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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시각 장애인 안내견 칼라/이하 위키트리
 

#1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시에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쳤다.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눈이 올지는 몰랐다.

이날 성남시 분당구 서현 역 근처에서, 안내견 '느티'를 교육 중인 17년 차 베테랑 훈련사 이진용(37) 씨를 만났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품종인 2살 '느티'는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이진용 씨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씨는 삼성화재가 에버랜드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소속 훈련사다. 

"기본적으로 안내견은 야외를 걸으며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날씨가 안 좋으면 지하철역 등 실내로 가야 하죠"

진용 씨가 이날 같은 악천후에 겪는 당혹스러움은 추위나 더위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날씨가 안 좋을 때 안내견과 함께 걷다보면, 몇몇 분들이 차가운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런 날씨인데도 꼭 개를 훈련해야겠어?'라는 눈빛이죠"

진용 씨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개를 사랑하시는 분들이에요. 그냥 개가 싫다고 저한테 소리 지르시는 분들에 비하면 오히려 감사하죠. 안내견을 생각하는 선의에서 비롯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훈련사 다리 사이에 듬직하게 엎드려 있는 느티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현 역 안으로 들어왔다. 진용 씨 볼은 이미 빨갛게 얼어있었다. 안내견 최종 테스트를 통과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티는 진용 씨 다리 사이에 듬직하게 엎드렸다.

벤치에 앉아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 신사가 다가왔다. 한참을 그윽하게 느티를 바라보던 노 신사는 5분이 넘어서야 "이런 아이는 어떻게 키울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훈련사는 능숙하게 안내견 위탁 과정을 설명했다. 자주 있는 일인듯했다. 설명을 다 듣고서야 노신사는 "한 번 만져봐야 되겠습니까?"라고 묻고 느티 머리를 가볍게 만지곤 떠났다.

진용 씨는 이런 상황은 매우 바람직한 경우라고 했다. "안내견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한 분에게나마 알려드린 거니까 성공한 셈이죠. 편견이 조금 사라졌을 테니까요"

안내견 훈련을 직업으로 삼는 진용 씨가 꼽는 안내견에 대한 가장 아픈 편견은 무엇일까.

"안내견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불쌍한' 동물이고, 사람은 그 동물을 이용하는 '이기적' 존재다"라는 인식이 우선 사라져야 합니다"

동의하기 어려웠다. 안내견은 분명 인간을 위해 희생한다. 왜 아니겠는가? 다만 그 얘기를 공공연히 하지 않을 뿐이지.

"자, 그럼 나갈까요?" 이씨와 느티, 기자는 서현역 근처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씨는 자신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직접 보여주겠다고 했다.

'딸각!' 훈련사는 '클리커'라는 도구를 가장 먼저 보여줬다.

안내견을 칭찬하기 위해 쓰이는 도구 '클리커'
 

"이게 느티를 칭찬할 때 쓰는 도구입니다. 혼낼 때 쓰는 도구는 없어요. 혼내지 않으니까요. '혼내거나 혹은 칭찬하거나'가 아니라 '실수를 모른척하거나 혹은 칭찬하거나'가 안내견 훈련의 기본입니다"

반복 훈련으로 느티는 이 '딸깍' 소리를 칭찬으로 여긴다고 했다. 

"느티가 장애물을 피하는 걸 보여드릴게요." 

훈련사가 공원 안에 있는 한 건물벽을 향해 계속 걷자, 느티는 제 자리에 우뚝 섰다가 길이 있는 옆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침착하게 훈련사를 이끌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딸깍'.

"잘했다고 칭찬한 겁니다. 느티는 사랑하는 주인에게 칭찬받아 즐거워하고 있을 테고요. 이걸 안내견의 '희생'으로 볼 수 있을까요? 집에서 반려견에게 '발!'해서 주면 잘했다고 간식 주시잖아요. 그런 행동을 보며 '강아지가 희생한다' 여기지 않는 것처럼 안내견 교육도 같은 맥락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느티와 훈련사
 

'훈련'은 사람의 시각이고 정작 안내견들은 이 과정을 '놀이'로 인식한다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내견이 희생하는 게 아니다'라는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어디선가 봤던, '시각 장애인 옆에 힘없이 엎드려 있는 안내견' 모습이 머리에 스쳤다. 개라면 응당 제멋대로 펄쩍펄쩍 뛰고 싶지 않을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못 하고 엎드려만 있는 안내견을 두고 희생하는 게 아니라니.

"네, 무슨 말씀인 줄 압니다. 생각이 완전히 같을 순 없겠죠. 하지만 제 얘기를 한 번 들어봐 주세요"

가까운 도넛 전문점에 들어갔다. 가게 문에는 안내견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는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왠지 반가웠다.

도너츠 가게에 붙어 있는 안내견 허용 스티커
 

"우선 모든 예비 안내견이 최종 안내견 테스트에 통과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최종 합격률은 최대 20~30% 정도입니다. 열 마리 중에 많아야 세 마리 정도만 안내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죠. 시각장애인과 지내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되는 예비 안내견에게는 아예 그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예비 안내견이 실제 안내견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쉽게 예를 들어볼게요, 느티가 얌전히 발밑에 엎드려 있죠.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예비 안내견들이 이런 상황을 못 참아해요. 사람에게 성격이 있듯, 개들도 모두 성격이 다르거든요. 우리는 그 성격에 맞는 안내견들을 선발해 적합한 교육을 할 뿐이에요. 안 되는 안내견들에게 억지로 싫어하는 것을 하게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느티는 이진용 훈련사를 물끄럼히 쳐다봤다


안내견 학교 측에 따르면 많은 시각장애인이 "개를 고생시킨다"는 편견 때문에 속상해한다고 했다. "아이고, 개 힘들겠다"라는 말을 계속 듣다 보니 "개가 대견하다"는 말에도 왠지 주눅이 든다고 했다.

"비장애인분들이 안내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적극적 호감 또는 동정이 아닙니다. 그냥 안내견을 일상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굳이 모른 척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개가 불쌍하다거나, 고생한다는 말은 삼가주세요. 안내견은 불쌍한 개가 아닙니다. 그냥 여느 개처럼 주인을 아주 좋아하는 개 한 마리일 뿐이에요"

"눈을 꼭 감고" 안내견 체험하는 기자
 

혹시 일반 시민들이 보다 폭넓은 안내견 보급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안내견 학교 측은 다소 생소한 '퍼피워킹(Puppy Walking)'이라는 용어를 꺼냈다. 민간이 안내견 보급에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퍼피워킹이란 태어난 지 7주 가량된 예비 안내견을 일반 가정에 약 1년 동안 위탁하는 과정을 말한다.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 강아지가 인간과 함께 걷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워킹(Walking)이라는 단어를 쓴다. 쉽게 말해 일반 가정이 1년 동안 예비 안내견을 키우며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기본적 에티켓을 교육하는 과정이다. 

안내견 학교 측에 따르면 현재 운영되는 퍼피워킹 가정은 마흔 한 군데다. 약 스무 가정 정도가 퍼피 워킹을 시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안내견 학교에서 태어나는 새끼 강아지가 평소보다 많을 수 있기 때문에 대기 가정이 약 마흔 군데 정도 되길 희망한다고 안내견 학교 측은 말했다.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측이 백신, 구충제, 사료, 동물병원 진료, 각종 용품 등 퍼피워킹 기간 동안 발생하는 비용 전부와 사후 관리 등 각종 서비스를 지원한다.


#2

예비 안내견 칼라와 유경선(왼쪽) 씨 가족. 첫째 아들 한시형(오른쪽)씨와 태형 씨(가운데) 
 

같은 날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한 퍼피워킹 위탁 가정에 방문했다.

문을 열자마자 황금색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반기며 손을 마구 핥아댔다. 

이 발랄한 강아지의 이름은 '칼라'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칼라를 데려 온 유경선(46) 씨는 '우리 막내딸'이라고 소개했다.

"아저씨 그거 뭐예요?"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칼라
 

개를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서워하는 쪽이었다는 경선 씨는 "처음엔 아들들이 졸라서 칼라를 데려왔지만 이제 우리 집 막내딸이 됐어요"라고 덧붙였다.

"막내딸 처럼 예쁜 칼라를 곧 떠나보내셔야 하는데 안 섭섭하세요?"라는 질문에 송경선 씨 아들인 한시형(23)·태형(20) 형제는 동시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태형 씨는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우선 칼라는 사회적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 잠깐 우리 집에 온 거잖아요. 그래서 꼭 안내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안내견 테스트에 떨어져서 다시 우리에게 왔으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안내견 최종 테스트에 떨어진 예비 안내견들은 이후 일반 가정에 무상으로 입양되는데, 퍼피워킹 위탁 가정에 우선권이 있다.
   
"잠시 30분만 떨어져 있다가 와도 칼라는 '엉덩이가 부서져라' 꼬리를 흔들며 반겨줘요. 꼬리에 맞으면 아플 정도라니까요. 하하" 시형 씨가 자신을 자랑하는 중인 줄도 모르고 칼라는 집안 식구들에게 번갈아가며 애교를 부렸다. 껑충껑충 뛰어 놀다가 곧 지쳐 잠이 들었다.

뛰어 놀다 잠든 칼라
 

조용히 잠든 칼라를 보자 처음 했던 질문을 다시 하고 싶어졌다. "솔직히, 저 같으면 퍼피워킹 못 할 거 같아요. 정들었는데 곧 떠나 보내야 되잖아요. 퍼피워킹 시작한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경선 씨는 뜻밖에 담담하고 단호하게 질문을 받았다. "아니요. 저는 후회 안 해요. 오히려 추천해요. 가는 데마다 퍼피워킹이 뭔지 설명하고 다녀요" 경선 씨는 퍼피워킹 위탁은 인간적인 '서운함'을 넘어선 또 다른 가치가 있다고 했다. 

"본인이 반려견을 키우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덜컥 입양부터 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본인이 개를 키우려고 마음먹었다면 퍼피워킹에 도전해 보세요. 희망자 가정이 개가 지내기에 적합한 환경인지 안내견 학교가 깐깐하게 체크하거든요. "  

경선 씨가 퍼피워킹을 추천하는 이유는 꽤 현실적이었다. 보람이나, 자기희생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실질적인 장점이 있다고 했다.

산책 중인 칼라
 

"안내견 학교 직원분들과 단체 대화방이 있어요. 칼라를 키우면서 궁금하고 어려운 거 모두 실시간으로 물어봐요. 쉽게 말해 헬스클럽 개인 트레이너처럼 '반려견 훈련 개인 트레이너'가 있는 거예요. 게다가 강아지가 조금만 아파도 바로 병원으로 가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고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안내견은 교육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수명이 짧다'. '개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시형 씨가 약간 분하다는 듯 입을 떼려 할 때마침 잠에서 깨어난 칼라가 거실 바닥에 갑자기 '쉬'를 했다. 이를 본 동생 태형 씨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소변을 치웠다. 

"칼라는 아직 강아지라서 가끔 실수를 해요. 그게 뭐 어때서요? 아무도 혼내지 않아요. 만약 그분들 생각대로 안내견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럽다면, 우리가 칼라에게 그런 고통을 주는 존재들이라는 건가요? 칼라를 불쌍한 개라고 생각하는 것도 싫고 우리 가족을 그런 존재로 여긴다면 그것도 씁쓸해요"
 
경선 씨 가족 역시 안내견과의 동행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사회가 조금 서운할 때가 있다고 했다. 

"칼라를 쫓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분들이 계세요. 진짜 화나요. 비장애인은 항의라도 할 수 있겠지만 시각장애인분들은 이런 일 당하면 제대로 대응도 못 할 걸요. 그냥 일반 개 대하듯 해주세요. 이런 어려움만 없어도 더 많은 가정이 퍼피워킹을 신청하고, 그럼 더 많은 시각 장애인분들이 안내견과 생활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안내견 공부 중입니다"
 

실제 5년 동안 안내견 '온유'와 생활하고 있는 시각 장애인 최수연(32) 씨는 전화통화에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수연 씨는 개와 교감을 나누는 각자의 방식을 인정해달라고 했다. 

"안내견이 '안타깝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어떤 마음에서 하시는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저는 오히려 되묻고 싶더라고요. 24시간 동안 주인과 함께 있는 안내견이 행복한지, 집에서 오매불망 주인 오기만을 기다리는 반려견이 행복한지요. 이분법으로 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너무 억울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왜 우리는 행복한데 아무 근거도 없이 온유를 안타까운 개로, 저를 이기적인 주인으로 여기는 걸까요?"


#3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가 안내견 무상 보급 사업을 시작한 지 24년이 됐다. 1993년부터 193마리를 배출했다. 민간 단체인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도 꾸준히 안내견을 보급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사회 각층의 노력으로 안내견과 함께라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이 죄인처럼 거리를 걸어야 했던 '아픈' 시기가 조금씩 지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안내견을 함부로 만져선 안 된다"는 에티켓을 알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예전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쾌거'다.

하지만 "이제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길거리를 걸으며 누군가 다가와 "넌 이기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군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밀고 멋대로 사진을 찍을까봐 걱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안내견과 함께 하는 이들은 조금씩이나마 이런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이 원하는 '일상'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상식적인 하루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만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다. 

키워드 안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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