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로 욕 안 먹는 방법 없다" 티모 세계 1위 항심

2016-12-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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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항심 / 위키트리 (인터뷰 섭외 당시 통화 내용)항

티모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항심 / 위키트리

(인터뷰 섭외 당시 통화 내용)
항심 : "인터뷰하면 괜히 욕만 더 많이 먹을 거 같아서요"
기자 : "잉? 왜요? 왜 인터뷰하면 욕을 더 먹어요?"
항심 : "티모는... 원래... 그런 캐릭터입니다"
티모(Teemo) / 롤 공식 홈페이지

#1

기온이 뚝 떨어진 28일 오후 한 빙수 가게에서 게임 BJ '항심(본명 양용현)'을 만났다. 찬바람 때문인지, 유난히 하얀 피부가 빨갛게 얼어 있었다.

"좀 추워도 밥 먹고 나서는 달콤한 걸 먹어줘야 하거든요. 저 흑임자 빙수로 할게요. 헤헤!"

방실방실 잘 웃는 이 청년은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티모 랭킹 세계 1위' 게이머다. 전 세계 게이머를 아울러 순위를 매기면 139위로, 상위 0.0053%에 랭크돼 있다.

물론 국내엔 더 순위가 높은 게이머도 있다. 그러나 그가 더 시선을 끄는 것은 주로 사용하는 챔피언이 '티모(Teemo)'이기 때문이다.

티모는 귀여운 외모지만 롤 게이머에게 기피 챔피언 1순위다. 숙달하기가 어려워 티모를 '제대로' 플레이하는 유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상대 편에 티모가 있으면 게임이 재미 없고, 우리 편에 티모가 있으면 진다. 그래서 누군가 티모를 선택하는 순간 게임 채팅창은 욕설로 도배되기 일쑤다.

항심은 하필이면 왜 그런 챔피언인 티모를 선택했을까. 또 게임 방송 BJ의 삶은 어떨지 궁금했다.

기자 : "위키트리 독자 분들께 26~27일에 걸쳐 미리 받은 질문입니다.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질문도 할 거 같아요. 괜찮으시죠?"

항심 : "네 괜찮습니다"

안건희 독자 질문 : 닉네임이 왜 '낭심'이 아니고 왜 '항심'인가요?

*낭심(陰囊) : 음경의 기부(음경근)에서 주머니처럼 아래로 처져 있는 피부낭. 다른 말은 '음낭' (출처 : 두산백과)

"아! 네 (당황), 우선 제 아이디가 왜 항심이냐는 질문은 자주 받았어요. '항산항심'이라는 사자성어에서 따 온 아이디입니다. 제가 좋아 하는 사자성어예요"

※ 항산항심(恒産恒心): '맹자'에 나온 말로 일정한 재산과 직업이 있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작은 일에도 쉽게 동요한다는 뜻이다.

사실 처음 '롤(League of Legend)'을 시작할 때 아이디가 항산항심이었는데, 부르기가 너무 어려워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면서 그냥 항심으로 바꿨어요. 이후 팬분들이 '항심이'라고 불러 주시게 됐죠. '항상한심'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임우혁, 재희, 장태영 독자 공통 질문 : 왜 많은 챔피언 중 티모를 선택하게 됐나요?

제가 게임 시작할 때 이미 '티모, 마이, 베인' 챔피언이 3대 충(蟲)으로 불렸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티모로 게임하는 게 재밌어요. 캐릭터도 귀엽고. 플레이해 본 챔피언이 10개 쯤 되는데 저한테는 티모가 최고였어요.

롤의 챔피언은 각자 분명한 장단점이 있어요. 그런데도 티모로 잘하는 플레이어가 워낙 적으니 '민폐' 대명사가 된 거죠. 롤 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티모를 픽(선택)하면 게임상에서 욕을 많이 먹게 돼요. 오버워치의 '한조'처럼요.

"티모를 하면 상대방이 괴롭고 우리 편도 괴롭고 자기만 재밌다"는 말이 있고, '티확찢'(티모는 확 찢어야 제 맛)이라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도 남들이 힘들고 어려워하는 걸 하는 게 제 성격인가 봐요.

박박탷 독자 질문 : 티모를 밴 당하면 뭐하시나요?

*밴(Ban): 특정 캐릭터를 선택할 수 없게 하는 게임 시스템. 위협적인 상대 팀 캐릭터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

아까 질문과 조금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냥 닷찌(Dodge: 회피하다, 패널티를 감수하고 게임을 포기하고 나가는 것)하거나 '야스오'를 픽해요. 야스오도 '야필패(야스오가 있으면 반드시 패한다)'는 말이 있는 기피 캐릭터예요. 진짜 제 성격인가 봐요

기자 질문: 유저 분들에게 롤 잘하는 법, 혹은 티모로 욕 안 먹는 법 3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첫 번째는 무조건 재미있게 해야 해요. 남들이 좋다는 '대세 챔피언'을 하기보다는 본인이 플레이하면서 제일 재미있는 챔피언을 픽해야 게임도 잘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재능'이 필요해요. 게임을 오래 한다고 잘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누구나 다이아 5티어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위부터는 분명히 재능이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티모를 하면서 욕 안 먹는 법을 말씀드리자면 '없습니다'. 하하. 그냥 욕먹으면서 하는 게 티모예요. 그냥 맘 편하게 "나는 오늘 욕먹는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속 편합니다. 욕 먹는 게 너무 싫으면 티모를 안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활짝 웃고 있는 항심

#2

최근 게임 방송 등 각종 개인 방송이 붐을 이루고 있다. 초등학생 꿈 1위가 BJ라는 보도도 나왔다. 항심은 전업 게임 BJ다. 그의 수입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래서, 얼마 버시나요? 한 달에. 전업 BJ로 먹고 살 수 있나요?

제가 방송을 켜면 최소 7시간 정도 하는데 고정적으로 1000~2000명 정도 시청자 분들이 들어오세요. 아프리카TV 롤 BJ 중에서는 2~3위권 정도 되는데요. 한 달 수입은 대충 300만 원대입니다. 생일 같이 특별한 날에는 500만 원대까지 받은 적이 있고요.

대박이네요,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되나요?

저는 아프리카TV 기반 BJ라 역시 별풍선 수익이 제일 많고요, 유튜브 광고 수익, 스폰서 광고 수익이 있습니다. 게임 중간에 의뢰받은 광고를 틀어주는 경우도 있는데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수익 모델입니다. 팬 분 중에서 선물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가끔 돈을 보내주시려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거절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버셨나요?

절대 아니죠. 제가 2년 가까이 방송을 했는데, 돈을 벌기 시작한 건 올 4월부터입니다. 그전에는 떡집 하시는 팬이 보내주시는 떡, 고기집하는 팬이 보내주시는 고기를 가끔 받는 정도였어요. 실질적인 수입은 '0'원이었어요.

일 년 넘게 수입 없이 지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그 시절을 넘길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요?

집이 전세였어요 (단호). 일부러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사는 집이 전세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집을 부모님께서 얻어 주셨으니 부모님 도움 덕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요.

통신비도 한달에 5000원 나와요. 만약 제가 고정적으로 나가는 집세가 있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BJ로 돈 못 벌었을 거 같아요.

'투잡'으로 하시려는 분들도 계시는데, 시청자들은 그런 거에 민감해서 바로 눈치를 채요. 조금이라도 성의 없다 싶으면 절대 별풍선을 선물하지 않아요.

이쯤에서 놀라운 항심이 실력 한 번 감상해 보시죠! / 유튜브, HangSim TEEMO

잘 나가는 소수 BJ 모습만 보고 이 업계에 무작정 뛰어드는 분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거 같은데요?

(아프리카 TV를 휴대폰으로 켜서 보여주며) 시청자가 1~5명 사이인 롤 BJ만 100명이 넘어요. 시청자가 50명 정도 있는 애매한 BJ도 꽤 많고요. 조용히 시작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분들도 셀 수 없습니다.

이 BJ 세계라는 게 정말 냉정한 곳이에요. "00님 언제 방송 켜세요?!" 하던 팬들이 하루 뒤에 다른 BJ로 넘어가는 일이 일상이에요.

동시접속자가 4000명 정도 되는 BJ도 게임 패치나 경쟁자 등장으로 며칠 만에 망하는 예도 있고요. 사람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돌아보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곳이 이곳이에요.

혹시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으세요? 전 국민 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 1이 결국 조용히 잊혀진 것처럼 롤도 언젠가는 그럴 텐데요

당연히 불안하죠. 게임 오버워치가 처음 등장했을 때가 가장 큰 위기였어요. 그때 마침 '헬퍼(게임을 도와주는 자동 프로그램)' 논란이 겹쳤을 때였어요. "아, 이대로 망하나?" 했어요.

파울로 코엘료가 쓴 책 '마크툽 (Maktub)'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는 우는 것을 두려워해서 웃지 못하고 우는 것을 두려워해 웃지 못한다".

저는 지금 이 순간 재미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나중을 생각해서 지금을 즐기지 못한다는 건 넌센스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우리나라엔 오래, 성실히 하면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거 같아요. BJ를 시작하시려면 남들이 볼 만한 콘텐츠가 내게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해요. 매일 12시간 씩 방송한다고 사람들이 보러 와 주지 않아요.

'뭔가'가 있어야 해요. 그게 없다거나 뭔지 모르겠으면 반드시 반드시 실패해요. 그리고 매우 외로운 직업이에요. 저는 아니지만, 반려동물 키우지 않는 BJ를 찾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BJ나 한 번 해볼까?' 하고 쉽게 생각해서 실패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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