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구사일생 주방장...20년 후 '기부왕' 근황

2016-12-2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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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한 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불황에도 매달 수백만원 씩 나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한 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불황에도 매달 수백만원 씩 나눔을 베푸는 음식점 사장님이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한다. 서울 구로구에서 '원당감자탕'과 '예담갈비'를 운영하는 주종평(47)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하 연합뉴스

24일 서울 구로구에 따르면 10년 넘게 이곳에서 음식점을 꾸려온 주씨는 매달 대한적십자사는 물론, 충주·남양주의 장애인 시설 등에 수십만∼수백만원을 기부하는 '기부왕'이다.

2011년∼2013년에는 구로3동 저소득 가정 8가구에 매달 20만원씩 꾸준히 도왔고, 2012∼2014년에는 관내 저소득 어르신 백수십명에게 매달 무료로 음식을 대접해 드렸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오토바이 동호회와 함께 매년 멀리 강원도 영월에 있는 보육원에서 체육대회를 열고 레크리에이션을 펼치는가 하면, 아이들 사이즈를 미리 파악해 매년 신발도 신겨 준다. 보육원을 찾을 때마다 '애마'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도 태워준다는 그는 아이들에게 '천사표' 오토바이 아저씨다.

이달부터는 운영하는 식당 두 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어르신 수십 명씩을 대접하는 나눔도 다시 시작했다.

어림잡아도 지금껏 전국 곳곳과 지역 사회에 베푼 액수만 억대일 듯싶은데, 그는 "굳이 계산해 본 적은 없다"며 겸손하게 손사래를 쳤다.

"기부 물품을 전달할 때도 제가 직접 갖다 드리지 않고 직원에게 부탁해요. 직접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나누는 마음이 중요하기에 지금껏 기부금 영수증도 받지 않았는데, 동사무소 직원이 기부 근거를 남겨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하."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주씨는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형제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17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주씨는 "악덕 업주를 만나 매를 맞기도 했고, 밥을 굶는 날도 많았다"며 "어린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언젠가는 다른 이들을 돕고 싶다는 욕구가 늘 마음 한 편에 자리했다"고 되돌아봤다.

살면서 우여곡절 안 겪어 본 사람 없다지만, 주씨 역시 요식업에 종사한 지난 20여 년 간 말도 못하게 많은 일을 겪었다.

특히 역대 최악의 인명 참사라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난 1995년 6월29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주씨가 바로 삼풍백화점 5층 고급 식당가에서 우동집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했더니 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벌어져 불룩불룩 올라와 있었어요. 정오쯤이 되니 '펑' 소리가 나고 스프링클러가 터지기 시작했죠. 영업하지 못하겠다 싶어서 임원에게 보고하고 다른 직원을 먼저 보내고 오후 5시쯤 들어갔어요."

주씨는 "백화점이 무너지기 30분쯤 전에 빠져나온 것"이라며 "인근 호텔을 지나갈 때쯤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온 직원과는 아직 함께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서초동에 분식집을 차렸지만 불이 나 '쫄딱' 망하는 일도 겪었다. 이후 빈손으로 다시 일어나 지금은 두 가게의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주씨는 "요즘 경기가 나빠져도 나눔은 나 자신과의 굳은 약속"이라며 "나눔을 베풀면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내 작은 도움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꾸준히 나눔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훗날 제 자녀들이 저를 '열심히 산 사람'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동네 아이들이 맘 편하게 와서 놀다 가고, 바쁜 직장인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을 가꿔보는 게 저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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