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삐쭈, '병맛 더빙'으로 최고 인기 유튜버가 되다

2017-03-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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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삐쭈가 꼽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성수기 펜션' /이하 장삐쭈 유튜브한 커플이 하룻

장삐쭈가 꼽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성수기 펜션' /이하 장삐쭈 유튜브

한 커플이 하룻밤 묵기 위해 펜션을 찾는다. 펜션 주인들은 돈 벌 기회를 잡았다는 듯 '호구가 왔다!'를 외친다. 커플도 만만찮다. 남자친구는 "하룻밤에 삼만 원, 안 되면 다른 데로 갈게요"라며 거래를 시작한다. 이어지는 팽팽한 신경전. 펜션 주인은 "아따~ 우리 남자친구가 거시기 터프가이구마이... 십만 원 이하는 안 된다"며 맞불을 놓는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자, 여자친구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여자는 "남자친구의 스승님이 '성수기 때 펜션에 3만 원 이상을 내면 호구'라는 유언을 남기셨어요"라며 갑자기 눈물을 쏟는다.

유튜버 장삐쭈(27)가 자신이 만든 영상 중 가장 좋아한다고 꼽은 '성수기 펜션' 편의 간략한 내용이다.

고전 만화에 입혀진 원래 음성을 없앤 뒤 그 위에 새로운 상황을 연출해 새 음성을 더빙하는 게 장삐쭈의 주 콘텐츠다. 내용이 워낙 황당해 '병맛 더빙'이라 불린다. '장삐쭈'는 유튜브 닉네임이다.

장삐쭈는 지난해 6월부터 9개월 동안 더빙 영상 77개를 유튜브에 올렸다. 누적 조회수가 약 5400만 회에 달하고, 구독자는 26만 5000명을 넘어섰다. '유튜브 좀 본다'하는 사람 중에 장삐쭈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병맛 더빙' 장르를 개척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장삐쭈. 그를 직접 만나 봤다. 첫 언론 정식 인터뷰다.

5~6살 무렵의 장삐쭈/이하 장삐쭈 제공

지난 14일 경기 수원역 근처에서 만난 장삐쭈는 참 '멀쩡'하게 생겼다. 오뚝한 콧날에 떡 벌어진 어깨, 중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준수한 옷차림까지.

"체격이 좋으시네요, 운동 좋아하세요?"

"네, 축구하는 거 좋아해요. 체대 출신이기도 하고요."

그는 고향인 전라도 지역에서 대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했다고 했다.

이후 회사를 잠시 다니기도 했지만 '할 말은 하는 성격' 탓에 적응이 쉽지 않았고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어쩌다 병맛 더빙을 하게 된 걸까?

"정말 사랑하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어요.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몇 달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했어요. 여자친구는 그런 저 때문에 밤에 횟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기도 했고요"

둘은 결국 헤어졌다고 했다. 본인이 연애를 망쳤다는 생각에 그는 말 그대로 '폐인'처럼 지냈다. 사랑과 직장을 모두 잃은 시기였던 셈이다.

"몇 달 후에 여자친구를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여자친구도 여전히 저에 대한 마음이 있다는 게 느껴졌지만 '다시 만나자,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이 밖으로 나오질 않더라고요. 그렇게 해줄 수 없는 게 현실이었으니까요. 그때 진짜 독하게 마음 먹었어요. '이제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목소리'로 밥을 벌게 될 줄은 본인도 몰랐다고 했다.

장삐쭈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작업 공간

"'남들이 하기 귀찮아하는 거 대신해주면서 돈을 벌어보자'라는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대추고'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일종의 대추 액기스인데 만들기가 굉장히 번거로워요. 하지만 결국 문제는 홍보였죠. "

그때 생각해 낸 게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그는 커뮤니티 '웃긴대학'에 글을 올려 직접 홍보를 시작했다. 유려한 글솜씨로 꽤 인기를 끌었고 매출도 올랐다. 하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 '이러지 말고 내가 직접 재미있게 홍보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원래 주변인 성대모사를 잘했거든요. 이 재주로 뭘 해보자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드라마틱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시험 삼아 커뮤니티에 올린 유튜브 더빙 영상이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분노조절장애 보노보노'라는 제목이었는데, 조회수가 90만에 달했다.

'아빠의 비밀'편 화면과 장삐쭈 어린 시절 사진/위키트리 김이랑 디자이너

장삐쭈 영상은 분명 '먹힐' 만 한 요소가 있었다. 대중에게 익숙지 않은 60~70년대 고전 만화에 입혀진 발칙한 개그 코드, 묘하게 배어있는 컬트적인 느낌이 있었다. 이전에도 개그 더빙 컨텐츠는 있었지만 이를 하나의 장르로 승화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처음에 만 삼천 원짜리 마이크를 사서 녹음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게 워낙 저렴한 제품이다 보니까 '지이잉'하는 백색 소음이 있었어요. 거슬릴 정돈 아니어서 그냥 그걸 썼는데, 그 백색 소음이 고전 만화 영상과 딱 맞아 떨어져서 분위기가 확 산 거죠. 그 마이크가 결국 망가져서 동일한 제품을 샀는데 이건 그 백색 소음이 안 나더라고요? 운도 조금 작용한 거죠. 하하"

그는 유명 유튜버라면 으레 따라 다니는 터무니없는 악플이나 인신공격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요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악성 댓글은 지운다고 했다.

"'요즘 장삐쭈 노잼, 요즘 장삐쭈 광고만 함' 이런 댓글은 조금 신경 쓰여요. 왜냐하면 이게 일종의 프레임이거든요. 댓글에 '요즘 재미없네'라는 댓글이 있으면 그걸 보는 분들이 '아, 진짜 요즘 장삐쭈 재미없나?' 생각하기 쉬워요"

장삐쭈는 앞으로 병맛더빙 컨텐츠를 "살짝 내려놓을" 예정이라는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6월 첫 영상을 올린 뒤에 1년도 안 돼서 유튜브 구독자 26만 명을 끌어모았어요. 하지만 이제 제 콘텐츠 만으로 모을 수 있는 구독자는 다 모았다고 생각해요. 변화가 필요한 때가 온 거죠"

"올 6월 전후로 큰 변화를 한 번 시도할까 해요.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드릴 수 없지만 열심히 계획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물론 병맛 더빙을 아예 안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는 본인이 몸담고 있는 플랫폼인 유튜브에 대해 진지한 고민도 하고 있었다.

"일부 유튜버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인 콘텐츠를 내놓으면서 유튜버 자체에 대한 이미지가 깎여 나가고 있어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행동들은 순간 인기를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거예요. 저는 대중적인 콘텐츠로 오래 살아남아 '버티는' 게 목표예요"

장삐쭈는 자신을 보며 더빙 유튜버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목소리를 잘 낸다고 저를 따라 했다간 망해요. 저는 자신을 글쟁이라고 생각해요. 목소리 연기는 부가적인 것일 뿐 시나리오를 쓰는 데 가장 많은 열정을 쏟거든요. '나 이런저런 목소리 잘 내니까, 더빙이나 해볼까?'라고 시작했다간 절대 성공하지 못해요. 실제로 많은 분이 그렇게 사라지셨고요"

"세상에 없는 걸 하세요. 정 더빙 콘텐츠를 하고 싶으시면 더빙 콘텐츠와 다른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뒤섞으셔야 해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제 고정 질문인데요, 얼마나 버시나요?"

그는 조금 당황하더니 말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음... 집앞 편의점 갈 때도 택시 타고 다닙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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