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강연을 했다 (영상)

2017-02-10 14:50

add remove print link

Ted정신은 말짱했지만 몸에 힘이 없었다. 너무나도 아팠다. 몸이 반으로 찢어지는 느낌이다

Ted

정신은 말짱했지만 몸에 힘이 없었다. 너무나도 아팠다. 몸이 반으로 찢어지는 느낌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시계를 보며 초를 셌다. 그날 밤, 나는 두 시간이 7200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며칠 동안 다리를 절고, 몇 주 동안 눈물을 흘렸지만, 난 이것이 '성폭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겪은 일은 TV에서 본 '성폭행'과 너무 달랐다. 톰은 흉기를 든 정신병자가 아니라 내 남자친구였다. 지저분한 골목이 아닌 내 침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일이 성폭행임을 인지했을 때는, 톰은 이미 호주로 돌아갔다. 난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 탓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라온 세상에서는 여자가 성폭행당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치마가 너무 짧았거나, 여지를 주는 미소를 보였거나, 술 냄새가 난다고 배웠다. 당시 나는 이 모든 이유에 해당했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생각한 결과, 그 날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였다. 내 치마, 미소, 술 냄새가 아닌 바로 톰이었다. 톰이 자신을 막았어야 했다. (영상 2분 25초~영상 4분 3초)

성폭행 가해자 톰 스트레인져(Tom Stranger)와 피해자 소르디스 엘바(Thordis Elva)가 함께 전한 테드(TED) 강연 내용 일부분이다. 약 20년 전인 지난 1996년, 당시 18살이었던 톰은 16살 소르디스를 성폭행했다.

두 사람 강연에 따르면, 호주 사람인 톰은 아이슬란드로 교환학생을 왔다가 소르디스를 만났다. 두 사람은 함께 크리스마스 무도회에 참석했고, 럼 주를 마셨다. 처음으로 술을 마셔본 소르디스는 토를 했다. 소르디스가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자 톰은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소르디스를 데려갔다. 그 날, 톰은 소르디스를 성폭행했다.

톰은 강연에서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며 "성폭행을 한 것이 아니라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스스로를 자위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성폭행 사건 직후 이별했다.

이후 9년이 지났다. 소르디스는 성폭행 후유증을 앓았다. 톰은 죄책감을 애써 묻어버린 채 일상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9년의 시간을 "진실을 피해 도망다녔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소르디스는 톰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소르디스는 "그 날 톰이 나에게 행사한 폭력과 내 감정을 몽땅 쓰고 나서야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전했다.

놀랍게도 소르디스는 톰에게 답장을 받았다. 톰은 편지에 사과와 후회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8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소르디스는 편지를 통해 "나는 지지 말았어야 할 짐을 내려놨고, 톰은 그의 행동에 대한 죄값을 오롯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실제로 케이프타운에서 직접 만나 일주일동안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톰은 진실된 마음으로 소르디스에게 거듭 사과했고, 소르디스는 비로소 모든 짐을 내려놨다.

두 사람은 서로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책을 썼다. 이제껏 듣지 못한 성폭행 가해자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다. 소르디스는 "성폭행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2명이 있는데, 왜 항상 사회는 피해자에만 초점을 두냐"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의 생각, 행동, 심리 등에 관심을 높여야 성폭행을 비로소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톰은 "가해자가 스스로 '난 성폭행 가해자'라고 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톰은 "그 순간, 소르디스가 지고 있던 부끄러움, 비난 등이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왔다"고 전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성폭행에 대한 심리적 짐은 모두 피해자가 지고 있다"며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피하는 순간, 진실은 멀어져버린다"고 말했다.

소르디스와 톰이 함께 쓴 책 '사우스 오브 포기브니스(South of Forgiveness)는 오는 3월 출간한다.

ted
home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