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위안부 할머니 증언 5가지

2017-01-1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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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들은 “시간이 없다”고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시간이 없다"고 한다. 피해 할머니들이 고령이어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생존자는 이제 40명(국내 38명, 국외 2명) 뿐이다. 그러나 일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 8일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평화의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10억 엔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다섯 가지 주제로 피해자들 증언을 모아봤다.

1. 606호 주사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이하 pixabay

'606호' 주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뜨겁고 매우 아팠다"고 말하는 주사다. 김순자 할머니는 "토요일 군의관들이 각 텐트를 돌면서 '606호'라는 성병예방주사를 놔줬다"고 증언했다. 고 황금주 할머니는 "606호 주사에 몸은 병들고 자궁은 썩어 나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군은 군인들이 성병에 걸려 전투력이 떨어질까 봐 '성병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일본군은 성병 관리를 위해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기적으로 '606호 주사'를 맞혔다.

606호 주사 정식 명칭은 '살바르산'으로 매독, 회귀열 등 성병 치료에 효과가 있어 과거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불임 원인이 되는 등 부작용이 심하다. 생존 할머니들은 불임 원인으로 이 주사를 지목하고 있다.

2. 삿쿠

과거 일본에서는 콘돔을 '삿쿠'라 불렀다. 일본군은 위안부 피해자에 삿쿠를 나눠주고 관리하게 했다. 당시에는 '삿쿠'가 귀해 여러 번 재활용했다는 것이 피해 할머니들 증언이다.

한 번 쓴 '삿쿠'를 빨아서 재활용하는 것도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이었다. 다음은 고 김복선 할머니 증언이다.

"삿쿠는 우리에게 맡겼다. 그런데 삿쿠가 아주 귀했다. 그래서 한번 쓴 삿쿠를 병에 모아 두었다가 시간이 있을 때 냇가에 가서 빨았다. 비누로 씻어서 햇볕에 말린 다음 하얀 가루로 된 소독제를 뿌려 다시 사용했다. 이 일을 할 때가 제일 싫고 죽고 싶었다"

3. 자궁 적출

뉴스1

할머니들은 군인들 중 삿쿠(콘돔)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임신을 하는 일도 있었다. 일본군은 이들이 임신을 하면 낙태를 시킬 뿐 아니라 자궁을 들어내기까지 했다.

이수산 할머니, 고 리경생 할머니 등은 위안부 생활 당시 임신이 돼 자궁을 적출당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리경생 할머니는 16살이었다. 고 김달선 할머니는 자궁 수술을 두 차례 받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4. 인두질

이하 Wikimedia Commons

위안부 피해자들은 인두로 몸을 지지는 고문도 수없이 많이 당했다. 도망을 가다가 일본군에 붙잡히거나 일본군과의 성관계를 거부했을 때 '인두질'을 당했다.

이수산 할머니는 "탈출을 시도했다가 일본군에 적발돼 인두로 온몸을 지지는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약 70년 전에 당한 고문이지만 이수산 할머니 몸에는 여전히 상처가 남아 있다. 고 길갑순 할머니는 "일본군과 잠자리를 거부하다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등을 지지는 고문을 받았다"고 했다.

5. 기모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목욕 가운만 봐도 위안소에서 입었던 기모노가 생각나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위안소에서는 '조선 옷'이 금지였기 때문이다.

고 박영심 할머니는 "위안소에 도착하자 놈들은 우리에게 일본 기모노를 입히고 머리도 일본식으로 잘라버렸으며 나에게 우타마루라는 일본 이름을 달아줬다"고 증언했다. 올해 100세가 된 김복득 할머니는 "위안소가 쉬는 날에도 일본군들에게 위로공연을 펼치기 위해 기모노를 차려입고 외출해 춤과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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