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그림 그리는 남자 정중원 인터뷰

2017-05-30 17:40

add remove print link

조각가 베르니니(Bernini) 연인 코스탄차 보나렐리(Costanza Bonarelli)

조각가 베르니니(Bernini) 연인 코스탄차 보나렐리(Costanza Bonarelli). 작업 중인 정중원 씨가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 이하 정중원 씨 제공

모공을 만지면 오돌토돌한 요철이 느껴질 것 같은 이 그림. 국내 미술계에서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화풍으로 주목 받고 있는 작가 정중원(29)씨 작품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진을 방불할 정도로 정밀하게 대상을 그린다. 사물이 가진 극한의 질감까지 표현한다. 그림 하나에 투입되는 노동량이 엄청나서 '붓으로 하는 막노동'이라 불린다. 정중원 씨는 그림 하나에 2~3달을 붙잡고 있는다고 했다. 작업 기간이 1년이 넘는 작품도 있었다.

처음부터 하이퍼리얼리즘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한 정중원 씨는 그림보다는 영화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군대 가기 전이니까 대학교 2학년 때쯤일 거예요. 그림 수업보다는 영상 제작, 편집, 미술, 조명 관련 수업을 더 많이 들었어요. 근데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아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거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싶었죠”

정 씨는 최근 TV 프로그램에도 간간이 얼굴을 비췄다. 지난해 JTBC '말하는대로'에서 하이퍼리얼리즘이 갖는 메시지를 전했고, 올해 3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주호민 작가의 머리를 그려주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 “환상적인 것보다 사실적인 것에 끌렸다"

때가 되면 밥을 먹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에게 그림은 일상이었다. 정중원 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외할머니, 어머니, 이모, 이모부, 사촌누나들 모두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렸다. 서랍만 열면 물감, 크레파스를 잡을 수 있던 어린시절, 그에게 그림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많고 많은 스타일 중 왜 하이퍼리얼리즘을 택했냐고 물었다. 정중원 씨는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사실적인 것에 끌렸다”고 말했다. 그는 “만화, 영화, 소설을 봐도 그랬다. 용, 로봇, 요정이 나오는 판타지라 할지라도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묘사보다는 ‘반지의 제왕’처럼 진짜 저런 세계가 있을 것 같은, 사실적인 것이 좋았다”고 했다.

"이 작품은 팔지 않아요" 정중원 씨가 하이퍼리얼리즘 초창기 때 그린 이안 맥켈런 초상. 고민 했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팝아트(pop art)가 점차 쇠퇴해질 무렵인 1960대 후반, 미국에서 출발한 미술 개념이다. '극단적인 사실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실적 묘사에 머무는 리얼리즘과 구별된다.

정중원 씨가 본격적인 하이퍼리얼리즘의 길을 걸은 건 군대를 전역한 2011년쯤이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리얼리즘 회화전이 계기가 됐다.

이곳에서 주태석 작가 작품 ‘기찻길’을 본 정 씨는 자극을 받았다.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해보기로 했다. 이전까지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도 ‘사실’ 정도에 그쳤었다면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질감 표현에 매달렸다. 안 쓰던 근육이 놀랐고 목에 무리가 갔다. 전에는 그림 하나 완성하는 데 길어봐야 2~3주가 걸렸지만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은 2~3달은 족히 걸렸다.

“졸업반 당시 지도교수님이 제 그림을 보더니 ‘넌 이미 답이 나왔어. 이거 해’라고 말해주셨어요. 칭찬에 후한 교수님이 아니었음에도 ‘이거대로 가 보고, 이걸로만 끝날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공부 해봐라.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정중원 씨는 곧바로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에 진학했다. 놀랍게도, 지도교수로 배정된 이는 홍익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주태석 작가였다.

◈ 눈높이 높아진 만큼 작업 시간도 늘어나

정중원 씨는 주태석 교수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매우 반가워했다고 말했다. “대학원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이거 누구 그림이니?’ 물으시길래 ‘접니다’ 그랬다. 좋아하시더라. 그런 그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 되게 반가워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내 그림의 방향을 결정 짓게 해 준 계기를 마련해주신 교수님이 내 작품을 보고 ‘너 잘한다’라고 말해주셨을 때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울컥했다”고 했다.

한국에 하이퍼리얼리즘 화가는 많지 않다.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중원 씨는 “저는 이 일을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라고 비유한다”면서 “작가들이 그림을 팔아서 먹고 사는데 남들 작품 10개 만들 때 저는 하나도 못 만든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게 엄청 스트레스”라고 했다.

자화상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에 익숙해질수록 작업 시간은 더 늘어난다고 했다. 작업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게 아니라 단지 ‘보는 눈’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람 얼굴을 그릴 때 누런색, 분홍, 갈색 3가지 색감을 썼다면 ‘보는 눈’이 높아지면서 노랑, 분홍, 파랑, 보라, 초록 등 5~6가지 색감을 쓴다. 이렇게 완성품을 내고 나면 그 전으로는 다시 못 돌아간다고 정 씨는 말했다. 이미 눈 높이가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작품 활동을 할수록 '퀄리티'는 높아지지만 작품 수는 점점 줄어들어, 이윤 창출이 힘든 면이 있다고 그는 털어놨다. 자신은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도 했다. 굵직굵직한 초상화 작업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정중원 씨는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 소장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소장 공식 임기가 끝날 때마다 초상화를 만들어 보관한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 소장은 지난 1월 임기를 마쳤다. 정중원 씨는 “화가 5명이 후보로 올라갔는데 박 전 소장이 저를 지목했다고 하더라”라며 “영광이었다”라고 말했다.

◈ “내 삶은 무언가의 복제가 아닐까?"

정중원 씨는 하이퍼리얼리티 그 자체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묘사이면서 메시지라고 말했다.

작업실에서 정중원 씨

'사진으로 찍으면 되지 왜 힘들게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에 대해, "보는 사람이 잠깐이라도 '뭐가 원본이고 뭐가 복제지? 어디까지가 가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재(實在)지?' 이 관계를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게 만드는데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가상 현실, 원본과 복제의 관계가 역전된 거대한 하이퍼리얼리즘일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사회는 진짜인가요? 당신이 사는 삶은 실재인가요?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하고, 몇 살이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대학은 당연히 가야하고, 동성애는 비정상적이고… 모든 것들이 다 당신들 생각인가요?”

그는 사회에서 주입한 '가상의 가치'를 내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고 말했다. "내 삶은 무언가의 복제가 아닌가? 스스로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정중원 씨는 작품을 좀 더 많이 만드는 게 단기적 목표라고 했다. 또 하이퍼리얼리티에 관해 사회적, 정치적 대화를 많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작품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사람들과 만나 사회, 정치적 화두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최대한 참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