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밖 성관계도 처벌?”...'군형법 92조의6'을 둘러싼 쟁점들

2017-05-2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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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자체만 보면 이성애자에게도 이 법을 적용할 수 있지만, 이성애자에게 적용한 예가 없다”

전성규 기자

24일 육군 군사법원은 동성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된 A 대위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일과 시간 중 하급자를 추행했다"라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A 대위는 부대 밖에서 다른 동성 군인과 합의로 성관계를 맺었다"라고 했다.

군 법원은 "현역 장병이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하는 것은 군형법 92조의6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군형법 92조 6항'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용이다. 법 조항은 동성 성관계 자체를 언급하진 않는다. 단지 '항문 성교'를 하면 안 된다고 돼 있다. 군대 내 동성 성관계를 처벌하는 근거로 활용돼온 이 조항은 현재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 이성 간 항문성교도 처벌?

JTBC '뉴스룸'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2년, 2011년, 2016년 잇달아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가장 최근 결정은 지난해 7월이다. 헌재는 당시 5대 4로 군형법 92조의6 합헌을 결정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확립"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관 4명은 위헌 의견을 냈다. 현 정부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된 김이수(64) 재판관 등 4명은 해당 조항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강제성이 없는 음란행위와 강제성이 강한 폭행, 협박에 의한 추행을 동등하게 처벌하도록 하여 형벌 체계상 용인될 수 없는 모순을 초래한다"라고 주장했다.

조국(52) 민정수석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절 군형법 92조 6항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2011년 '군형법 제92조의5(현 92조의6) 계간 그 밖의 추행죄 비판'에서 해당 법률이 불명확하고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조항은 추행 주체나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적용 범위가 백지형법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조항만으로 판단했을 때 동성은 물론, 이성 간에 이뤄진 항문성교에도 적용될 수 있는 등 불명확성이 크다는 얘기다.

조국 민정수석 / 뉴스1

92조 6항이 '어디에서' 성행위가 이뤄지느냐에 대해서 규정하지 않은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는 "군 규율이나 기강만 생각하면, 이성애자냐 동성애자냐 문제를 떠나 병영 내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다"라며 "문제는 군인의 바깥 사생활까지 국가가 건드린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찬운 교수는 "법 조항만 보면 이성애자 군인이라도 병영을 떠나 자기 집에서 항문성교를 했을 때 처벌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는 동성애, 이성애 문제를 떠나 참기 힘든 국가 권력 횡포"라며 "국가 권력이 가장 사적인 부분인 국민 이부자리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군 성폭력, 다른 법률로 처벌 가능"

'군 성폭력' 자체는 다른 법 조항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연합 인연은 "군대 내 동성 간 강제적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적 근거는 92조의6이 아니더라도 충분하다"고 했다.

인연은 "군형법 제92조는 강간 처벌을 규정하고 있으며, 제92조의2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구강, 항문 등 신체에 성기를 넣는 등 유사강간을 규정하여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연은 "제92조의3 또한 강제추행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헌재의 입장은 '군대'는 특수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군형법 92조의6이라는 별도 처벌규정을 둔 것은, 군대라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서다"라며 "군 내부에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가 만연하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군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군형법 92조의6 적용을 받는 '군인'과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 적용을 받는 '일반 국민'은 같은 비교집단이 아니다"라고 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경환 변호사는 '건전한 군 생활과 군기'라는 명분이 사안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에서 남자 장교와 여자 장교가 부대 곳곳에서 성행위를 하고 '정직과 감봉 징계'를 받은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이 변호사는 "파병부대는 위험한 해외 지역으로 파견돼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군기'가 가장 요청되는 곳"이라며 "그런데도 이 사건은 형사처분도 아닌 징계로만 처리됐다"고 말했다.

부대 밖에서 이뤄진 동성 군인 관계는 처벌하면서, 부대 내에서 이뤄진 이성 군인 관계는 '징계'로 넘어가는 건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 '게이 육군장관' 임명한 미국

DADT 법안 폐지에 서명 중인 오바마 대통령 / 위키미디어

미국에도 군형법 92조 6항의 '원조' 격인 법이 있었다. 미국은 1950년 제정된 통일군사법전 제125조에서 '동성 간 또는 이성 간 또는 동물과 비자연적인 성교행위'를 금지했다. 이 법은 동성 간 성행위를 금지한다는 점에서 '소도미 법(Sodomy Law)'라 불렸다.

2003년 미연방 대법원은 6대 3 다수의견으로 소도미 법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연방 대법원은 "국가는 사적 성적 행위를 범죄로 만드는 방식을 통해 존재를 비하하거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후 미군 내에선 사실상 동성 간 성관계 처벌이 중단됐다.

2011년 9월 버락 오바마(Obama·56) 전 미국 대통령은 성소수자 군인 '커밍아웃'을 장려하며 'DADT' 폐지 법안에 서명했다. 'DADT'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뜻이다. 1993년 빌 클린턴(Bill Clinton·71) 대통령 정부가 성소수자 군인 입대를 허용하되, 성소수자 군인 스스로 성적지향을 말하지도 말고, 타인이 이들에게 성적 지향을 묻지도 말라는 의미로 만든 정책이다.

2012년 6월 미 국방부는 군인이 군복을 입고 '게이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했다. 지난해 5월 오바마 대통령은 게이로 커밍아웃한 에릭 패닝(Eric Fanning·49)을 육군장관에 임명했다.

◈ 동성애 자체를 겨냥한 법?

박찬운 교수는 "군형법 92조의6은 동성애자 자체를 겨냥해서 만든 법"이라며 "법문 자체만 보면 이성애자에게도 이 법을 적용할 수 있지만, 이성애자에게 적용한 예가 없다"고 비판했다.

조국 민정수석도 논문에서 "(군형법 92조의6은) 실제로는 동성애 군인 처벌을 목적으로 삼는 법"이라며 "동성애를 변태 또는 비정상으로 파악하고 차별하는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가 군형법에 반영됐다"라고 지적했다.

동성 성행위 처벌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은 군대가 '계급 관계에 있는 남성'들로 이뤄진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비역 김민환(26) 씨는 "군대는 위계와 억압이 존재하는 곳"이라며 "성 문제만큼은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군대 내 동성 간 성폭력 원인을 동성애로 몰아가는 관점을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 본질은 위계와 권력을 폭력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며 "동성애자들이 성욕을 참지 못하여 성폭력을 저지른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 실시한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 조사 사례 중 가해자가 동성애자인 경우는 없었으며 오히려 가해자들은 '내가 동성애자로 취급받는 것이 억울하다'라며 강한 동성애 혐오 증상을 보였다"고 했다.

입대를 앞둔 동성애자 임우종(24) 씨는 군형법 92조 6항의 존재 자체가 미필 성소수자에게 공포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임 씨는 "이 법은 합의로 성관계를 맺은 사람까지 잡아가는 법"이라며 "동성애가 정신이상이라는 낙인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범죄자라는 낙인은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전성규 기자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