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 보러 온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의견 다르다고 배제해선 안 돼”

2017-02-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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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룡(6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는 서로 달라도 수용하는 태도에서 꽃핀다”고 말했다.

이하 위키트리

지난 1일 유진룡(6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건축 아버지 : 르 코르뷔지에' 전시장을 찾았다. 그는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가 남긴 작품을 보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날 유진룡 장관은 화합과 수용에 대해 말하며 "의견이 다르다고 서로 배제하는 사회가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진룡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 관련 '작심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유진룡 전 장관은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기일 증인으로 출석해 취재진에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문체부 '찍어내기' 인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 사회 비판적 문화예술인을 억압하는 블랙리스트 문건을 처음 봤다고 진술했다. 그는 2014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에서 물러나기 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 불리는 차별과 배제 행위를 멈춰 달라"고 부탁했다고 증언했다.

유진룡 전 장관을 붙잡고 대화를 나눠봤다.

기자 : 전시 어땠습니까.

유진룡 : 좋은 전시였습니다. 르 코르뷔지에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인물은 아니었잖아요. 전시를 기획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의미가 크죠. 르 코르뷔지에는 권위나 지배, 종교를 위한 건축이 아닌 인간 중심 건축을 시도한 인물이잖아요.

기자 :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었나요.

유진룡 : '열린 손(Main ouverte)'입니다. '열린 손'은 평화와 화합, 수용을 말하는 작품이죠. 이는 르 코르뷔지에가 사회를 향해 외친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르 코르뷔지에 '열린 손' (1963) / 르 코르뷔지에 재단

(1950년 르 코르뷔지에는 인도 도시 찬디가르 설계 총괄 고문으로 임명된다. 그는 대법원 청사, 사무국, 주의회 의사당 등을 짓는다. 그는 특히 찬디가르에 커다란 조각 기념물인 '열린 손'을 짓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열린 손'을 통해 평화와 화합을 말하려 했다. 그가 죽고 난 뒤인 1985년,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힘을 모아 '열린 손'을 제작했다.)

'열린 손'을 찬디가르 도시계획 부수적인 상징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열린 손'은 르 코르뷔지에 사상을 보여주는 작품이거든요. 이 사람은 '열린 손'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에요.

이하 위키트리

기자 : 예술가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면 비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도 그랬지요. 유진룡 : 맞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만 봐도, 자유주의자들에겐 '좌파' 소리를 듣고, 좌파들에겐 '파시스트' 소리를 들었거든요. 기자 : 우리나라도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몇 달간 논란이 되는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만 봐도 그렇습니다. 장관님은 파문 한가운데에서 작심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유진룡 : (요즘 행보에 대해) 저는 정치적인 목적은 전혀 없어요. 정치 활동을 하겠다는 의도도 없고요. 저 역시 한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책임지고 있던 사람으로서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것에 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우리가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원칙을 벗어나거든요. 타인을 배제하고, 거짓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피하죠. 이런 식으로 가면 우리 사회, 정말 어려워질 겁니다.문화란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사회가 잘 되고 문화가 꽃피려면 원칙부터 바로 세워야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문화 운동을 새롭게 시작해야 해요. 가장 평범한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고, 타인을 배제하지 말아야 해요.

기자 : 아까 르 코르뷔지에가 추구한 '인간 중심 건축'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장관님께서 이야기한 '문화 운동'도 '인간 중심적 가치'의 연장선일까요.

유진룡 : 그렇습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려는 노력이 중요해요. 문화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가질 수 있는 거니까요. 구분 짓기, 배제, 차별. 이런 것들을 지양해야죠. 의견이 다르다고 배제하면 안 됩니다. 그 외, 재산이나 학벌, 외모나 인종 등으로 서로 구분 지어서도 안 돼요.

기자 : 사실 장관님이 계속 언급하고 계신 블랙리스트 문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구분 짓기, 배제, 차별 산물이죠.

유진룡 : 형식뿐인 문화 예술 교육으로는 가치 있는 사회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결국, 해답은 포용과 수용이거든요.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 사람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코바나컨텐츠에서 주관하는 '열린 손' 캠페인에 참여했다. 유진룡 전 장관은 손 모양을 '열린 손' 조각상처럼 만들어 사진을 찍었다.

코바나컨텐츠

"모든 사람이 정당한 기회와 권리를 가지고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실현돼야 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화합할 수 있지요. 그걸 문화가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 손' 캠페인은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눈을 열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인 것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건축 아버지 : 르 코르뷔지에' 전시는 오는 3월 26일까지 이어진다. 르 코르뷔지에 건축 모형 외 회화, 조각, 태피스트리 등 약 500여 점 작품을 볼 수 있다. 코바나컨텐츠 김세정 큐레이터는 이 전시가 "르 코르뷔지에 작품이 지난해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후 최대 규모로 열리는 전시"라고 강조했다.

전시장 섹션 8 '4평의 기적' 카바농(오두막)을 관람하는 유진룡 전 장관 모습이다.

사진을 양 옆으로 움직여보세요 / 위키트리

* 사진 : 전성규 기자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