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잡으러 20kg 물통 지고 수락산 왕복 질주한 구청 직원들

2017-06-0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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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산불 당시 노원구청 직원이 화재 현장에 매고 갈 물통에 물

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산불 당시 노원구청 직원이 화재 현장에 매고 갈 물통에 물을 채우고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저녁상을 치우고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있을 시간, 문자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수락산 산불을 알리는 국민안전처의 재난 메시지였다. 곧 2116번으로 시작되는 노원구청 전화가 걸려왔다.

"수락산 산불이 발생했으니 노원구 전 직원은 통화 즉시 수락산 디자인거리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녹음된 목소리였지만 다급했다. 노원구 직원들은 잇따른 지시에 따라 랜턴, 마스크, 장갑 등 화재진압 준비물을 챙기고 등산화 끈을 고쳐맸다.

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에서 일어난 산불은 축구장 5.5배에 이르는 3만9600m²의 산림을 태운 채 13시간만에 꺼졌다. 그러나 소방대원과 의용소방대원, 자발적으로 나선 구민은 물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노원구청 직원들의 노력에 큰 피해는 면했다는 평가다.

노원구 소속 공무원 총원 1300여명 중 800여명이 이날 수락산 현장에 30분 이내 집결했다. 파견자나 휴가자, 노원구가 아닌 먼 지역에 사는 직원을 빼면 80~90%의 출석률이라고 한다.

모인 직원들은 거의 열외없이 소방호스를 따라 40분 동안 컴컴한 밤 산길을 타고 산불 현장까지 올라갔다. 정규 등산로도 아니었지만 일분일초의 시간이 아까웠다. 랜턴과 동료의 손에 의지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성직원들은 꽉 채운 20kg짜리 물통을 짊어졌고 여성 직원들은 소방대원에게 줄 생수와 간식을 양손에 챙겼다. 깊은 밤 산 바람을 마주하고도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불이 시작된 5부능선 귀임봉부터 소방대원이 큰불을 잡고 올라가면 잔불을 처리했다. 잔불이라고 얕볼 게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깔려있던 불이 들불처럼 번질듯 치솟아 올랐다. 직원 1명은 미처 피하지 못해 발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자욱하게 낀 연기와 역겨운 냄새도 마스크를 파고들었다. 곳곳에서 숨이 넘어갈 듯 기침소리가 이어졌지만 뒤돌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직원들은 이날 산을 적어도 3번 왕복했다고 한다. 2일 새벽 3시쯤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자 일부 철수하기도 했으나 상당수가 아침까지 남아 잔불처리에 투입됐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의 부인 박정옥 여사도 산불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밤새 구슬땀을 흘렸다. 공교롭게도 김성환 구청장은 지난달 29일 전국 지자체장들로 구성된 목민관클럽 연수차 쿠바 아바나 등 중앙아메리카 3개국 방문길을 떠나 8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14시간의 시차가 나는 아바나 현지에서 모바일 메신저로 계속 상황을 점검했지만 애가 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솔선수범한 박정옥 여사의 모습에 직원들도 든든했다는 뒷얘기다.

노원구 직원들은 지난해 3월 불암산 산불 때도 대규모 투입돼 산불 잡기에 힘을 보탠 바 있다.

이번 진화작업에 참여했던 정용채 노원구 주임(49)은 "전 직원 소집 전화를 받고 조건반사적으로 산불 현장으로 달려갔다. 주민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었다"며 "새벽 산에서 내려온 뒤 정상 출근했더니 조금 피곤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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