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도 맘대로 못 고르나요?” 영화관 나홀로족은 찬밥 신세

2017-03-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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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홈페이지 대학원생 고다연(여·24) 씨는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 보기를 즐기는 ‘혼영

CGV 홈페이지

대학원생 고다연(여·24) 씨는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 보기를 즐기는 ‘혼영족’이다. 지난 25일 고씨는 CGV 신촌 아트레온 4DX관 상영작 ‘미녀와 야수’를 인터넷으로 예매하려다가 크게 당황했다. 108석 중 예매할 수 있는 자리가 55석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관객이 선호하는 맨 가운데 자리를 고를 수 없었다. 4DX관은 관객이 특수 효과를 느끼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특별관이다.

CGV 신촌 아트레온 4DX관에서 1인 관객은 가운데 자리를 예매할 수 없다. / 이하 CGV 홈페이지 캡처

고 씨는 심야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를 미리 예매하는 관객이 많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관객 수를 2명으로 선택하니 모든 좌석을 고를 수 있었다. 영화관이 2인 관객에게 더 많은 자리를 고를 수 있는 ‘우선권’을 준 셈이다.

고 씨는 "같은 돈을 주고 영화를 보는데, 자리를 왜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영화를 본다고 (영화관에) 아예 안 올 수도 있는 사람, 늦게 예매하는 사람들을 위해 왜 배려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혼자 영화를 자주 보는 직장인 신권일(남·34) 씨는 “난 맨 가운데 자리가 좋다. 혼자 영화를 볼 때, 그 옆자리만 고를 수 있어서 짜증 날 때가 많다”고 했다.

'2017년 상반기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 따르면, 지난해 CGV 관객 가운데 13.3%는 혼자 영화를 보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4년 9.7%, 2015년 10.7%에 비해 1인 관객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1인 관객 선택 좌석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사회적 흐름에 맞지 않게 '혼영족'을 홀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혼영족 차별하는 영화관

CGV 일반관에서 1인석으로 예매할 수 있는 자리는 보통 70~80% 내외다. 하지만 대부분 CGV 4DX관에서는 절반 수준에 그친다. CGV 상암, CGV 여의도, CGV 왕십리에서 1인 관객은 4DX관 좌석 가운데 딱 50%만 선택할 수 있다. CGV 청담시티에서는 좌석 52%만 선택할 수 있었다.

CGV 상암 4DX관, CGV 여의도 4DX관, CGV 왕십리 4DX관 (왼쪽부터)

CGV 강변, CGV 신촌 아트레온 등 1인 관객이 맨 가운데 자리를 고를 수 없는 4DX관도 많았다. 영화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4DX관 좌석 수는 최소 72석으로 일반관보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적다. 그만큼 1인 관객이 고를 수 있는 ‘명당’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1인 관객은 CGV 프리미엄 상영관인 ‘골드클래스’, ‘시네드 셰프’를 아예 예매할 수 없었다.

1인 관객은 골드클래스 상영관 예매를 할 수 없다.

다른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CGV보다 사정이 크게 나은 것은 아니다. 메가박스는 일반관에서 1인 관객이 고를 수 있는 좌석 수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 코엑스 메가박스 M2 관에서는 1인 관객은 좌석 52%만 예매할 수 있다. 1인 관객 예매 가능 좌석은 강남 메가박스 1관은 50%, 동대문 메가박스 M 관은 53%였다. 대부분 절반 내외다.

코엑스 메가박스 M2관 / 메가박스 홈페이지 캡처

롯데시네마 일반관은 CGV와 비슷한 수준인 80% 내외로 1인 관객이 자리를 고를 수 있었다. 월드타워 롯데시네마 5관에서 1인 관객이 예매를 할 경우 좌석 77%를 선택할 수 있다. 청량리 롯데시네마 1관에서는 좌석 77%, 홍대 롯데시네마 4관은 73%였다. 단, 월드타워 롯데시네마 샤롯데관에서 1인 관객이 미리 고를 수 있는 자리는 25%밖에 되지 않았다.

월드타워 롯데시네마 샤롯데관 / 롯데시네마 홈페이지 캡처

◆ '2인 관객'을 위해 불편을 감수해야?

1인 관객에게 자리 제한을 두는 이유는 좌석이 듬성듬성 하나씩만 남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좌석이 하나씩 남으면 영화관은 2인 관객을 받을 수 없다. 지난해 CGV를 찾는 2인 관객 비중은 58.9%였다. 대다수 영화 관객은 친구, 연인, 부부 등 2인이다.

CGV 홍대 3관에서 관객 1명이 고를 수 있는 좌석 (왼쪽), 관객 2명이 고를 수 있는 좌석 (오른쪽) / 이미지를 좌우로 움직이면 다른 이미지로 바뀝니다

CGV는 얌체족에게 관객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입장이다. CGV 관계자는 “얌체족으로부터 관객들을 보호하고자 (좌석 배치에 대한) 별도의 로직(법칙)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로직은 일반관이나 특별관에 모두 똑같이 적용된다. 일반관은 상영관 내 좌석이 10~15석 정도로 길다. 4DX관에서는 좌석이 4개라서 로직이 더 심하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그는 "1인 관객이 예매를 할 경우, 중간 좌석을 띄엄띄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2인 관객들은 1인 관객 때문에 떨어져 앉거나, 영화 관람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가운데 자리를 예매한 후, 양 옆자리를 추가로 예매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양 옆자리를 예매 취소해, 가운데 자리에서 혼자 편하게 보더라"고 말했다.

골드클래스 1인 예매 불가 정책에 대해서도 CGV 측은 "2인 관객이 이용하기 좋은 커플좌석으로 이뤄진 특별관이다. 1인 예매가 가능할 경우 커플석에 낯선 고객과 영화 관람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막고자 하는 조치”라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잔여석 여유가 있는 경우 1인 판매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메가박스는 1인 좌석 제한이 고객에게 불편을 주기 위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좌석 배치에 특별한 정책은 없다. 1인 관객에게 차별을 주려는 것은 아니다. 2인석을 선택하는 관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다”라고 해명했다.

롯데시네마는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멀티플렉스 입장에 대해 ‘혼영족’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신권일 씨는 “얌체족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한 명이라는 이유로 좌석 선택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오히려 얌체족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분개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을 받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 김연화 회장은 “1인 관객에게도 선택권을 줘야 한다. 공급자 중심의 상술로 소비자 선택권을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1인 관객 좌석 제한은 빨리 개선돼야 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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