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남자가 태어나 처음 '생리대'를 차고 지내봤다

2017-05-0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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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대신 생리해 주면 좋겠다" 지난달 초, 아내가 말했다. "그러고 싶다, 정말" 필

"하루만 대신 생리해 주면 좋겠다"

지난달 초, 아내가 말했다. "그러고 싶다, 정말" 필자는 답했다. 불가능하단 걸 알기에 나온 '선심성' 발언이었다.

아내는 이날 종일 안절부절하지 못 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오만상을 지었다. 생리대가 몸에 닿으면 생리혈 때문에 너무 찝찝하다고 했다.

"하루 동안 생리대 하고 지내볼까?"

필자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여성이 느끼는 불편함을 남성도 알아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다. 아내는 "그게 될까..."라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주변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우려가 쏟아졌다.

남자가 생리대? 훗... 쉽지 않을텐데 /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문제는 '생리통'이었다. 많은 여성이 생리통 때문에 고생하는데, 재현할 수 있느냐는 거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한 유튜버가 "생리통을 재현하겠다"며 윗몸 일으키기를 100번 넘게 하는 영상이 있었다. 아내와 여사친(여자사람친구)들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아냐, 저렇게 하면 근육통이 생기지... 생리통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

여러 의견을 수렴한 결과, 남성이 생리통을 재현하는 건 신체구조상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생리혈 재현'까지는 해보자고 결심했다. 실제 피와 질감, 색깔이 비슷한 가짜 피를 사서 지난달 30일부터 이틀 동안 생리대를 하고 지내기로 했다.

가짜 피는 하루 30㏄씩, 2시간마다 나눠서 생리대에 부었다. 30㏄는 여성의 하루 평균 생리혈 배출량(30~80㏄) 최소치다. 2시간은 생리가 한창(1~3일 사이)일 때를 가정한 생리대 교체 주기다.

◇ 태어나 처음 뜯고, 차 본 생리대... '남자로 태어나 다행'이라는 생각 들어

"이거 어떻게... 이렇게 뜯는 건가?"

필자가 생리대를 뜯는 방법을 몰라 한창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능숙한 솜씨로 생리대 포장을 제거했다.

필자가 이틀 간 착용한 생리대, 긴쪽을 엉덩이에 둔다 / 이하 양원모 기자

"그럼 여기가 앞면이야?"

"아니, 날갯면을 기준으로 짧은 곳이 앞, 긴 곳이 뒤야"

"원래 이렇게 구분해?"

"그건 아니고, 이건 '대형' 사이즈라서 뒤가 좀 더 길어"

"그럼 이걸 바로 몸에 붙이면 되는 거야?"

"아니~! 속옷에 붙이고 입어야지!"

학창 시절, 여러 경로(?)로 '성교육'을 열심히 받았다고 자부하던 필자였다. 착각이었다. 생리와 생리대에 대한 필자의 지식은 요즘 초등학생보다 못 한 수준일 것 같았다. 아내는 보통 생리가 한창일 때는 2~3시간에 한 번씩 생리대를 교체한다고 했다. '남자로 태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생리대를 속옷에 붙이고, 패드 위에 가짜 피를 부었다. 패드는 피를 흡수해 금세 새빨갛게 변했다. 속옷을 추어올리자 사타구니와 엉덩이에서 축축한 촉감이 전해졌다. 가짜 피를 너무 많이 부었는지 속옷 밖으로 피가 새어나왔다. 아내는 "(생리혈이) 많으면 드물게 그런다"고 설명했다.

가짜 피와 생리대

Giphy

끈적끈적한 느낌도 심했다. 가짜 피에 섞인 밀가루와 설탕 성분 때문이다. 실제 생리혈도 끈적끈적하다. 필자와 같은 남성들은 생리혈을 단순히 '피'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성교육 전문가 '공감성교육' 이석원 대표는 "생리혈은 자궁 내막에 자리잡은 착상혈이 탈락한 것이다. 출혈량이 많으면 피를 굳게 하는 '항응고제' 부족으로 생리혈이 덩어리처럼 끈적끈적하게 나올 수 있다"며 "생리혈 덩어리가 3개월 넘게 지속된다면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어색함, 찝찝함, 불편함... 여기 '생리통'까지 더해진다면...

어색함, 찝찝함, 불편함. 이번 경험을 3가지 키워드로 요약하라면 필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잠잘 때 빼고 2시간마다 가짜 피를 붓고, 생리대를 교체했다. 축축함과 찝찝함 때문에 착용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특히 가짜 피가 자꾸 생리대 밖으로 새어나왔다. 멀쩡한 속옷 몇 장을 갖다 버렸다. 피범벅이 된 속옷을 보면서 "초경이 시작되면 이런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도 불편해졌다. 생리대와 접촉을 피하려다 보니 어정쩡하게 걷게된 것이다. 어딘가에 앉아 엉덩이를 뗄 때도 곤혹스러웠다. 차라리 쪼그려 앉거나, 서 있는 게 편했다. 아내가 생리 때마다 왜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있는지 조금 이해하게 됐다.

진심입니다 ㅠㅠ / Pixabay

생리대 착용을 마친 뒤, 주변 여성들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직장인 윤 모(여·29) 씨는 "흥미롭긴 한데, 생리통을 재현하지 못한 게 아쉽다"며 "생리 기간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을 남성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 모(여·30) 씨는 "나름 의미는 있는 것 같다"며 "생리통까지 재현했다면 완벽했을 것 같다. 사실 생리대 착용보다는 생리통이 주는 불편함과 괴로움이 몇 십, 몇 백 배는 더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리통은 생리 기간 여성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심하면 진통제도 먹는다. 2011년 한국존슨앤드존슨이 여성 7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진통제를 복용한 20·30대 여성 가운데 74.6%가 "생리통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생리통은 하복통, 오심, 구토, 피로, 어지로움, 설사 등 증상도 갖가지다. 아랫배를 꾹꾹 누르는 듯한 통증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 이틀 간의 어색, 찝찝, 불편함도 버겁게 느껴졌는데, 여기 생리통까지 겹친다면...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이석원 대표는 "생리통이 심하면 잘 걷지도 못하고, 고통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먼 자살 충동까지 들 수 있다"며 "나도 팬티 라이너부터 시작해 몇 개월 동안 생리대를 착용하고 다닌 적 있다. ('생리대 착용'은) 남성이 생리하는 여성을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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