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절할 때까지 맞았다” 폭력으로 얼룩진 중국 조기 유학

2017-02-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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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山東)성 한 사립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신선민(가명・17) 양은 지난해 12월

중국 산둥(山東)성 한 사립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신선민(가명・17) 양은 지난해 12월 학교 기숙사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다. 신 양을 때린 건 다름 아닌 같은 학교 한국 학생들이다.

신 양은 "언니들이 방에 들어오더니 물건을 던지고 뺨을 때렸다"면서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학교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인사를 안 했으니 맞아야 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못 봤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듣지도 않고 계속 때렸다. 평소에도 지나갈 때 욕을 하거나 어깨를 치고 가며 괴롭혔다"고 덧붙였다.

학교에는 학생들을 관리하는 한국인 교사가 있지만 신선민 양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 했다. 가해자들과 기숙사에서 24시간 함께 생활하다보니 언제든 보복을 당할 수 있을 거란 두려움 때문이다. 신 양은 "맞은 뒤 얼마 안 돼서 방학을 했다. 한국에 들어와있는 동안 잊고 지냈는데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두렵다"고 토로했다.

◇ 10년 넘게 대물림되고 있는 '악습'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위키백과

최근 중국 저장(浙江)성 한 국제학교에서 한국인 남학생이 같은 학교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두 시간 동안 폭행당해 갈비뼈가 부러진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샀다. 하지만 중국 유학 경험자들은 입을 모아 "보도를 보고 놀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그만큼 폭력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대부분 관리 교사 눈을 피할 수 있는 기숙사에서 벌어진다. 나이 많은 학생들이 나이 어린 학생을 괴롭히고, 이런 악습이 대물림되는 양상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 저장성에 위치한 한 사립학교에 다녔던 최 모(남・26) 씨는 "18~19살 되는 선배들이 패거리를 지어 후배들을 괴롭히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유학생 간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마 짐작조차 못할 것"이라며 "맞아서 실신한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최 씨는 "당시 17살이었는데 18살 형이 기숙사 방으로 불렀다. 영문도 모르고 맞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기절했다"고 고백했다. 최 씨는 "목격자도 많았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 했고 아무도 학교에 알리지 못 했다"며 "모두가 보복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칭다오(靑島)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정 모 씨(남・25)는 중국 유학 생활에 대해 "군 생활 그 자체"라고 비유했다. 정 씨는 "고작 10대 학생들인데 위계질서가 정말 엄격했다"며 "해병대에서 복무했는데 유학 시절 떠올리니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정 씨는 "칭다오에는 심지어 '그린소주파'라는 파벌까지 있었다. '그린소주파'는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고 다녔는데 조폭처럼 1기, 2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방관하는 학교, 은폐하는 유학원

중국 베이징 한인 거주 지역 우다코 / Wikimedia Commons

중국에서 유학하는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따돌림, 폭력, 성폭력 문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유학원도 이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한 유학원 관계자는 "업계 종사자들에게 한국 학생 간 집단 폭행, 따돌림 문제에 대해 정말 많이 듣는다"며 "베이징에서는 따돌림을 당한 학생이 자살한 사건도 몇 차례 있었다. 업계에선 유명한 이야기"라고 증언했다.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여러 유학원들이 커미션을 많이 주는 학교를 추천해주고는 학생이 입학하면 이후에는 방치한다. 시스템이 이렇다보니 유학원은 유학생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관리 교사가 상주하고 있는 학교라고 해도 폭력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가 없다. 해당 관계자는 "기숙 학교에서는 학생들끼리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교사가 기숙사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리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관리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 폭력을 당했던 최 씨 역시 중국 학교와 유학원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 씨는 "중국 학교는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유학원에 맡긴다. 유학원은 불미스러운 사고가 알려질까 은폐하기 바쁘다"고 설명했다. 또, "유학원은 보통 쌍방 과실이라며 사건을 덮는다. 타지에 홀로 나가 있는 어린 학생들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도 모르니 그냥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모든 학교가 그런 건 아니다.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김 모(16)군은 "우리 학교는 그런 일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아는 형은 학교 선배들이 밤중에 불러 나갔다가 명치를 엄청 맞았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운이 좋아야 학교 폭력이 심한 학교를 피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김 군은 "비싼 돈 내고 유학을 가는 건데 운이 좋아야 폭력을 피할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법적 규제 받고 있지 않은 유학원들

중국 학교 사진 / Wikimedia Commons

현재 유학원은 정부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지 않다. 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유학원을 열 수 있으며 폭력 사건 같은 문제가 생겨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3년 12월 유학원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담은 '유학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이하 유학원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법안은 여전히 통과되지 못 한 상태다.

우상호 의원은 '유학원법'에 대해 위키트리에 "19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인데 관련 상임위에서 통과가 안돼 19대 국회 임기 만료 때 폐기됐다. 이번 20대 국회와서 제출하려고 준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 의원은 "유학원법은 유학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을 규제하는 내용이라 유학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로 유학원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학원도 손을 놓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폭력과 따돌림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자 일부 유학원에서는 면접 전형을 도입하기도 했다. 한 사립학교 관계자는 "과거 우리 학교도 이런 문제가 많이 발생해서 면접 전형을 도입했다. 학교에 입학시키기 전에 학부모와 학생 면접을 봐서 인성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학생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면접 전형만으로 모든 문제를 예방할 수 없다. 이 학교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도 도입해 조금만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퇴학을 시키고 있다. 지난 학기에 퇴학한 학생만 5명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 학교에서 퇴학시킨 학생은 다른 학교에 가서도 문제를 일으키더라"라며 "퇴학당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폭행해 얼마 전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책 '성공하는 중국 유학'을 쓴 북경공업대 김준봉 건축도시공학부 교수는 "미성년자인 청소년이 부모와 떨어져 해외에 유학을 가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학교 폭력 문제와 관련해 중국 경찰 행정 방침도 예방보다는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 학생들 간 폭력 문제는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준봉 교수는 "미성년자는 무조건 부모가 같이 가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중국을 피해 다른 선진국으로 보낼 것을 권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꼭 중국으로 가야 한다면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운영하는 국제 학교나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한국국제학교가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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