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화 인터뷰 “여자 적 여자라는 말 동의 안해... 여자에게 힘이 되고 싶다”

2017-02-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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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곽현화(37) 씨가 부당한 일을 겪고 힘들어하는 여자들과 '연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배우 곽현화 씨 / 이하 위키트리

곽현화(37) 씨는 영화 '전망 좋은 집' 노출 장면이 본인 동의 없이 유포된 사건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 곽 씨는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여자 연예인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2012년 5월 곽현화 씨는 영화 '전망 좋은 집' 주연을 맡았다. 당시 감독 이수성(43) 씨는 곽현화 씨에게 "(극 흐름으로는) 가슴 노출 장면이 필요하다"며 "일단 촬영하고 편집 때 빼달라고 하면 빼주겠다"고 약속했다. 곽현화 씨는 그 말을 믿고 노출 장면을 촬영했고, 편집 때 해당 장면을 뺄 것을 요구했다. 당시 이수성 씨는 곽현화 씨 요구대로 노출 장면을 빼고 영화를 개봉했다.

2014년 이수성 씨는 '감독판'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노출 장면이 들어간 영화 파일을 인터넷에 유통했다. 곽현화 씨는 자신의 가슴 노출 장면이 인터넷에 올라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접했다. 곽현화 씨는 이수성 씨를 고소했다. 지난달 11일 서울중앙지법은 이수성 씨에게 1심 무죄를 선고했다. 곽현화 씨는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곽현화 씨를 만났다. 곽현화 씨는 분명하고 담담한 어조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연예계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사람들 쪽지를 많이 받았어요.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연예계 구조상, 여자 연예인은 자기가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 사실을 말하기 힘들거든요. 괜히 이야기했다가 자기 이미지가 잘못되진 않을지, 앞으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요. 우리는 이름이 알려진 존재잖아요. 이름과 얼굴이 다 나오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랬어요. 처음엔 내 이름이 'K양' 등 익명으로 나왔으면 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이런 문제에 당당하게 맞설 거예요. "이 부분은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다" 같은 이야기를 할 거예요. 지난번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포럼에서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지난달 16일 곽현화 씨는 영화 매체 씨네 21과 여성단체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 주관하는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포럼에 참석했다. 곽현화 씨는 영화 '전망 좋은 집' 노출 장면 유포 건에 대해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며 "내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나오는 게 싫지만, 혹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돕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곽현화 씨는 "다른 영화에선 노출했는데 왜 이 영화는 안 돼?"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고 밝혔다. 곽현화 씨는 "한 번 노출 장면을 찍은 배우는 어느 장면이라도 모두 노출해야 한다는 논리냐"라고 주장했다.

곽현화 씨 발언은 많은 지지를 받았다. 포럼 참석자 영화인 이제연(29) 씨는 "여자 배우가 평소 '관능적인 이미지'로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노출 장면을 강제할 수 있는가"라며 "여자 배우를 공공재처럼 여기는 모든 태도가 성폭력"이라고 말했다.

곽현화 씨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 그룹 '찍는 페미'에도 가입했다. '찍는 페미'는 지난해 10월 영화계 여자 배우, 여자 스태프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이 모여 만든 그룹이다. 현재 이 그룹 멤버는 2000여 명을 넘었다.

'찍는 페미'라는 그룹이 있어요. 거기 여자 배우, 여자 스태프가 영화를 촬영하며 겪은 폭력이나 성희롱 등에 대한 억울한 이야기들이 올라오거든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영화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말이 돼?" 싶은 일이 많아요. 근데 그게 진짜거든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지난해 개봉한 백승화(34) 감독 '걷기왕' 같은 경우, 영화 촬영 전 성희롱 예방 교육을 했다고 해요. (영화인들이) 의무적으로 이런 시도에 참여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해 10월 한겨레신문은 영화 '걷기왕' 측이 촬영 전 스태프들을 상대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걷기왕' 시나리오 작가이자 스크립터인 남순아 작가는 "어떻게 하면 덜 상처받고 일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는 영화판에서 드문 일이다. 대부분은 이 과정을 생략한 채로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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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 곽현화 씨는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여자 연예인으로서 겪는 부당한 일에 저항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곽현화 씨는 일부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놀라운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영화 촬영 현장에서 여자 배우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럼 많은 남자분이 공감해요. 다들 "그렇지, 고쳐져야 해"라고 대답해요.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잖아요? 그럼 그 단어를 쓴 것만으로도 반감을 품더라고요. 많은 남자분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를 (잘 모르거나) 경계하는 듯해요.

페미니즘은 그냥 인권 얘기거든요. 인권은 약자 이야기를 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여자는 (아직) 사회적 약자고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죠.

잘 생각해보면 페미니즘은 결국 남자도 행복해지는 이론이거든요.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내면, 마치 이게 남자 밥그릇을 빼앗거나 피해를 주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건 보편 인권 이야기입니다.

곽현화 씨는 몇 년 사이 자기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제가 개그맨 출신이잖아요. 예전에 우리(동료)끼리는 성적으로 인신공격이 될 만한 이야기도 많이 참고 웃으며 넘겼거든요.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더는 그런 말에 웃음이 나오지 않아요. 그게 제가 바뀐 부분이에요.

방송에서 여자 연예인에게 성적인 농담 가볍게 던지잖아요. 예전에 저는 그런 말을 들어도 '하하'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내가 '하하' 웃으며 반응하는 게 그들에게는 동의로 전달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이건 아니다 싶은 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려고요.

동료 여자 연예인은 곽현화 씨와 같은 문제의식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지금 연예계는) 여자 연예인이 그런 '사고'를 하기가 힘든 구조입니다. 일단 우리가 소비되는 방식이 그렇지 않죠. 여자는 '예쁘다, 못생겼다, 꿀벅지, 가슴' 등 외모나 성적 매력, 신체 부위로 불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경력이나 연기는 부차적인 요소가 돼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여자 연예인은 '꽃,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이 되는 경우가 많죠. 아니면 '엄마, 요부, 성녀'처럼 단일화된 캐릭터가 됩니다. 그 안에서 뭔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 예민하고 시끄러운 여자로 받아들여지거든요.

저는 "여자의 적은 여자다" 이런 말 너무 싫거든요. 절대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데 방송국이 자꾸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조장해요. 여자 연예인들을 쭉 모아놓고 성적 매력으로 대결을 시키는 거죠. 하지만 여자 적은 여자가 아니거든요. 우리는 서로 힘이 될 수 있거든요.

곽현화 씨는 아직 싸움을 끝내지 않은 상태다. 곽현화 씨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곽현화 씨는 "이 직업은 나에게 평생직장"이라며 "이 일을 정말 많이 원하고 사랑했다"고 말했다.

곽현화 씨는 "힘들기도 하지만 지금 경험이 앞으로 나에게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또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여자 연예인에게 힘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사진 = 전성규 기자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