 무상급식 문제 같이 자신들과 직결된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선거권이 있는 상태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정당에서는 고등학생들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등학생이 유권자가 되면서 정치권에서도 고등학생에 맞는 공약을 제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은 최순실 사태에 대해 분노만 하다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준호 군은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서 중고생들의 정치 참여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거권 연령 인하를 요구하는 등 학생들 권익 보장을 위해 계속 활동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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