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베댓러가 말하는 '베댓 비법' (feat. 노재영·박신혜·김성진·안정환)

2017-02-14 12:50

add remove print link

댓글은 키보드로만 다는 게 아니다.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상황판단, 언어유희와 고도의 센스

댓글은 키보드로만 다는 게 아니다.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상황판단, 언어유희와 고도의 센스가 필요하다. 물론 그냥 막 달아도 된다. 그러나 당신이 한 번쯤 '베댓'을 꿈꾼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베댓은 베스트 댓글의 약자다.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베댓이 누워서 떡 먹기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베댓이 수능 1등급 맞기만큼 어렵다. 이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원인은 뭘까.

그 답을 찾으려 필자가 나섰다. 위키트리 페이스북에 수많은 베댓을 아로새긴 이른바 '프로베댓러' 4명과 메신저로 인터뷰했다. 노재영, 박신혜, 김성진, 안정환 씨가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대면 인터뷰를 계획했다. 하지만 각자 사정 때문에 일정 조율이 힘들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노재영 씨는 '짤' 전문가다. 기사에 알맞는 사진을 잘 고른다. 박신혜 씨는 '소신 갑(甲)'이다. 확고한 자기 철학에 따른 댓글이 눈에 띈다. 김성진 씨는 '갓성진'이다. 드립의 신이다. 축구선수 출신 방송인 안정환 씨와 이름이 같은 안정환 씨는 '베댓계 신성'이다. 다른 3명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상승세가 무섭다.

4명은 베댓러가 된 계기와 베댓 비법, 평소 지론 등을 가감 없이 밝혔다. 이들과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 경고 : 읽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갈 수 있습니다 / giphy

- 댓글러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노재영(이하 '노') : 위키트리를 처음 알았던 2014년 겨울부터 하나씩 댓글을 남겼어요. 그러다가 점점 '좋아요'가 많아졌죠.

박신혜(이하 '박') : 일하고 남는 시간에 댓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네요.

김성진(이하 '김') : "하고픈 말을 하자" 이거 때문에 댓글 달기 시작했어요. 지금 역시 그 생각으로 다는 것 같아요.

안정환(이하 '안') : 저는 뭐. 예전에는 가끔씩 달았는데 요새 방학이라 알바 다니고, 운동 다니고 하면서 많이 달았어요. 그런데 제 댓글을 좋아하는 분이 많아지니 계속해서 달게 됐죠.

- 베댓을 위해 연구하는 게 있나요?

: 아뇨. 저는 기사가 나오면 머리속으로 짤과 드립을 그 때 그 때 생각나는대로 작성합니다. 실시간 드립이죠.

: 저는 주로 남 이야기 듣는 직업을 가졌다 보니...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베댓을 위해 따로 연구하는 건 없고요. (혹시 직업이?) 법률사무소에서 일해요. 그런데 변호사는 아닙니다! (웃음) 다만 변호사님 또는 사무장님이 없거나, 간단한 사건일 때는 제가 상담해요.

김 : 뭐, 연구 이런 거 보다는 그냥 뇌에 스치는 단어를 조합해서 내뱉는 게 재미있어요. 바로 생각나는 말을 쓰는 편이에요.

안 : 저도 딱히 연구랄 거는 없고요. 기사 헤드라인에 맞게 글을 쓰는데 범주에서 벗어난 엉뚱한 댓글을 달아요. 아니면 툭툭 던지거나. 제가 잘 아는 얘기면 그에 맞춰 댓글도 달죠. 또 이름(안정환)에 맞게 축구 관련 댓글을 쓰기도 합니다.

외국 키보드 사진이라 한글 키가 없습니다... (죄송) / Pixabay

- 댓글 달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뭐에요?

박 : 기사에 따라 달라요, 사람 사는 이야기나, 가슴 아픈 기사를 볼 때는 '진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남의 아픔, 삶이 담긴 기사에 웃음이나 조롱을 던지는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요.

노 : 최대한 기사에 맞는 드립과 사진을 올리려고 해요. 싸움날 것 같은 기사에는 애초 댓글을 안 다는 편이에요. 워낙 전투민족이 많잖아요(웃음).

안 : 예전엔 재미가 최고였죠. 그런데도 재미는 없었고.. 요새는 공감 위주로 댓글을 써요. 꾸준함도 중요해요. 팔로워가 5000명 넘게 생긴 것도 이런 꾸준함 때문이 아닐까요.

김 : 기사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네요.

- 베댓이 되려면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요?

노 : 스피드, 드립, 기사와의 적절함.

안 : 타이밍, 네임 밸류, 스피드.

김 : 확실히 빠른 거 '미만잡'인 듯합니다.

박 : 타이밍이 가장 중요해요. 또 '이름빨'이라는 게 있어서, 읽지도 않고 좋아요 누르는 분들 덕도 무시 못하죠.

- 만약 타이밍이 늦었다면 드립이 떠올라도 안 달아요?

노 : 네. 달아도 소용 없으니까요. 이미 베댓이 있어서 해봤자 (베댓이) 안 될 걸 알아요.

박 : 저는 달아요. 그냥 내가 하고픈 말을 하면서 속풀이 하는 거라서요.

안 : 정말 이 기사와 관련해서 '팩트만 말할 수 있다' 싶으면 달아요.

김 : 저도 그냥 쓰고 싶은 건 써요.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난 기사에는 진짜 신이 귀에다가 속삭여주는 수준의 고퀄 드립 아닌 이상 베댓은 안 노려요.

신님, 나를 보고 있다면 베댓을 알려줘 / Wikipedia

- '노또베(노재영 또 베댓)', '신또베', '성또베', '안또베' 이런 말 들으면 어때요?

노 : 좋죠 뭐, 그만큼 관심 가져주는 것에 감사하고요.

안 : 관심 가져 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대댓글로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요즘에는 '안또베 응원합니다'라는 짤도 생겼어요(웃음).

박 : 저를 알아 주고, 띄워 주는 단어니 기분 좋죠. 하지만 관심이 커지면 안티도, 괜한 잡음도 생겨요.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김 : 응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죠. 당연히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 그런데 '따봉충'이라는 비판도 있어요.

노 : 처음에는 기분 나빴어요. 내가 취미로 하는 건데... 지금은 그러려니 해요. 오히려 (많은 분이) 더 좋아해주세요.

안 : 따가운 눈총 많이 받죠. 예전에도 '노잼'이었지만, 요새는 제가 봐도 그래서 (비판을) 다 귀담아 들어요. 이런 걸 극복하기 위해서 옛날 생각을 많이 해요. 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됐지? 어떤 드립을 쳤을 때 재밌었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거죠.

박 : '따봉질' 원데이, 투데이도 아닌데요(웃음). 이제는 어느 정도 무심해요. 그렇지만 제가 따봉을 구걸한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나?'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김 : 그런 거 신경 쓰면 페북에서는 아무 것도 못해요. (비판이 나오면) 물 흐르듯이 '아 진짜?'하고 넘겨요. 만약 제 댓글로 분쟁이 나면 재밌는 거에는 껴들어서 놀죠. 그런데 재미도 없고, 진지한 분위기까지 조성되면 그냥 원래 댓글을 삭제해버려요.

사는 게 무엇인지... 따봉은 무엇인지... / 이하 Pixabay

- 라이벌 의식 드는 베댓러가 있나요?

안 : 라이벌은 아닌데, 김성진 씨요. 솔직히 이 분 드립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제 드립은 그냥 툭툭 던지는 드립이라면, 성진 씨 드립은 뼛속까지 내려간다고나 할까요? 커피로 치자면 TOP죠.

박 : 저는 제 생각 위주 댓글을 달아서 다른 베댓러에게 라이벌 의식은 없어요. 그런데 가끔 베댓러들끼리 경쟁을 부추기거나 "화력 떨어졌다", "감 떨어졌네" 이런 댓글 다는 분을 보면 마음이 상해요.

노 : 라이벌은 없구요. 취미로 시작해서 지금도 취미에요. 오히려 매일 위키트리에 있는 댓글러들을 보니 정겹습니다. 그래도 신혜 님처럼 "노또베 화력 왜 이럼" 같은 댓글을 보면 상처가...

안 : 맞아요. 베댓 장인분들 뵈면 괜히 정겹고 그래요.

박 : 가끔은 '이분 오늘 늦네' 할 때도 있어요. 그러다가 오랫동안 안 보이면 '계정 정지네'라고 생각하죠. (웃음)

김 :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스타일이라 목표 의식이 없어요. 라이벌도 없죠.

- 댓글로 맺은 '랜선'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적도 있을 것 같아요.

박 : 저는 4명 정도 있어요. 기념일에 선물도 주고 받고 그래요. 건강 챙기라고 양배추즙이랑 홍삼즙을 보내 주기도 해요. 남녀 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요. 제가 강아지, 고양이 보호 활동을 하다 보니 관심사가 같은 분과 더 잘 이어지는 것 같아요.

노 : 저도 좋은 인연 많이 생겼어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세차장에서 세차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분이 다가와서 "노재영 씨죠?"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네"라고 대답하니 그 분이 "댓글 잘 보고 있어요. 화이팅!" 이러고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세차하고 도망나왔어요.

김 : 저는 없습니다.

안 : 저는 (사진과 실물이 달라) 아무도 못 알아볼듯...

꺼진 세차장도 다시 보자

- 그러고 보니 정환 씨는 요즘 '노잼'이라는 비판을 자주...

안 : 처음에 그런 얘기 들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죠. 그런데 말씀 드렸듯이 요새는 제가 봐도 노잼이라 개선 중입니다.

- 재영 씨는 거의 모든 기사마다 댓글을... (존경)

노 : 사업하다 보니 휴대전화 보는 시간이 많아요. 대기 시간에 틈틈이 합니다. 특히 페이스북 새로 고침할 때마다 새 기사가 나와서 (댓글을 안 달면) 금단 현상이 옵니다.

- 성진 씨는 별명이 많아요. 킹성진, 갓성진, 킹성진 당신은 프리드리히 니체, 킹성진 당신은 팔보채 등등...

김 : (웃음) 별명이라고 할 게 있나요. '킹성진'이 가장 인상 깊어요. 제일 자주 보여서요.

- 신혜 씨는 소신, 개념 발언의 아이콘입니다.

박 : 제가 그거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데, 잠시만요.

(신혜 씨는 15분 정도 뒤에 이런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

제가 보기에 요즘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선동' 아닌가 싶어요. 사실을 부풀리고, 자극적 이야기로 사람들 반응을 끌어내 눈을 멀게 하는 거죠. 그리고 그에 반대 되는 이야기를 하면 뭇매를 맞고요.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밝히는 일이 힘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군 가산점을 예로 들면, 이 문제는 '진정한 남녀 평등'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인식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주제가 아닌가 싶어요.

남성의 군복무는 여성에겐 주어지지 않는, 어쩌면 성차별적 희생이죠. 그런데 군복무자들을 위해 공무원 시험과 같은 좁은 영역에서의 작은 혜택마저도 반대한다는 말이죠. 이거는 '진정한 남녀평등'에 반대되는 주장이 아닐까요?

정말 남녀평등을 원한다면 여성 또한 군복무를 해야 마땅하죠. 그게 비용, 인력 문제로 어렵다면 군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줘야 진짜 평등아닌가요?

모두 공평하고, 평등하기를 원하면요. 내가 당하는 차별적 요소만 주장할 게 아니라, 남들이 진 현실도 직시하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차별 대우에는 부당함을 외치고, 남들 차별대우는 외면하는데 누가 그들 말에 귀를 기울일까요.

뭔가 숙연... / Flickr

4명은 프로베댓러답게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대답했다. 준비한 질문이 다 떨어져 '큰일 났다' 싶을 때였다. 시계를 보니 1시간 30분이 지나있었다. 체감 시간이 짧아 인터뷰가 너무 빨리 끝난 줄 알았다.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는지 물었다.

박 : 어렸을 적 친구를 찾고 싶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민을 간 건지. 8년 동안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졸업한 학교까지는 알아냈지만, 그 후 소식을 전혀 알 수가 없네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원당동에 살았던 1990년생 정승백이란 친구를 찾습니다. 일산정보고를 졸업한 걸로 알고 있어요. 승백아! 나 신혜야! 혹시라도 기억난다면, 이걸 본다면! 꼭 연락줘! 보고싶다!

노 : 네,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자랑거리 하나가 늘었네요(웃음).

안 : 가끔은 이유 없는 베댓이 죄송해요. 조금 더 재밌고, 공감이 느껴지는 댓글을 위해 노력할게요! 다만, 댓글 다는 거까지 뭐라고 하시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home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