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 사고 사진 모으고' 대통령 덕질하는 젊은층

2017-05-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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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배경으로 해둔 스마트폰/ 이하 위키트리 "우리 이니 사고 싶은 거 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배경으로 해둔 스마트폰/ 이하 위키트리

"우리 이니 사고 싶은 거 다 사. 2개 사. 이러려고 세금 내지♡"

대학생 김현아(여・25) 씨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대통령 덕질'이다. 하루 종일 뉴스를 보고 포털사이트에 달린 댓글을 살핀다. "문재인 정부가 핵잠수함을 건조할 전망"이라는 기사에는 "우리 이니 핵잠수함 갖고 싶어쪄여? 2개 사"라는 댓글도 남겼다.

김현아 씨는 적극적인 덕질을 위해 '현질'(현금을 내서 아이템을 사는 것)도 아끼지 않는다. 문 대통령 자서전과 문 대통령이 표지를 장식한 미국 타임지 아시아판도 구매했다. 김 씨 스마트폰 배경 화면은 문 대통령이 유기견 앨리스를 안고 있는 사진이다.

◈ '문템'과 '이니 굿즈'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20~30대 젊은층에서 '대통령 덕질'이 유행이다. '덕질'은 좋아하는 대상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행위를 뜻한다.

'대통령 덕질'을 하는 젊은층은 문재인 대통령을 '이니'라고 부른다. 문 대통령 이름 끝 글자인 '인'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문구는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이 문구는 문 대통령이 업무 지시를 하거나 인사를 임명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덕질'을 하는 팬들이 그렇듯, 이들은 자신의 SNS에 맹렬히 대통령 사진을 업로드한다. 직장인 이나연(여・29) 씨는 "스마트폰에 남자친구 사진보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이 더 많다"며 "아이돌 덕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 나이에 대통령 덕질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덕질'은 문 대통령 관련 물건을 사 모으는 행위로도 이어진다. 이 물건들은 소위 '문템' 혹은 '이니 굿즈'라 불린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팬카페 '젠틀재인'에 '젠틀재인 굿즈' 게시판이 생겼다. 이 게시판으로 대통령 사진이 들어간 달력, 엽서, 배지 등을 공동구매한다. 문 대통령 달력은 14일부터 이틀 간 1만 부 이상 주문이 쇄도했다. 현재 2차 공동구매를 하고 있다.

배지 100세트를 공동구매한다는 글에는 댓글이 1058개나 달렸다. 공동구매에 만족하지 못 하는 지지자들은 직접 '굿즈'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스마트폰 케이스나 머그컵을 제작해 게시판에 올린다.

이나연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과 등산을 하며 입었던 블랙야크 바람막이를 사전 예약까지 해서 샀다"며 "대통령이 맸던 독도 강치 넥타이도 사고 싶은데 완판이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단골로 알려진 서울 부암동 카페 '클럽 에스프레소'도 주목 받고 있다. 마은식 대표가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이 평소 즐겨 마시던 원두 비율을 공개하며 '성지'로 떠올랐다. 이 카페는 이 커피에 '문 블렌드'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클럽에스프레소'에서 판매 중인 '문 블렌드' 원두

'클럽 에스프레소'가 단골이라고 밝힌 한 남성(42)은 "'문 블렌드'를 마시러 카페에 오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본다"고 전했다. '문 블렌드'를 마셔보고 싶어 카페를 찾았다는 대학원생 한가영(여・28) 씨는 "문 대통령이 마시는 커피까지 인기다. 대통령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문재인 대통령 관련 서적만 모아둔 '문재인 코너'가 마련돼 있다.

'문재인 책'도 불티나게 팔린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예스 24에서 현재 판매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관련 도서는 직접 집필한 책 16권을 포함해 총 46권이다. 지난 10일부터 30일까지 문 대통령 관련 서적 판매량은 3만 2000권에 달했다고 한다.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29배가 증가한 양이다. 타임지 아시아판 발행사 UPA는 문 대통령이 표지모델로 등장한 호(號)가 한국에서 10만 부 이상 나갔다고 밝혔다.

예스 24 관계자는 "정치인 관련 서적이 이렇게 많이 팔리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출판계에서도 독자들이 '문템', '이니 굿즈'라며 책을 사는 현상을 매우 신기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문고 관계자도 "특히 젊은 분들이 문재인 대통령 관련 서적을 많이 찾는다"며 "지금까지 정치인 관련 서적이 이렇게 많이 판매되는 것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유진 씨는 타임지 아시아판, 문재인 대통령 자서전을 구매하고 인스타그램에 '이니 굿즈' 인증샷을 올렸다/ 김유진 씨 제공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관련 서적과 타임지 아시아판을 찍어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유행이다. 인스타그램에 '이니 굿즈' 인증샷을 남긴 김유진(여・31) 씨는 "메스컴을 통해서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정보를 접했었는데 대통령이 살아온 길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 책을 샀다"고 말했다.

'클럽에스프레소'에는 '문 블렌드'라는 메뉴가 있다(왼), 문블렌드 아이스(오)/ 위키트리

◈ "노사모와는 다르다"

지난 9일 오후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 이하 뉴스1

과거에도 정치인 팬클럽은 있었지만 대통령이 '아이돌'처럼 '덕질'을 당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민국 최초 정치인 팬클럽이라 불리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 사이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노사모 총무를 맡았던 오영애 씨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 팬클럽은 '조직'이 없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그런데도 '노사모'보다 훨씬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오영애 씨는 "노사모가 만들어진 2000년대 초반에는 SNS가 없었다. 우리끼리 노사모 게시판에 글을 남겼지만 이를 확장할 공간이 다양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팬클럽으론 '젠틀재인', '문팬' 등이 있다. 모두 포털 다음(Daum)에 만들어진 카페다. 하지만 이 팬카페들은 '노사모'처럼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회원수도 '젠틀재인' 4만 5000명, '문팬' 2만 1000명 정도로 10만 명이 넘었던 '노사모'에 비해 적은 수다.

대신 오늘의 유머, 루리웹, 클리앙 등 여러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 성향을 띠고 있다. 특히 쌍화차 코코아, 소울드레서, 화장발 등 여초 성향 커뮤니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팬클럽은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다"는 말이 나온다.

오영애 씨는 "노사모 회원들 연령은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지만 주로 남성이 중심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젊은 여성팬이 많은데 이것도 하나의 차별점"이라고 짚었다.

왜 젊은 여성들이 문 대통령을 좋아할까. 비권위적이고 따뜻한 느낌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대학생 노지나(여・23)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숙 여사를 바라볼 때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반려동물을 바라볼 때도 그렇다"며 "그동안 친근하고 다정한 지도자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 전 세계 사람들이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에 열광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외모도 한 몫했다고들 한다. 여초 커뮤니티에는 문재인 대통령,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의 과거, 현재 사진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게시물에는 '외모 패권주의', '증세 없는 안구 복지'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독특한 지지 양상은 지지층의 연령대와 관련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젊은 지지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사람들이 유행의 흐름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을 소비하고 있다. 아이돌 가수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보수 정권 10년 동안 누리지 못 했던 자유로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대통령 덕질'을 하는 많은 젊은층이 이 부분을 짚었다.

직장인 안하명(남・30) 씨는 "'이니'라는 애칭은 존칭이 아니다. 친근한 느낌을 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권위적인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았나. 그런 대통령에게 애칭을 붙이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 '팬덤'도 지나치면 독

'이니는 우리가 지킨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사안에 따라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민의 권력을 위임하는 '권력자'에게는 반드시 비판과 견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중 일부가 진보 언론 기자들과 대립을 하거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이후 '문자 폭탄'을 보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지나 씨는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생기면 좀 더 성숙하고 건전한 팬덤 문화를 만들자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팬들도 정치적 현안과 관련된 이슈에는 조금 차가워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종훈 평론가는 "팬덤에 빠지면 객관적이기보다는 무조건적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비난을 받으면 참지 못 하고 투사가 되어 옹호한다"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 지지층 사이에서도 이런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 팬덤 현상에 긍정적 측면만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이런 지적이 기우라고 주장한다. 안하명 씨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나 SNS에서도 여러 의견이 교환된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임명됐을 때 환영했던 지지자들 중에 지금은 부적격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안 씨는 "'덕질'은 놀이 같은 거다. '덕질'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만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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