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2017-01-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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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basic income)'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뜨겁다. 기본소득은 일

'기본소득(basic income)'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뜨겁다. 기본소득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재산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일정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 1월 1일부터 '기본소득제' 실험에 들어갔다. 핀란드 사회보장국 (KELA)은 실업자 2000명을 임의로 선정해 향후 2년간 매월 560유로(약 70만 원)를 지급한다. 기본소득보장 대상자로 선정된 핀란드 국민 2000명은 매월 받는 560유로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돈을 어떤 용도로 썼는지 당국에 보고할 필요가 없다. 2년 안에 일자리를 찾아도 기본 소득 전액을 받는다.

핀란드 사회보장국은 기본소득을 받는 대상자들이 어떻게 변할지를 관찰할 계획이다. 기본소득 보장제를 통해 실업자들이 대담하게 다른 일자리를 찾는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면 핀란드 정부는 더 많은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핀란드 국민들은 기본소득 실험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다. 핀란드인 라우리(Lauri·남·27)는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어 기본소득보장 대상자에 포함이 안 되지만 기본소득 실험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라우리는 "기본소득제가 핀란드 복지 시스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위키트리에 말했다. 그는 "미래의 경제 상황이나 근무 환경에 따라 복지 제도도 변화해야 한다"며 "이번 실험은 실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핀란드 복지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줄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 기본소득제 도입, 핀란드가 처음이 아니다.

위키트리 디자이너 김이랑(@goodrang)

핀란드 정부의 '급진적 실험'에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과거에도 여러 국가가 부분적으로 기본 소득 제도를 시행한 적 있다. 캐나다 매니토바주는 1970년대에 주민 약 1300여 가구에게 매년 3800~5800 캐나다 달러(약342~522만 원)를 지급했다. 그 결과 자가주택 보유 비율은 늘었고 빈곤 가구, 범죄율, 병원 입원율은 감소했다.

미국 알래스카주, 나미비아 오미타라 지역, 인도 마디야 프라데시주도 기본소득제 실험을 시행했다. 그 결과 공통적으로 가구 소득이 증가했다. 또, 노동 없이 돈을 주면 사람들이 게을러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와 달리 나미비아에서는 실업률이 60%에서 45%로 하락했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를 출간한 오준호 작가는 이런 결과에 대해 "과거 기본소득 실험 사례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노동 의욕은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본 소득을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거나 심리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본소득이 사람을 게으르게 하고 노동 의지를 꺾는다는 건 뿌리 깊은 선입견"이라고 강조했다.

오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노숙인이나 장기 실업자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일자리를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일자리를 구해도 금전적, 사회적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기본소득이 삶의 조건을 높여줘서 선택지가 넓어지기 때문에 이들도 장기적이고 미래적인 선택을 생각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대선 앞두고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제' 바람

이하 뉴스1

올해 한국 대선에서도 '기본소득제' 도입이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대선 주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박원순 시장은 연령층에 따라 기본소득을 다르게 적용하는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제안했다. '한국형 기본소득제'는 아동수당, 청년수당, 실업부조, 상병수당, 기초연금으로 구성돼 있다. 아동, 청년, 중·장년, 노년이 받을 수 있는 수당을 촘촘하게 설정해둔 게 특징이다.

이재명 시장은 0~29세, 65세 이상, 30~64세의 농어민과 장애인 2800만 명에게 연간 100만 원 씩 주는 기본소득안을 내놓았다. 또,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전 국민에게 연 30만원씩 지급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19일 현재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한다. 문 전 대표는 0~6살 대상 아동수당, 미취업 청년 대상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한 단계는 아니다.

바른정당 유력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도 기본소득의 기본적 취지에 대서는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당장 도입하자는 주장에 대해선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역시 "재정을 감당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외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이 기본소득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드라마 스텝인 신 모(여・25) 씨는 "지금 받고 있는 임금이 핀란드 기본소득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진로를 택할 때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 주저하던 길도 믿는 구석이 생기니 더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이면서 작곡가를 꿈꾸는 성 모(남・24) 씨는 "예술 분야는 특성상 수익창출 기회가 특정 소수에 편중돼 있다. 재능이 특출나거나 운이 좋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배고픈 예술가'가 되거나 진로를 바꾸게 된다"며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생계 걱정 때문에 포기하던 사람들이 좀 더 진취적으로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한국형 기본소득제' 두고 갑론을박

'기본소득제' 도입이 한국에서 가능할지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팽팽하다.

오준호 작가는 "현재 한국에는 조금 적은 액수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장받는 기본소득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정한 집단만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아 '기본소득제'를 이해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본소득은 다른 복지 정책과 달리, 특정 지역-계층-연령대에 속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정 금액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게 특징이다. 부양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직업이 있는지 없는지 등 별도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지 않는다.

한국에선 낯선 제도이기 때문에, 먼저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오 작가의 설명이다.

오 작가는 성남시 청년배당을 예로 들었다. 오 작가는 "성남시에서 기존에 있었던 재정으로 청년배당을 지급하고 나니 주민 인식이 바뀌었다. '기본소득제'를 확장하자는 요구가 생겼다"며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면 자연스럽게 인식이 바뀌고, 이런 인식이 재원 확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금을 걷고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통해 소비가 활성화되고 내수가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 김주명 미디어특보도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언급했다. 김 특보는 위키트리에 "한국 사회 안전망이 취약해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면서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괄적으로 지급하려면 너무 많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은 일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부분 기본소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특보는 "박원순 시장이 제시한 '한국형 기본소득제'는 기초노령연금 등 복지 혜택을 받지 못 하는 시기에 지급을 하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지 않고 법인세 조정, 고소득자 중과세만으로도 재원 조달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국 복지 환경을 고려했을 때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는 너무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절대빈곤 계층에게도 최저생계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 하고 있는데, 거기에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 절대빈곤율(최저생계비보다 소득이 낮은 가구 비율)은 12~13%에 달한다. 부양가족과 얽히며 복지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복지 사각지대'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강 교수 견해는 먼저 현재 존재하는 제도라도 '제대로'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더 걷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김주명 특보는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고 재원이라는 것은 결국 국민이 부담하기 때문에 복지 정책을 도입하기 전에 국민적 합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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